일용할 양식
메시지182(마태43)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11)
서론: 오늘 은혜받으실 말씀은 ‘주기도’의 네 번째 간구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입니다. 주기도에는 여섯 가지의 간구가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세 가지는 하나님을 위한 간구이고, 뒤에 나오는 세 가지는 인간을 위한 간구입니다. 인간을 위한 세 가지 간구는 첫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둘째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셋째 “우리를 시험과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인간을 위한 간구 중 첫 번째 기도입니다. 인간을 위한 간구 중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첫 번째 기도가 된 것은 인간의 생존에 육신의 양식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죄악시하며 육신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가지 본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영혼과 육신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육신이 건강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필요 중 제일 먼저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일용할 양식’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다 포함됩니다.
주기도에서 말하고 있는 ‘일용할 양식’이 무엇이냐? 육신의 양식인 빵을 의미한다는 주장과 빵 외에 필요한 다른 것들도 포함된다는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란 영혼과 육신이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육신의 양식만 필요합니까? 육신의 건강, 마음의 평화, 화목한 가정, 자녀의 행복 등 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당일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밤에 한다면, 내일의 양식과 내일을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내일을 위한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고 그 날 번 돈, 당일에 다 써 버리고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까요? 아니면 근검절약하여 내일을 위해 저축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까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내일을 위한 기도도 되는 것입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1:15). 지나친 욕심은 신앙과 인생에 독이 되고, 고난과 불행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올무와 덫이 됩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가난한 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먹을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적게 가지고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가지고도 불평하며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남이 갖지 못한 아홉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갖지 못한 한 가지 때문에 불평과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매년 몇 억 원씩 연금을 받고 평생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돈에 욕심을 냅니까? 대통령 재임 중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해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은 뇌가 잘못된 인간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우리 마을에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 부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노모와 다섯 명의 자녀들로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흘 먹을 양식만 있으면 일을 나가지 않고 쉬고 즐긴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늙은 노모와 많은 자녀들 때문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가정은 마을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물질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이지 인간의 행복이 물질과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당일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의 양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문제로 신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말씀이 하루의 양식만 구하라는 말씀인지, 내일이나 장래의 것까지 구하라는 말씀인지,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두고 신학자들이 아직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일용할’이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의 난해성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지금부터 2,000년 전 그 당시 세계의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됐습니다.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이 성경에 딱 두 번 나오는데 주기도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마 6:11, 눅 11:3).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온은 마태복음 6:11,과 누가복음 11:3,의 주기도에서만 사용된 것입니다. 옛날 말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낱말이 쓰여진 당시의 여러 문장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성경 외에 당시 헬라어의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용할’로 번역된 말이 너무 희귀하기 때문에,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일용할’이란 말의 뜻으로 필요한, 풍부한, 충분한, 내일의 등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과 예수님의 평소의 말씀을 참고해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용할’이란 말의 뜻을 1일 즉 ‘하루에 필요한 양’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주기도문의 바로 뒤에 나오는 마태복음 6:19,과 6:25, 그리고 6:34,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19,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을 땅에 쌓아둘 정도로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25절에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목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을 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필요한 것은 내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기도문의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주기도문의 ‘일용할’이란 말씀이 많은 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용할이란 말씀은 미래에 쓸 것을 구하거나 풍족한 양을 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잠언서 기자도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잠언 30:8-9). 그리고 일용할 양식 앞에 ‘오늘’이란 시제(時制)의 낱말이 붙여진 것도 그날 필요한 것만 구해야 한다는 뜻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꼭 필요한 것만 구하는 기도입니다. 지나치게 인색해도 죄가 되지만,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보면 부자는 매일 잔치를 하고 먹고 마시며 물질을 물 쓰듯 썼지만, 거지 나사로에게 인색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세계적인 회사를 소유하고 싶다는 기도를 해도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의심의 동물입니다. 옆에 두고도 의심하고, 손에 가지고도 의심합니다. 10년, 20년 동안 사귄 친구도 사소한 일로 의심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이 통하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의심은 일종의 정신질환입니다. 사람이 좋은 환경에서 사랑을 받고 성장한 사람은 의심을 덜 하지만 속고 배신을 당하고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의심이 심합니다. 인간을 100퍼센트(%)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00퍼센트 믿어야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키시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신뢰하는 성도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만 가지고도 감사하고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등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책임을 지고 공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앞으로 먼 훗날에나 필요한 것을, 미리 달라고 하면 부모가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거나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달라고 보채는 성도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이거나 과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9,에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구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주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의 기도가 주는 교훈은 “지금까지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먹을 양식만 있으면 지금까지 먹이시고 기르신 하나님께서 내일도 그리고 장래에도 은혜와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니싸’의 교부 그레고리(Gregorius of Nyssa 330?-395?)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신에게 날(日, the day)을 주시는 분이 또한 그 날에 필요한 것도 주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루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신다면 그 날에 필요한 것도 주실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복된 말씀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주기도에서 구하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당일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욕심내거나 너무 많은 것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날 하루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1, 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11)
서론: 오늘 은혜받으실 말씀은 ‘주기도’의 네 번째 간구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입니다. 주기도에는 여섯 가지의 간구가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세 가지는 하나님을 위한 간구이고, 뒤에 나오는 세 가지는 인간을 위한 간구입니다. 인간을 위한 세 가지 간구는 첫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둘째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셋째 “우리를 시험과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인간을 위한 간구 중 첫 번째 기도입니다. 인간을 위한 간구 중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첫 번째 기도가 된 것은 인간의 생존에 육신의 양식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죄악시하며 육신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가지 본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영혼과 육신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육신이 건강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필요 중 제일 먼저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일용할 양식’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다 포함됩니다.
주기도에서 말하고 있는 ‘일용할 양식’이 무엇이냐? 육신의 양식인 빵을 의미한다는 주장과 빵 외에 필요한 다른 것들도 포함된다는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란 영혼과 육신이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육신의 양식만 필요합니까? 육신의 건강, 마음의 평화, 화목한 가정, 자녀의 행복 등 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당일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밤에 한다면, 내일의 양식과 내일을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내일을 위한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고 그 날 번 돈, 당일에 다 써 버리고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까요? 아니면 근검절약하여 내일을 위해 저축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까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내일을 위한 기도도 되는 것입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1:15). 지나친 욕심은 신앙과 인생에 독이 되고, 고난과 불행으로 유혹하는 마귀의 올무와 덫이 됩니다.
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가난한 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먹을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적게 가지고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가지고도 불평하며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남이 갖지 못한 아홉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갖지 못한 한 가지 때문에 불평과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매년 몇 억 원씩 연금을 받고 평생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돈에 욕심을 냅니까? 대통령 재임 중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해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은 뇌가 잘못된 인간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우리 마을에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 부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노모와 다섯 명의 자녀들로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흘 먹을 양식만 있으면 일을 나가지 않고 쉬고 즐긴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늙은 노모와 많은 자녀들 때문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가정은 마을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물질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이지 인간의 행복이 물질과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당일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의 양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문제로 신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말씀이 하루의 양식만 구하라는 말씀인지, 내일이나 장래의 것까지 구하라는 말씀인지,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두고 신학자들이 아직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일용할’이란 말로 번역된 헬라어의 난해성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지금부터 2,000년 전 그 당시 세계의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됐습니다.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이 성경에 딱 두 번 나오는데 주기도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마 6:11, 눅 11:3).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온은 마태복음 6:11,과 누가복음 11:3,의 주기도에서만 사용된 것입니다. 옛날 말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낱말이 쓰여진 당시의 여러 문장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용할’로 번역된 헬라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성경 외에 당시 헬라어의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용할’로 번역된 말이 너무 희귀하기 때문에,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일용할’이란 말의 뜻으로 필요한, 풍부한, 충분한, 내일의 등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과 예수님의 평소의 말씀을 참고해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용할’이란 말의 뜻을 1일 즉 ‘하루에 필요한 양’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주기도문의 바로 뒤에 나오는 마태복음 6:19,과 6:25, 그리고 6:34,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19,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을 땅에 쌓아둘 정도로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25절에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목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을 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필요한 것은 내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기도문의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주기도문의 ‘일용할’이란 말씀이 많은 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용할이란 말씀은 미래에 쓸 것을 구하거나 풍족한 양을 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잠언서 기자도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잠언 30:8-9). 그리고 일용할 양식 앞에 ‘오늘’이란 시제(時制)의 낱말이 붙여진 것도 그날 필요한 것만 구해야 한다는 뜻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꼭 필요한 것만 구하는 기도입니다. 지나치게 인색해도 죄가 되지만,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보면 부자는 매일 잔치를 하고 먹고 마시며 물질을 물 쓰듯 썼지만, 거지 나사로에게 인색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세계적인 회사를 소유하고 싶다는 기도를 해도 되지만, 그리스도인은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의심의 동물입니다. 옆에 두고도 의심하고, 손에 가지고도 의심합니다. 10년, 20년 동안 사귄 친구도 사소한 일로 의심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진실이 통하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의심은 일종의 정신질환입니다. 사람이 좋은 환경에서 사랑을 받고 성장한 사람은 의심을 덜 하지만 속고 배신을 당하고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의심이 심합니다. 인간을 100퍼센트(%)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00퍼센트 믿어야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키시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믿고, 신뢰하는 성도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만 가지고도 감사하고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등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책임을 지고 공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앞으로 먼 훗날에나 필요한 것을, 미리 달라고 하면 부모가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거나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달라고 보채는 성도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이거나 과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9,에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구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주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의 기도가 주는 교훈은 “지금까지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먹을 양식만 있으면 지금까지 먹이시고 기르신 하나님께서 내일도 그리고 장래에도 은혜와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니싸’의 교부 그레고리(Gregorius of Nyssa 330?-395?)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신에게 날(日, the day)을 주시는 분이 또한 그 날에 필요한 것도 주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루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신다면 그 날에 필요한 것도 주실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복된 말씀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주기도에서 구하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씀은 당일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욕심내거나 너무 많은 것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날 하루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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