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정경
신약 27권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하여, 무슨 기준에 의하여 지금의 27권으로 구성되었는가?
1. 신약성서 정경이란?
정경(canon)은 헬라어 `카논`에서 유래. 규례, 표준, 한계, 범위 등의 의미로 사용.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새 언약의 어휘는 터툴리안이 사용했고, 이 두가지 어휘를 결합하여 `신약의 정경`이라고 처음 사용한 자는 400년경의 마카리우스 마그네스이다.
2. 정경화의 원인
첫째,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면서 더 권위있는 예수님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구약성서가 그들에게는 부적합했다. 또한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도 구약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둘째, 사도들과 일차적 증인들의 사망으로 구전의 역할이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임박한 재림에 근거한 종말론적인 기대보다는 지연된 종말론이 대두되면서, 기록의 수집과 보존이 필요했다.
셋째, 영지주의, 말시온, 몬타누스와 같은 이단들이 출현하게 된 점이다. 이들은 당시 구약성경과 일부 신약 성경을 가지고 놀았다. 이러한 이단들은 교회로 하여금 정경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자극하였다.
넷째,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다양한 성서적 유형의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명한 정경의 경계가 필요했다.
다섯째, 현대의 책과 같은 코덱스 형태가 등장하며, 한 권에 많은 양의 글을 묶을 수 있어서.
3. 정경화의 역사
1) 초기 수집과 신약성서 책들의 사용시기(90-170년)
신약이 다 완성되고 타티안이 `디아테사론`을 완성한 때까지. 사도교부, 속사도 시대로서 신약성서의 책들의 초기수집과 사용시기로 볼 수 있다. 특징은 4복음서와 바울서신의 묶음집이 형성되고 그 권위가 인정되고 있는 점이다.
①초기 언급들: 로마의 클레멘트가 96년경에 예수님의 말씀을 구약과 동등한 권위있는 말씀으로 인용. 그 외 사도행전, 로마서, 고전, 디도서, 히브리서, 계시록 등을 인용.
사도요한의 직제자인 폴리캅의 서신(110년경)에도 신약의 책들의 인용이 많다.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 저스틴들이 신약의 말씀을 인용함.
②타티안의 `디아테싸론`: 저스틴이 165년에 순교하고 나서 그의 제자 타티안이 170년에 4복음서를 가지고 요한복음을 기조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적합한 부분을 발췌한 하나의 복음서 `디아테싸론`을 만들었다. 이는 교회가 4복음서의 권위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③말시온의 `반대명제`: 140년경에 복음서에서는 누가복음만, 그리고 목회서신을 제외한 바울서신 10권만을 가지고 자신의 정경을 만들어서 퍼트림. 구약은 전면부인하고, 신약에 나타나는 구약의 요소도 제거함. 자기식대로 성경을 만들어 유통. 이에 대해 주류교회는 단호히 대처.
④현존하는 최고의 파피루스 사본들: 파피루스 P52로서 약 130년경의 코덱스 사본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부분이 워낙 적음. 그 외 P45, P47, P46 등이 있음.
⑤요약: 일찍부터 교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으며 사용된 복음서들과 바울서신의 모음집이 있었으며, 야보고서, 베드로후서, 요한 2,3서,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성서의 책들에 대한 증거가 있음. 교회가 4복음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용하였다는 증거가 명백함.
2)신약성서 정경의 출현시기(180-220년)
최초의 정경목록으로 볼 수 있는 무라토리 조각사본이 기록되었다고 추측되는 180년경을 기점으로 위대한 저술가 3명, 즉 리용의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그리고 220년에 사망한 카르타고의 터툴리안까지를 포함한다. 이 시기는 신약성경의 정경이 출현하는 시기이다.
이 때 나타난 정경목록은 4복음서, 사도행전, 13개의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유다서, 그리고 계시록이 확고한 정경의 위치를 확립하였음. 나머지 책들은 논란 중에 있었다. 즉, 3세기를 들어서면서 신약성서 정경은 분명해지고, 다만 그 한계에 대한 논의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3)신약성서 정경의 확정시기(220-400년)
위대한 교부들과 중요한 교회회의를 통해 신약성서 정경이 확정되는 시기이다.
①두 도시의 교부 오리겐: 인정된 책 21권(4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서신들과 베드로전서, 요한일서와 계시록), 논란이 되는 책 6권(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삼서, 유다서)로 분류.
②동시대의 다른 교부들: 히폴리투스, 키프리안, 디오니스우스 등이 신약을 분류.
③교회사가 유세비우스: 오리겐의 분류를 약간 수정하여 사용. `널리 인정된 책들` 22권-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들, 요한일서, 베드로전서, 요한계시록. `논란이 되지만 대다수가 인정하는 책들`-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삼서. `배척되어야 할 거짓된 책들`-바울행전, 헤르마스의 목자서, 베드로 묵시록, 바나바서, 디다케, 히브리 복음서.
④최고의 대문자 사본들: 시내사본, 바티칸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클라로몬트 사본. 여기서 시내사본만이 유일하게 현재의 신약성서의 모든 책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이다.
⑤시릴에서 어거스틴까지:
-동방교회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있다. 그는 기독교 정경의 개념으로 `카논`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주교로 있는 동안 45번의 부활절 서신을 발표했는데, 39번째 되는 367년의 서신에서 신구약의 정경을 다루었다. 정경적인 책, 세워주는 책, 외경 3가지로 분류.
386년에 사망한 예루살렘의 시릴은 계시록을 제외하고 아타나시우스의 목록을 모두 받아들임.
397-40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황금의 입, 요한 크리스토솜은 4개의 일반서신과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모든 신약성서를 아주 많이 인용함. 오늘날 영어의 바이블의 어원인 헬라어 `비블리아`를 처음 사용.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27권의 신약정경을 동방교회에서는 통일되게 받아들이지 않음.
-서방교회에서는 303년 2.23일에 신약성서를 파괴하려는 황제의 칙령이 내려져 수난을 겪기도. 대표적인 교부로 제롬이 있다. 그는 불가타를 완성한 인물이다. `제롬에게 있어서 정경은 감사함으로 받아서, 충성스럽게 보존하여, 손상됨 없이 전해야 하는 자료였다`
히포의 교부 어거스틴은 신약의 정경을 아타나시우스와 동일하게 27권을, 그러나 순서는 다르게 언급했다.
⑥중요한 교회 회의들: 라오디게아 교회회의, 히포와 카르타고 교회회의가 있다. 이때부터 신약 27권의 정경 이외에 다른 책들은 열거되고 있지 않음. 이렇게 해서 드디서 4세기 말에는 신약의 정경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4)카르타고 교회회의 이후의 신약 정경
그 후 중세기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에라스무스가 1516,1519,1522년에 걸쳐 헬라어 신약성서를 3판까지 출판할 때는 신약성서 27권에 더하지도 덜하지도 아니했다. 그러나 루터는 소위 정경 안의 정경의 문제를 야기시킴.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하. 유다서는 베드로후서의 요약이기에 잉여된 책이며, 히브리서의 저자를 아볼로로 보면서 2차적인 위치를 부여하였고, 계시록은 그 모호성 때문에 부수적인 위치에 놓았음. 그 이유를 이 책들은 그리스도를 고양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신약은 가치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신약성경을 전승된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권위는 교회가 아닌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마음에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성서 그 자체의 진정성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보았음. 히브리서의 정경성은 의심치 않았음. 저자는 다르게 표현. 칼빈은 루터가 차별있게 본 성경을 차별없이 받아들임.
이러한 칼빈의 전통 안에서 1647년 역사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태어남. 성서의 권위는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가 아닌 성서의 저자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과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으로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부터 나오는 그 자체에 신적 권위가 있다고 선언.
신약성서의 정경(Ⅱ)
-정경의 기준, 외경 그리고 남은 과제
1. 정경의 기준: 4가지로 요약됨. ①정통성 혹은 신앙/진리의 규칙 ②사도성 혹은 고대성 ③수용성 혹은 전통적인 사용 ④영성 혹은 영감성.
-사도성 혹은 고대성: 사도가 저술하였는가? 의 문제. 또 그 문서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의 문제다. 즉 1세기 안에 기록되었는가이다.
-정통성: 신앙의 원칙 혹은 진리의 원칙의 문제. 곧 교회공동체가 인정한 기독교의 기본전통과 일치하느냐의 문제. 그 문서의 내용이 올바르냐의 문제.
-공교회성 혹은 전통적인 사용: 공간적 시간적 측면. 내외적인 요소. 이를 동서방 교회가 지속적으로 받아들였는가의 문제. 수많은 교회들이 아주 오랫동안 받아들인 책들이 정경으로서 훨씬 더 강력한 위치에 있다는 것.
-영감성: 모든 정경은 하나님의 영감성이 있어야.
2. 신약의 경전 외적 글들
①기록되지 않은 것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정경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 즉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어록`을 아그라파라 부른다. 이 아그라파에 대한 증거들이 신약 정경 뿐만 아니라 여러 사본들, 교부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②사도적 교부들의 글: 사도적 혹은 속사도적 교부들은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말함. 이들의 글로서 한 때 정경으로 여겨진 책들이 있음.
-다다케: 12사도의 교훈집을 말함. 저자 미상. 80-100년 경에 소아시아 지방에서 헬라어로 기록. 전체 16장(2부 혹은 4부)으로 구성. 제자의 길에 대한 글.
-바나바서: 바나바에 의해 60-130년 사이에 기록. 전체 15장으로 구성. 에비온파와 유대인들의 구약관을 경계하고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자 함.
③클레멘트 1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서. 96년에 사도적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에 보낸 편지. 고린도 교회의 내분에 대한 항의와 조정의 목적으로 기록.
④헤르마스의 목자서: 저자인 헤르마스는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며 상인이었음. 로마에서 긴 기간에 걸쳐 기록되고, 수정된 것으로 보임. 다섯가지 환상시, 열두가지 계명, 열 두가지 비유로 구성됨. 핵심적인 주제는 회개론이다.
이 밖에 베드로 묵시록, 바울행전 등이 있다.
3. 신약의 외경
` 아포그리파`라는 단어를 쓴다. `숨겨진 것들`이란 의미. 외경을 지칭하는 말이다.
-출현요인:
첫째는 예수의 생애와 사도들의 활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갈망 때문.
둘째는 이단적인 경향을 가진 이들이나 어떤 집단이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이름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사상을 교회에 투입시키기 위해 만들어짐.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
-신약 외경의 목록과 규모: 상당히 많다. 도표 참조.
-외경의 유익한 점과 한계들: 정경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2-3세기와 그 이후에 발전되어 가는 초대교회와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증거물들이기에 가치가 있다. 그러나 미국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경향들은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한다.
4. 신약성서 정경의 문제들
①정경작업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은가?
라오디게아 서신이나 제3의 고린도 서신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자들은 열려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나 실제적으로 닫혀있다고 본다.
②어떤 형태의 본문이 정경인가?
③권위가 있는 책들을 교회가 인정한 것인가? 권위가 없는 책들을 교회의 권위로 인정한 것인가? 전자가 개신교 루터의 견해. 후자는 로마 카돌릭의 견해.
④정경속의 정경? 축소된 정경, 정경성의 특질을 정의하는 원리,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는 원리가 논의됨. 우리가 제 위치를 찾아주어야. 차별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해야.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추구해야.
신약성경의 정경화 과정 | |||||
시기 | 특색 | 연대 | 중요한 출처 | 수용대상이 된 책 | 논의대상이 된 책 |
사도 교부들 | 공식적인 논의와 심각한 토론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음 | 100-140년경 | 사도교부들의 기록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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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자들의 활동 | 초대교회가 영지주의자 (특히, 발시온)에 의해 제외된 정경화작업을 반박하고 나옴 | 140-220년경 | 교부들의 문헌 인용무라토리안 단편(180년경)진리의 복음서(영지주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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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완료작업 |
4세기 말경 일반적인 합의점을 도출함 | 220-400년경 | 오리겐의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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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비우스의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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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나시우스의 부활적 회람편지(367년)-동방교회 최종 승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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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회의(382년)-서방교회 최종 승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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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회의(397년)-전체 교회에게 보급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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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카톨릭이 사용하는 외경이 정경에 포함된 적은 교회사의 역사가 증거하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AD170 년경의 무라토리 정경목록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 후서,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 3서, 요한 계시록등의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책들은 그 각 책의 사도적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다.
신약 27권 중에서 베드로후서, 요한2 3서, 유다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정경이 5세기 초에 시리아(수리아) 말로 번역, 발표되어 표준성경의 구실을 하였는데 그것을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동방의 시리아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 22권짜리 신약성경을 정경으로 가지고 있다.
4세경의 유세비우스(270~340)는 정경을 호모레고메나(Homolegomena: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책),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책), 노타(Nota:가짜책)의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정경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2 3서를 안티레고메나에 분류했고, 요한 계시록은 호모레고메나에 분류했지만 노타에 넣어야 된다고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4세기 경의 예루살렘의 키릴(AD 315~386)은 신약성경의 강의목록에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책을 소개했다. 요한계시록은 11장에서 언급했듯이 로마제국을 비판것이라는 입장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경전 이었다.
AD 367년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부활절 서신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지금의 신약성경와 똑같은 목록을 제시했다.
이 신약성경 27권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397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정식 채택하였고 어거스틴도 이 정경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된것이다.
제롬은 불가타 라틴어역에서 외경을 포함시켰으나 그것이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기록하여 놓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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