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장 강해(2)
이제 요17장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5절)하고 기도하십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절)
주님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자신을 나타내심이 그분의 영화가 되고,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광도 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우리는 그 분께
받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밖에 두고
믿는다고 하고 그리스도의 내주 역사하심을 믿지 못하면 이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우리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바로 신앙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일이며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섞음입니다.
기름부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나의 기업’하고 노래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먹고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의 무위도식하는 자가 됩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고 결국 하나님이
그 업적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8복을 이루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절)
그 다음 요17장2절을 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들은 바로
주를 따르며 주를 배우는 주의 제자들입니다(눅14:25-35)
하나님은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모든 육체를(만민)
다스리는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육체인 인간이 영생을 얻으면 주의 제자가 됩니다.
그 때부터 주님의 학교에서 천국체질이 되는 고도의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10) 곧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하는 항복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요17:3절은 영생에 관한 설명입니다.
영생은 말 그대로 끝이 없는 무한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생은 먼저 유일하신 참(실제, 사실) 하나님을 아는 것(기노스코신)이라고 합니다.
‘유일하다’는 말은 많은 신들 중에 오직 ‘하나’라는 뜻입니다.
남자들 중에 남편감은 많으나 나의 남편은 오직 ‘하나(유일)’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이요 실상이십니다. 상상이나 가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형이상학의 영의 하나님께서 실상이 될 때까지
계시를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좇아가는 경건의 훈련을 반복해야만 합니다.
그 다음 영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삼위 하나님이 사닥다리처럼 연결이 되면 영생을 압니다.
그 다음 4절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으니’
이 세상 곧 이 땅에서 영화롭게 했다는 말과 주기도문의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말씀을 대비시켜 보면 같은 맥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으니 주님을 모신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제게도 이루어 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평안’을 얻고,
주님과 함께 일을 할 때에 ‘승리’를 하게 됩니다(요16:33)
믿음으로 평안을 얻으며 주와 함께 행함으로 승리를 얻습니다.
행함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주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해집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4절) 곧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말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그 일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기서 ‘지금도’ 하는 시간은 아들도 천사도 모르는 그 시간을 말합니다.
그 다음 창세전에 가졌던 주님의 영화는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던 영광을 말합니다. 세상은 이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그 전부터 영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가 다시 그 영광의
상태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다 이루는 사도의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권세도 주시고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영광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세를 부여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나라로 오셨다가 그 일을 다 이루었으므로 이제 본래의 영광으로 돌아가십니다.
이 일을 마치신 이후부터 그 분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데 이 일 또한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 우리 또한 그 분의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시는 믿음(고후13:5, 요일5:12)이 영생의 기본이며 그로부터 생명의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시간마다 먹으며 그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 영화롭게 되어 갑니다.
그로인해 주님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해져 우리의 기쁨이 되고 이 구원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며 아버지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첫째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5절)하고 기도하십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절)
주님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자신을 나타내심이 그분의 영화가 되고,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광도 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우리는 그 분께
받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밖에 두고
믿는다고 하고 그리스도의 내주 역사하심을 믿지 못하면 이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우리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바로 신앙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일이며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섞음입니다.
기름부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나의 기업’하고 노래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먹고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의 무위도식하는 자가 됩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고 결국 하나님이
그 업적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8복을 이루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절)
그 다음 요17장2절을 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들은 바로
주를 따르며 주를 배우는 주의 제자들입니다(눅14:25-35)
하나님은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모든 육체를(만민)
다스리는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육체인 인간이 영생을 얻으면 주의 제자가 됩니다.
그 때부터 주님의 학교에서 천국체질이 되는 고도의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10) 곧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하는 항복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요17:3절은 영생에 관한 설명입니다.
영생은 말 그대로 끝이 없는 무한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생은 먼저 유일하신 참(실제, 사실) 하나님을 아는 것(기노스코신)이라고 합니다.
‘유일하다’는 말은 많은 신들 중에 오직 ‘하나’라는 뜻입니다.
남자들 중에 남편감은 많으나 나의 남편은 오직 ‘하나(유일)’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이요 실상이십니다. 상상이나 가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형이상학의 영의 하나님께서 실상이 될 때까지
계시를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좇아가는 경건의 훈련을 반복해야만 합니다.
그 다음 영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삼위 하나님이 사닥다리처럼 연결이 되면 영생을 압니다.
그 다음 4절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으니’
이 세상 곧 이 땅에서 영화롭게 했다는 말과 주기도문의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말씀을 대비시켜 보면 같은 맥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으니 주님을 모신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제게도 이루어 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평안’을 얻고,
주님과 함께 일을 할 때에 ‘승리’를 하게 됩니다(요16:33)
믿음으로 평안을 얻으며 주와 함께 행함으로 승리를 얻습니다.
행함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주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해집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4절) 곧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말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그 일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기서 ‘지금도’ 하는 시간은 아들도 천사도 모르는 그 시간을 말합니다.
그 다음 창세전에 가졌던 주님의 영화는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던 영광을 말합니다. 세상은 이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그 전부터 영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가 다시 그 영광의
상태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다 이루는 사도의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권세도 주시고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영광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세를 부여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나라로 오셨다가 그 일을 다 이루었으므로 이제 본래의 영광으로 돌아가십니다.
이 일을 마치신 이후부터 그 분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데 이 일 또한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 우리 또한 그 분의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시는 믿음(고후13:5, 요일5:12)이 영생의 기본이며 그로부터 생명의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시간마다 먹으며 그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 영화롭게 되어 갑니다.
그로인해 주님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해져 우리의 기쁨이 되고 이 구원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며 아버지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출처: 컴앤씨월드미션 원문보기 글쓴이: 瑤翰 김요한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일설교. 진실로 진실로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장 1절 ~ 10절) (0) | 2024.09.14 |
---|---|
스크랩 요한 복음 17장 강해(1) (0) | 2024.09.11 |
스크랩 가이오로 본 축복 (요삼 1:1-4) (0) | 2024.09.10 |
스크랩 이스라엘 역사의 교훈 (고전 10:5-11) (0) | 2024.09.10 |
스크랩 보복 공격을 퍼붓는 유대인과 아랍인 (창세기 14장 1~2절) (0)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