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부르심에 합당한 삶(엡4:1-6)

열려라 에바다 2024. 8. 8. 11:20
부르심에 합당한 삶(엡4:1-6)
 
권호만barnabak추천 2조회 29424.08.02 13:20댓글 2
 

부르심에 합당한 삶
에베소서 4:1-6


주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우리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크던 작던 상관없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의 정신이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13:22)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시고 하나님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 사람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주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물론 그런 말씀을 붙잡고 그런 표어를 정하였다고 다 그런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교회인 줄 압니다만 우리의 목표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이 목표를 지향하고 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흩어져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1)
이 본문을 중심으로 창립기념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이 본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15:16)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거나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의 말씀에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4) 고 했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했다’(5)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많은 사람가운데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어느 돈 많은 부자가 무남독녀인 딸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광고를 내면서,
자기 집에 있는 큰 호수를 건너는 사람에게 자기 딸을 주고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이 광고를 보고 몰려온 수많은 청년들을 모아 놓고 주인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호수에는 열흘 동안 굶긴 악어들이 수십 마리가 있고 독을 가진 물뱀이 그득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기가 꺾여서 주춤하였습니다.
부자 집 딸을 얻어 사위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내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주저하고 있던 그 순간 한 용감한 사람이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그 용기를 부러워하면서 이 사람이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사태를 주시하였습니다.
다행이 이 사람은 악어와 독뱀에게 물리지 않고 무사히 호수를 건너게 됩니다.
뜨겁게 환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걸어오는 그 사람의 표정이 묘했습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한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도 호수를 건너고 싶지 않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밀어서 할 수 없이 호수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놈이 죽음의 호수에 밀어 넣었나? 살아나면 내 가만두지 않겠다.’ 고 다짐을 하면서 열심히 호수를 건넜습니다.
다 건너고 나니까 그 밀은 놈이 죽일 놈이 아니고 정말 고마운 분이예요.
자기의지로는 절대 호수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누군가가 밀어서 호수에 들어가게 되었고
부자 집의 사위가 되고 재산을 물려받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절대 여러분의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밀어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친구나 이웃들을 통하여 예수 믿은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이 밀으신 것입니다.
나는 별로 예수 믿을 생각이 없었어요.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뒤에서 슬쩍 밀어 넣으셨습니다.
내가 축복하고 보호할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라고 슬쩍 밀으셨습니다.
나는 호수로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누가 밀었는지 밝혀지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이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나를 밀어서 호수로 뛰어들게 한 하나님이 너무 고마운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분이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많고 많은 교회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000교회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밀어 넣어서 억지로 들어가 보니 그 교회가 바로 000교회입니다.
000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 교회에 대한 소문도 듣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이 교회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교회로 밀어 넣으셨다는 믿음으로 이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유의 주가 주시는 엄청난 축복을 누릴 뿐 아니라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을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교회를 성도들의 어머니와 같다는 비유로 그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요즘에 하나님의 교회가 장길자를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가르쳐서 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하나님의 교회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고 칼뱅과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라는 책에서 교회가 성도들의 어머니라는 비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품속으로 자녀들을 모으시기를 즐거워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와 어린아이 시절 동안만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 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어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 강요, 4 1.1).
칼뱅은 어머니가 아이를 케어 하는 과정을 교회의 역할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성숙할 때까지 보살피는 것처럼, 교회의 핵심 역할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이들을 지속해서 인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강요, 4 1.4)
여러분,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사랑스런 품과 같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믿음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일 뿐 아니라 000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지체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1)
부르심을 받은 자는 불러주신 자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일을 하게 되었다면 자기를 불러준 국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제국을 이루었던 알렉산더는 세상의 끝까지 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알렉산더의 군대가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용맹함이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용납하지 않았던 가장 큰 죄는 전선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도망병은 즉각 처형을 시켰는데 한 번은 도망병중에 앳된 병사가 있었습니다.
순간 알렉산더 대왕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병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렉산더입니다.”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알렉산더는 큰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놀란 병사는 알렉산더입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알렉산더 대왕은 병사에게 달려가 그 목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 이름을 바꾸던지, 아니면 네 삶의 태도를 바꿔라
당시 최고의 용맹을 자랑했던 알렉산더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적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은 알렉산더의 이름에 합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다고 하면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습니까?
성도들의 합당한 삶은 여러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은 부름 받은 교회에서 합당하게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 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고 교회가 하나 될 때 신앙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먼저는 겸손하고 온유하게 사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한 몸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두 말할 것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지식 나의 물질 나의 학문 나의 외모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신의 학문과 지식과 외모와 재력과 권세와 명예를 자랑하면서 그것 때문에 교만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본다면 얼마나 잘 못 사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결코 교만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처음에도 겸손하고 나중에도 겸손하고 집사가 되어서도 겸손하고 장로가 되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도 겸손하고 나 만큼 배우지 못한 사람 앞에서도 겸손하고 나만큼 갖지 못한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큰일을 하고서도 겸손하고 칭찬들을 만한 일을 하고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겸손할 때 교회는 하나 될 수 있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온유하게 대합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되기 때문에 많은 차이점들이 나타납니다.
자기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자기 것만을 고집하고 자기의 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성질을 내고 얼굴이 불거지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차이점이 있음에도, 나와 다른 의견이 채택되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따르고 순응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 온유함이 있을 때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2) 둘째는, 사랑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삶입니다.
초대교회를 연구해 보면 기독교가 심한 박해 속에서도 크게 왕성하게 되는 두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노예와 여자들을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인구의 3분의 1이 노예였는데요, 노예는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팔고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노예는 물건이요 말하는 도구에 불과했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예를 그리스도인은 형제로, 자매로 영접했어요.
너와 나는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다. 노예라고 차별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는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노예였지만 교회는 그들을 사랑 안에서 용납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인과 노예가 같이 하나 됨을 지켜나갔을 때 이것이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여성인데요, 옛날에 여성의 지위라는 게 형편없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할 때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으로 생각해서 헤아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형제자매 꼭 같이 그리스도인이요 다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녀노소를 차별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사랑으로 용납한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노예와 여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하고 받아들였을 때 기독교는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노예와 여성들이 자기들을 받아들이고 용납해 주는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부름받은 성도들의 합당한 삶입니다.


3) 오래 참음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모든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용납하는 삶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오래 참음으로 지속할 때 이 모든 삶이 빛을 발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인내로 합당한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교회가 되고 하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밀어 넣으신 이 000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와 사랑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한, 두 번으로 끝내지 말고 오래 참음으로 계속해나갈 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고
우리 000교회는 더욱 아름답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