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성탄절 예화 이야기(3)

열려라 에바다 2024. 11. 26. 11:22

성탄절 예화 이야기(3)

성탄 관련 의견 찬송 기타

복음서의 신빙성과 성경의 무오성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기사를 당시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구축해 보면 마치 두 복음서의 기록에 차이(충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일치하며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1. ‘주후’(AD)의 기원

지금 우리의 햇수 계산 방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원년으로 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을 ‘주전’(Before Christ: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이라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를 ‘주후’(Anno Domini: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라고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연대 기술 방식은 주후 6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했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든 것이다. 그는 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가 그에게 부활절의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기를 도입하였다.

사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의 연호(무슨 왕 몇 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로마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주후 284-305년 재위)의 즉위 연대를 기원으로 하는 마르티르(Martry)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박해했던 왕이었기에 교황은 그러한 왕의 연호를 부활절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당시의 대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하여금 진정한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로마제국의 기원 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비교 연구하였고 이렇게 산출된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754년 후였음을 발견하였다(로마제국은 주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음). 그리하여 그는 A.U.C.(ab urbe condita[도시(로마) 건설 이후]) 754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경과 고대 문헌을 연구한 후에 예수님이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는 A.U.C. 754년이 아니라 적어도 A.U.C. 750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 750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중대한 계산상의 착오를 일으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해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 연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주후’(AD) 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던 까닭에 오늘날까지 그냥 일반화되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근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마 2:1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대왕(Herod the Great)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다. 헤롯대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주전 4년에 죽었다. 이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Antiquities, 17.6.4). 특히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롯이 죽던 해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주전 4년 3월 12일에 실제로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헤롯의 사망 연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은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 된다. 게다가 마 2:16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롯 대왕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헤롯 대왕이 듣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헤롯 대왕이 동방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이를 두 살 이하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적어도 그때로부터 약 1-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전 6-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2:22은 이때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의 아들로서 주후 6년까지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 왕 때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셨다고 기록한다.

한편, 눅 2:1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배경을 설명하면서 로마 황제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31-AD 14년 재임)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이러한 호적등록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서 눅 2:2은 이 호적등록령이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Syria)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것은 주후 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신 것이 되어 마태복음의 기록(헤롯 대왕의 죽음 이전)과 맞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년의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비평학자들의 공격 표적이 되어 왔다. 그들은 누가가 마태의 기록(예수님이 헤롯 대왕 때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눅 1:5을 볼 때 누가는 예수님께서 헤롯대왕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로서 주의 깊게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누가가(눅 1:1-4) 당시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를 모를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것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에 제시된 것으로, 눅 2:2에서 ‘처음’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프로토스’가 잘못 번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first) 한 것이라’는 말은 원래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기 전에(before) 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뜻과 ‘전에’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에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4년경에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누가는 이때의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행 5:37) 이때는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주후 6년경에는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등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헤롯 대왕이 이미 죽고 헤롯의 세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고 유대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렸다. 그런데 호적등록령의 목적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고 따라서 각 지역은 별도의 세금을 걷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갈릴리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은 정황상으로도 옳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차이가 없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과 요세푸스의 자료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 6-4년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 날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 날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임의로 정한 날짜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황을 통해서 살펴 볼 때 예수님은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목자들이 날씨가 따뜻한 늦봄이나 여름에만 들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성탄 당일이나 그 직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때는 예수님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아마 몇 개월 후)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들이 세 개의 선물을 바쳤다고 해서 세 명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성은 있지만) 맞지 않다.

성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신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게 된다(롬 14:17). <고신대/ 황원하목사>

BC와 AD,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8세기(672/673-735) 영국의 역사가이며 후에 교회의 박사로 추앙된 Bede가 자신의 역사기록에서 BC와 AD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물론 BC는 Before Christ(그리스도의 탄생이전)를 말하는 것이고 AD는 (ANNO DOMINI) 즉 주님 이후를 말하는 것이다. 즉 고대의 문헌들과 전통 및 자료들을 연구하여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추정하여 AD 1년으로 잡았다. 고대 요세프스의 기록이나 타키투스, 헤로도투스 등의 로마역사가들의 기록 등을 참조하여 연대를 추정하여 제기된 것이 AD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학계의 연구와 역사학계의 연구에 의해 예수님의 탄생이 BC 3년-AD 6년까지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Bede가 추정한 AD1년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연대 즉 정확한 AD1년이 언제인지는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는 않았다.그렇다면, 만약 이렇게 AD가 불분명하다면 이후 연도를 매기는 AD *년이라는 것도 틀린 것이 아닌가?위에서 언급된 혼란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연대 기록이 3년 혹은 7년이 늦어지거나 빨라지지는 않는다. AD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일정한 해로 잡고 그 해를 AD1년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탄생이 어느 해이건 간에 AD1년은 연대구분으로서의 AD1년이다.

예수님의 탄생연도에 따라 시대가 앞당겨지고 늦춰지는 것은 아니다. 즉 규정한 AD1년을 기준으로 삼아 313년째 된 해에 콘스탄티누스의 신교의 자유법령이 선포된 것이지 예수님이 탄생하신지 313년에 선포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AD *년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우리는 AD 2005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부연하면 우리가 예수님 탄생 2005년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AD 2005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AD1년이 언제인가 즉 예수님의 탄생이 언제인가라는 주제의 혼란이 있다고 해서 예수님의 역사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탄생시점이 BC3년부터 AD7년 어간이라는 것으로 인해 정확한 해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 뿐이다.

20세기에 와서 BC와 AD라는 구분이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해서 BCE와 CE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BCE는 Before Common era이고 CE는 Common era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Before Christian era와 Christian era라고도 불린다.그러면 Christian era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Christian era는 527년경 로마에 살았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라는 스케테 출신 수도사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로마제국의 건설 후 753년에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해를 그의 연대기에서 1년으로 잡고 이 해를 '주님의'("of the Lord") 해라고 불렀다. 우리가 말하는 A.D.와 같다. 그는 그 다음 해 즉 AD 1년을 Ante Christum (A.C. 그리스도 이전) 혹은 Before Christ (B.C.)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AC 혹은 BC와 '주님의' 해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탄생이 AD1년 보다 3년 앞선 BC 3년 즉 로마창건 후 760년이라고 생각하여 그 해를 원년으로 삼았다. 그의 Christian Era에 대한 생각은 이태리에서 먼저 채택되었고 기독교 제국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AD 1000년에 이르러서야 유럽에서 사용되었고 14세기 중엽후까지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동방박사와 목자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이었다. 페르시아의 학자들이요, 현자들이요, 엘리트들이었다. 동방의 왕들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다. 대개 이들은 움직일 때마다 안전을 위해 12명 이상이 그룹을 지어 다녔다. 그러므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사실만으로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확실치 않다. 이들은 메시아를 대망하다가 별을 따라 먼 길을 여행해 베들레헴까지 갔다. 혹자는 2년 이상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열심히 연구하다가 치밀한 준비를 거쳐 아기 예수를 스스로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목자들은 형편없이 무식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 소나 양과 같은 짐승들과 뒹굴다 보니까 옷은 언제나 땀냄새로 진동했고 먹는 것도 변변치 못했다. 늘 집을 떠나 들판을 전전하면서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음주와 음담패설에 젖어 있기 일쑤였다. 그런데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성탄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천사가 알려주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귀인 동방박사들은 천체를 연구하다가 스스로 예수 탄생을 알게 되었지만 천민 목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천사를 직접 보내셔서 알려주었다. 동방박사들이 메시아를 능동적으로 발견한 사람들이었다면, 목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아무 상관 없이 전적인 은혜로, 수동적으로 발견되어진 사람들이었다

동방박사형과 목자형 신앙인이 있다. 전자는 치밀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자주적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이다. 불교 용어로 말한다면 점수(漸修) 지향적인 신앙인인 셈이다. 숱한 이지적인 엘리트들이 이 진영에 속한다. 후자는 자발적인 노력 없이 순식간에 하나님을 체험하고 피동적으로 진리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돈오(頓悟) 지향적인 신앙인인 셈이다. 대개 지적으로 순박한 대중들이 이 캠프에 속한다.

존 웨슬리의 경우 1738년 5월24일 영국 올더스게이트에서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기 전까지 동방박사형 구도자였다. 옥스퍼드의 최고 지성인으로서 인간적인 성결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했다. 이와 같은 자의 발견적인 의(義) 추구는 조지아 주 사바나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소 앞에 수레를 세우듯이 성화를 의인화에 앞세운 결과였다. 경건과 자비의 실천이 의인화의 결과라기보다는 그 선결조건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진 회심 이후에 비로소 그 순서를 재정렬시켰다. 칭의를 자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100%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보았던 것이다. 비로소 수동적 목자형 은총 체험을 능동적 동방박사형 구도(求道) 앞에 두었던 것이다

베들레헴의 별은 역사적 사실이다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과연 역사적 사실일까?

동방 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은 신화나 동화와 같이 꾸며 낸 이야기인가, 박사들에게만 보인 기적인가, 아니면 역사적·과학적 사실인가. 매년 이맘때면 성탄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며 '동방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추억들과 새벽송을 돌 때 대문 위에 걸려 있는 삼태성을 바라보며 동방 박사 세 사람을 연상하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성경에 베들레헴의 별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 2장 1∼11절에만 4번 나온다. 4번이나 사실적으로 기재된 것을 볼 때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예수님의 전기를 기록한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별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했다. '별'은 높음의 의미와 더불어 왕을 상징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24:17)" 하신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구세주이신 왕으로 탄생하셨고 특별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다(창1:14∼18). 여기서 '별들이 이룬 징조'란 무엇일까? 성서는 점성술을 엄중 금지(신17:2∼7)하고 있으므로 별들의 징조는 점성술이 아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 하신 말씀과 같이 하늘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보여 주며 별자리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구원과 심판의 징조들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메릴린 히키의 「하늘의 징조」 참조). 여기 베들레헴의 별은 예수님의 탄생과 인류 구원의 징조로서 성탄의 밤하늘을 말없이 밝힌 것이다.

그 별은 크고 밝게 빛난 별이었는가?

외경 중 '야고보의 원복음서'와 '이그나시우스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19번째 편지'에는 "크고 밝고 신비로운 별"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헤롯은 물론 유대인들도 그 별을 인지하지 못한 것(마2:7)"으로 보인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사9:2)"는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참 빛(요1:9)이요, 생명의 빛(요8:12)이요,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밝은 빛이다. 베들레헴의 별도 예수님처럼 큰 빛을 발했는지, 아니면 성화 속의 모습과는 달리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신(사53:2)" 예수님의 겉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시력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별은 약 1,500∼2,000개이다. 그 중 베들레헴의 별은 초대 교회의 전승과 찬송가의 가사 대로 크고 밝은 별이었는지는 모르나, 누구든 쉽게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특별하게 밝은 별인 것 같지는 않다.

항상 볼 수 있는 별 중 가장 밝은 별은 금성과 시리우스이며, 특별한 시기에 밝게 빛나는 별로는 혜성, 신성, 초신성(별이 폭발하며 밝게 빛나는 별), 이성상합(2개의 별이 서로 겹쳐지며 밝게 빛나는 현상), 유성(별똥별) 등이 있는데, 그중 베들레헴의 별은 어느 것일까?

천문학자 케플러가 발견한 베들레헴의 별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최초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체를 연구한 천문학자는 케플러이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는 루터교 목사가 되려고 할 정도로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프라하로 와서 천문학을 연구하였으며 별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밝힘으로 점성술이 거짓임을 입증하였다.

행성 운동의 3법칙(타원 운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공전 주기의 법칙)을 발견한 후 그는 "나의 발견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만 높아지게 하시고 나의 이름은 쇠하게 하소서"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의 발견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인공위성 궤도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드려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집중 연구했으며 BC 7년 5월, 10월 및 12월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3번 이성상합을 이루며 밝게 빛을 발한 사실을 계산해 냈다. 목성은 '왕'의 별이며 토성은 가나안 지방의 방패 유대 민족의 수호성(구원자)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물고기는 익투스의 의미와 같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그는 이 이성상합이 바로 베들레헴의 별로서 "유대인의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탄생의 징조"라고 믿었으며,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볼 때 천문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를 드렸다.

현대과학 의해 밝혀지는 신비

천문학자 케플러는 베들레헴 별애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는 이성상합이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지목했다.

컴퓨터에 의한 계산과 별의 이동 경로를 천정에 비추며 확인하는 프로젝터인 플라네타륨(천상의·천체 투영기) 조사 결과, 3차례 합은 BC 7년 5월 29일, 9월 29일 및 12월 4일에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추측하면, BC 7년 5월 29일 목성(왕)과 토성(구원자)이 물고기자리(메시아)에서 약 1도(달 지름의 2배) 거리로 근접하여 빛을 발하는 1차합을 보고 동방 박사들은 유대 땅에 왕이 탄생하였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두 행성이 서로 멀어지다가 8월초부터 다시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박사들은 구세주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한 것 같으며 마침내 9월 29일 2차합이 이루어지자 이들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약 2달 동안 900km의 먼 거리를 여행한 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당시의 유대왕인 헤롯을 만났으나 왕궁에는 최근에 왕자가 태어난 사실이 없음을 알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며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 12월 4일, 왕궁을 나서는 순간 3차합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본 박사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마2:10).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남쪽으로 약 8∼10km를 걸어 아기 예수 계신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별은 완전한 3차합을 이룬 상태로 머물러 있었으므로(마2:9), 박사들은 그 집의 아기가 바로 메시아임을 깨닫고 그 분에게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이다(마2:11).

케플러는 약 400년 전에 이 사실을 밝혔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와 천체 관측 기술의 향상으로 더 많은 연구와 제안들이 이루어 졌다. 캠브리지 대학의 헨프리즈, 스페인 천체물리연구소의 마르키저(저서 「베들레헴의 별」), 천체물리학 박사 마이클 몰나(저서 「베들레헴의 별-동방 박사의 유산」) 등의 저서를 보면 더 큰 은혜가 넘치리라.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우상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세의 시신과 법궤와 성경 원본을 감추신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의 별도 그 흔적을 지우시고 비밀에 부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다시금 하늘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마24:29∼30),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광명한 새벽별(계22:16)'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 탄생하셨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s(미사)의 합성어이며 동방 박사들이나 목자들처럼 탄생하신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날이다. 서방교회는 2세기부터 12월 25일(북방지역의 수목제날. 당시의 동지. 태양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가 떠오르는 '태양의 탄생일')을 빛이신 예수님의 탄생일(요1:9∼10)로 지켰으며, 동방교회는 여섯째 날에 첫 사람 아담을 창조 하셨으므로 1월 6일을 둘째 아담(고전15:45∼47)이신 예수님의 탄생일로 삼았다.

AD 525년 디오니시우스는 기발하게도 로마 황제의 재위 기간을 역산하여 예수 탄생 기원을 계산하였으며, 로마기원 753년을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주전) 1년으로 하였고, 로마기원 754년을 AD(Anno Domini, 주님의 해·주후) 1년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옥타비아누스란 이름으로 재위한 기간을 빠트렸고, 기원 원년 없이 BC 1년에서 AD 1년으로 바로 건너뜀으로 다시 1년을 빠트렸으며, 이 문제는 약 1,500년 후인 지난 2,000년도에 Y2K라는 컴퓨터상의 대 혼란을 야기하였다.

예수님의 탄생 시점은 헤롯왕이 죽기 전이며(마2:19), 베들레헴에서 어린아이들을 학살하기 이전이다(마2:16). 마리아가 아구스도의 영을 따라 호적 하러 갔을 때이며(눅2:1),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처음 한 것이다(눅2:2). 동방에서 그의 별이 나타났을 때이다(마2:1∼2). 예수님은 30세쯤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눅3:23), 3년 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때에서 역산하면 탄생 시점을 알 수 있다. 세례요한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나셨으며(눅1:26), 요한이 배태된 때는 아비야 반열이 대제사장 직무를 행할 때이었다(눅1:5-8).

헤롯은 BC 37년부터 BC 4년까지에 유대 왕으로 있었으며,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가 죽은 해에 월식이 있었고, 월식 후에 그의 아들 안티파텔을 죽였고, 5일 이상 지난 후에 여리고에서 죽었으며, 애도기간(7일)이 지난 이후에 유월절이 있었다. 플라네타륨으로 유대지방에서 볼 수 있었던 월식을 조사한 결과 BC 4년 3월 12일 밤에서 13일 새벽 사이에 월식이 있었다. 그해 유월절은 4월 11일이었으므로 헤롯은 BC 4년 3월 17일에서 4월 4일 사이에 죽었으며, 예수님은 BC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다.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의 아이들을 학살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아(작은 마을이었으므로 학살자 수가 많지 않아 기록에 없는 것 같음) 그 시점을 알 수 없으나, 헤롯이 죽은 후 예수님의 가족들이 애굽에서 돌아올 때 학살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갈릴리에 정착한 것을 보면 헤롯은 아기들을 학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즉 1∼3년 이내에) 죽은 것 같다.

당시 예수님은 6개월∼1년 된 아기였을 것이므로 헤롯이 죽은 해에서 이 기간들을 감하면 예수님은 BC 7∼5년에 태어나신 것이다. 목자들이 경배드릴 때 예수님은 갓난 아기(눅2:16)였으며, 축사 안의 구유에 누워 계셨다(눅2:16). 그러나 동방 박사들이 경배드릴 때의 예수님은 어린 아기(무릎으로 기거나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아기, 마2:11)였으며 집에 계셨다(마2:11).

예수님 탄생은 12월 아닌 5월

터툴리안의 기록에 의하면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는 BC 27∼AD 14년 사이의 로마 황제였다. 당시 유대는 수리아 총독 산하에 있었으며, 수리아 지방의 호적조사는 BC 9년에 명을 내려 BC 8∼6년에 시행 되였다.

람세이 교수는 최근 발견된 고대 기록에 의거 "구레뇨는 그의 재임기간 중 2번 수리아 지방의 인구조사를 하였으며, 첫 인구조사는 BC 7∼6년에 시행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는 성경의 기록 "첫 인구조사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눅2:2)"과 일치한다.

BC 7년 수리아 총독은 퀸틸리우스이었고, BC 6∼5년에는 사트루니우스였으나, 구나덴시아 전쟁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구레뇨는 아구스도 황제의 특명으로 총독 교체기간 전후에 총책임자(특사, 성경의 총독과 동일 의미)로서 인구조사를 한 것이다. "구레뇨는 AD 6∼9년에 수리아 총독을 하였으며 AD 7년에 호적조사를 하였다"는 요세푸스의 기록과 예수님의 탄생 시기가 맞지 않아 곤혹스러웠으나, 구레뇨는 몇 차례 수리아 총독을 하였음과 이것은 그의 2차 인구조사 기록(행5:37)임이 밝혀졌다.

케플러가 발견한 베들레헴의 별(BC 7년 5월 29일 출현)은 그의 생전에는 당시의 역사 기록과 맞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최근 고고학 연구 결과인 'BC 7년 탄생 설'과 정확히 맞다. 더구나 예수님 탄생 당시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떼를 방목하던 정황(눅2:8, 12월엔 불가능하나 5월은 적기)과도 일치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유월절 전날인 금요일이었으며 음력 보름날이었다. 플라네타륨 조사 결과 만월과 금요일과 유월절 전날이 겹친 날은 AD 30년 4월 7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예수님이 '13일의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으나 플라네타륨 조사 결과 이런 날과 유월절 전날이 겹친 적은 없으므로 나중에 지어낸 거짓말임이 밝혀졌다.

여기서 약 3년 전인 AD 26∼27년경, 즉 예수님이 30세쯤 되셨을 때(여기 30세쯤의 의미는 30세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 30대를 의미한다)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3:23). 예수님이 BC 7년에 탄생하셨다면 33∼34세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7세 때인 AD 30년 4월 7일에 돌아 가셨으며 당일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뒤인 AD 30년 4월 9일, 주일 날 새벽에 부활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크리스마스 변천사

 

2000년전 이 땅에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려 오신 우주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기록되어 그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죠. 우리가 흔히 성탄절이라 부르며 달력에 빨간색 표시가 되어 '노는날'로 지정되기까지는 그 탄생의과정과 의미를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베들레헴 구유에 누우신 날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뉴밀레니엄의 한가운데 이르기까지 Christmas의 변천사(?)를 알아보겠습니다.

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으로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생일이 기록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도들은 특정일을 지정하여 예수님 오심을 기념하게 되었죠. Christmas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도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 이교도들의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거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 축제는 274년 로마황제 'Aurelian'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기념하여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동지절(12월 24 일 - 다음해 1월 6일)을 최고의 명절로 지켰었답니다. 그러던 것을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대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지에 관한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마다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12월 22일에 팥죽을 쑤어 문설주에 바르고 먹는 등 악귀를 물리치려는 척사의 관습이 있지요.)

Christmas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월 25일을 Christmas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Christmas로 지켰는데 이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날을 기념하여 현현일(Epiphany)로 기념한 것이었습니다. Christmas은 그 후 동방 교회로 퍼져나가 콘스탄티노롤리스(379년), 카파도기아(382년)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교회력의 기원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력 기원의 시원이 되었다.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계산한 데서 비롯된 시력기원의 기점인 예수님의 탄생은 실제로는 현재보다 4년이 앞당겨진 것이지요.)

Christmas가 오면 곳곳에 Merry Christmas라고 써 놓은 것을 보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X-MAS라고 쓴 것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이 표기를 영어의 X(엑스)로 생각하여 혹자는 'X-MAS'는 잘못된 표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엑스마스'라고 발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X'자는 영어 알파벳의 'X'자가 아닙니다.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서 이 뒤에다 MAS자를 붙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표기는 X-MAS로 할 수 있지만 읽을 때에는 반드시 'Christmas'라고 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표기한 대로 '엑스마스'라고 읽는다면 완전히 본 뜻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지난 날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들은 표기대로의 'X-MAS'를 지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학에서는 미지수의 표기를 X, Y, Z로 표시합니다. 그것은 '모른다'는 뜻으로 성탄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하나의 축제로 지낸 우리들의 Christmas는 곧 '엑스마스'였던 것입니다.

이제 12월 25일은 진정한 Christmas로서 지켜야 하겠습니다.

Christmas와 함께 오래도록 지켜 내려 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는데 Christmas 장작, Christmas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이(Holly), Santa Claus, 마구간 등이 그것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면 이들 관습의 많은 부분이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이것은 본래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축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그대로 남아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듣는 각국의 고전 캐롤 소개

크리스마스 캐롤은 크리스마스 때 부르는 신앙의 즐거움을 표현한 노래로서 보다 엄격히 말하면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B, V1, B, V2……B 형식을 갖는 중세 후기 영국의 노래이다. 영국 캐럴의 황금기(1350경~1550)에 대다수 캐럴은 유절 노래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14세기 초부터 본질적으로 민중적 종교 노래로 고정되었다. 당시의 많은 캐럴 선율과 500개 정도의 가사가 전래되고 있는데, 대개 아기 예수, 크리스마스 이후의 성인들의 축일을 기리는 것들이다. 그밖에 가사 내용이 사랑이나 도덕, 풍자, 시사와 관련된 수난 캐럴과 부활 캐럴도 있다. 가사로 사용되는 시는 기교, 재능, 효과에 있어 뛰어나며 2개의 언어(보통 영어와 라틴어)를 함께 사용한 마카로니 캐럴이 많다 캐럴은 예술음악과 문학형식의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음악적으로 캐럴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고정 형식’(forme fixe)으로서 프랑스의 롱도, 비를레, 발라드와 비교될 수 있는 장르로 부각이 되었다. 캐럴은 종교개혁 후 잠시 주춤했다가 ‘브로드사이드 곡집’(Collections of traditional broadsides)에 힘입어 다시 부활하였는데 바로 그 유명한 우리 찬송가의 “저들 밖에 한 밤중에” 〈첫 크리스마스 The first Noel>가 실려 있다. 캐럴의 또 다른 출처로는 영국의 민요 캐럴인 〈I saw three ships〉와 번안 외국 캐럴을 번역한 (프랑스의 noël에 해당)이 있다.

독일

German, 14th century Setting by KAREN KEENE IN DULCI JUBILO

독일의 캐럴은 14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 성탄의 의미를 부각하게 되었는데 이 곡의 가사의 뜻을 영역하면 “In sweet rejoicing now sing and be glad All our joy”로 감미로운 기쁨 속에서 우리의 모든 기쁨으로 오신 구주 예수를 큰 기쁨으로 찬미하자는 아름다운 독일의 성탄 캐럴이다.

Brahms, Johannes(1833-1897) ES IST EIN'S ROS'S ENTSPRUNGEN

(from 11 choralvorspiele opus 122)

이 곡은 대림절(Advent)의 대표적인 찬송으로 15세기의 독일 캐럴로 작곡가가 미상이다. 한 송이 장미꽃으로 피어나신 성자를 이사야서 11:10의 말씀 속에는 이새의 뿌리에서 새싹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작은 한 싹은 부드러운 향기로 온 하늘 채우고, 그 영화롭고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밝게 비취었다. 참 신과 참사람으로 온 인류를 구하신 영광의 날을 노래하는 캐럴이다. A A B A형식으로 작곡되었다. 브람스는 11개의 오르간 코랄 프렐류드를 작곡하여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하였는데 그 이전에 클라라에게 여러 작품들을 헌정하면서 다음에 드릴 곡은 더욱 더 좋은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예시를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11개의 코랄 프렐류드를 두고 더 좋은 작품으로 말한 것이다. 불멸의 기독교 음악의 유산가운데 제일가는 백미가 바로 찬송이며 코랄이다. 유절 찬미가로 여러 절의 가사를 지닌 찬미이다.

J. S. Bach(1685-1750) Allein Gott in der Hoh sei Ehr (BWV 662)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바하의 대림절기의 대표적인 오르간 코랄로 천사들이 마구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께오르락 내리락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해주는 독일 전통 17세기 성탄코랄이다. 강생하신 성자이신 아기 예수의 오심을 감격으로 맞이하며 그 성자 예수이신 주님을 더욱더 묵상하도록 해주는 곡이다.

J. S. Bach(1685-1750) Praeludium pro Organo pleno (BWV 551,1)

바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가장 사랑받는 푸렐류드 중 한 곡이다. “삼위일체”라고도 불리어지는데 그 것은 주제가 성부, 성자, 성령부분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있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의 위엄과 성자 예수의 순종과,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표현해 준다.

프랑스

French carol, Arr. D. Bish He is Born

프랑스 지역에서 중세어 ‘carol’과 ‘carole’(프랑스와 노르망디 지방에서 사용)은 이교적 맥락을 지닌 민중의 노래, 특정 양식의 다성 노래, 민중적인 종교 행렬을 의미했으나 15세기에도 캐럴은 계속 대중적인 종교 노래로 남게 되었다. 성부들은 하성부인 테너보다 정교한데 테너는 보통 유명한 아쟁쿠르 지방의 캐럴 〈Deo gratias Anglia〉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율을 전달하며 당대의 다른 음악에서처럼 화성보다 선율이나 리듬에 비중이 주어졌다. 이곡도 리듬적이고 선율적인 면이 강하다.

Louis-Claude Daquin(1694-1722) NOEL

루이 클로드 다켕은 프랑스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컬 프렌치 스쿨(Classical French organ school)1600-1800년대의 대표적인 오르간 연주의 대가요 즉흥연주의 대가로 명성을 누렸으며 오르간과 쳄발로 곡들을 남겼다. 노엘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노래를 노엘이라고 한다. 다켕의 12개의 캐럴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음색으로 연주하게 하였는데 그의 작품들은 은혜롭고 사랑스러우며 따뜻하며 강렬하다.

이태리

Pietro A. Yon(1886-1943) 아기 예수 Gesu Bambino(Pastorale)

이태리 태생의 Pietro A. Yon(1886-1943)은 밀라노의 로얄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후 로마 시실리아 아카데미등지 에서 공부하였으며 바티칸 시의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한 후 1926년부터 1943까지는 뉴욕으로 건너가 성 패트릭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사역을 하다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성탄절 곡으로는 아기 예수 Gesu Bambino(Pastorale)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스위스

Louis-Claude Daquin(1674-1727) Arr. Don Hustad Swiss Noel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인 루이 클로드 다켕은 그의 12개의 노엘 중 하나를 스위스의 캐럴 곡으로 선택하여 여러 개의 변주곡 형태로 작곡하였다. 여기에서도 프랑스인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노엘로 표현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를 볼 수 있겠다. 이곡은 미국 루이빌에 위치한 남 침례교 신학 대학교의 교회음악 교수이며, 오르가니스트이며 즉흥연주의 대가인 단 휴스타드가 편곡하였다.

폴란드

Poland Carol, Arr. Albin C. Whitworth Infant Holy, Infant Lowly(성스러운 아기 예수 겸손하게 나셨네)

캐럴 음악의 형식을 보면 점차 종교적이고 정교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명의 독창자가 후렴을 노래하면 3성부 합창이 이어지며 2성부 절은 합창의 후렴으로 끝날 수도 있게 불려졌다. 초기 캐럴의 리듬은 일정하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6/8박자의 리듬을 갖는다. 후에는 기본 리듬이 3/4박자가 되었으며 6/8박자와 3/2박자가 교차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 곡도 초기 캐럴 형식의 2성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3박자의 리듬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 캐럴곡조는 Whitworth가 편곡하였다.

라틴 성가

David Lasky Trumpet Tune on “Adeste Fideles” 참 반가운 신도여

이곡은 라틴 성가의 가사를 채택하여 18세기 영국 찬송가 작시 작곡가인 죤 프란시스 웨이드가 지은 찬송으로 영국적인 장엄함과 중후함으로 많이 사랑받는 찬송가이다. 주제는 각 절마다 뚜렷하게 표출되었다. 베들레임으로의 초대, 경배, 신앙에 대한 증언, 새로 태어난 왕께 대한 경배로 이어지는 성탄절기 최고의 찬송가로 사랑받고 있다.

영국

Felix. Mendelssohn(1809-1847) Hark, the herald angels sing

15세기의 캐럴은 영국 중세 음악 중에서도 상당히 비중 있는 음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종교개혁과 함께 완전히 소멸되었고, 대신 시편 찬송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캐럴은 당시 최고의 크리스마스 찬송가를 쓴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인 찰스 웨슬리의 찬송 작시와 멘델스존의 작곡으로 인해 태어난 천사 찬송하기를 “Hark, the herald angels sing”로 인해 다시 시작되었다. 멘델스죤은 독일 유절 찬미가인 “코랄”을 발전시킨 바하에게 음악적 종교적 영향을 지대하게 많이 받은 작곡가였다. 그의 오르간 소나타에서도 코랄을 주제로 사용하여 변주곡 형태로 발전시켰으며 19세기 초. 중기의 제일가는 독일 낭만주의 거장이다.

G. F. Handel(1685-1759) Arr. David Lasky PAEAN ON "Joy to the World"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성탄 캐럴로 영국의 객관적인 찬송가의 아버지인 아이작 왓츠의 작시와 헨델의 작곡으로 메시야에서 오케스트라 오프닝으로 시도된 곡이었으나 로웰 메이슨에 의하여 다시 수정, 보완 하여 우리 모두가 애창하게 되었다 이 캐럴은 David Lasky가 오르간 곡으로 편곡하였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종소리”

Louis Vierne(1870-1937) Carillon de Westminster, opus 54

( from Piece de Fantaise Pour Grand Orgue)

프랑스의 20세기 오르가니스트요 작곡가인 루이스 비에른은 프랑스 노틀담 사원의 오르가이스트로 노틀담 오르간 재 건축을 위한 모금을 위하여 영국에 연주여행을 가게 되었고 웨스트민스트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이곡을 작곡하였다. 웨스트민스트 사원 타워 종탑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에 담긴 네 개의 음으로 이처럼 위대한 작품을 만든 비에른이 만약 당시에 영국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곡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종소리 “탄일종”

장수철(1917-1966) 김은희(b.1962)Improvisation “탄일종이 땡땡땡” 주제에 의한 즉흥연주 ‘탄일종이 땡땡땡’의 작곡가 장수철(1917-1966)은 본관이 봉수(鳳壽)이며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출생이다. 중앙신학교(中央神學校)를 거쳐 일본 고등음악학교를 나온 뒤 미국 오하이오주(州) 무디대학 종교음악과를 졸업하고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강릉사범·정신(貞信)여학교 교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숭실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독교인으로 종교음악에 대하여 특별히 연구하고 유년주일학교용 성가집 《탄일종》을 발간하였다. 한편 발성법에 대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 고아들로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만들어 미국·일본·독일·프랑스·인도·노르웨이·네덜란드·캐나다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 공연하여 절찬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가 작곡가이다. 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성탄 캐럴 탄일종을 주제로 독주자인 김은희 오르가니스트에 의해 즉흥연주로 초연하게 된다. / 총신대 김은희교수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기

성탄절이 되면 캐럴이 울려 퍼진다. 캐럴(carol)은 4세기의 암브로시우스가 지은 Veni redemptor gentium(오소서, 만민의 구세주여)가 그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386년에 만들었다는 이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Veni, redemptor gentium; /ostende partum Virginis; / miretur omne saeculum: / talis decet partus Deum. (오소서, 만민의 구세주여, /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고 / 그로 인하여 온 세상이 놀란 / 하나님이 그 탄생을 명하신)

이 노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하(Johann Sebastian Bach)가 그의 칸타타 61번에 인용하여 더 유명해졌다. 암브로시우스 이후에 클레르보(Bernard of Clairvaux), 프랜시스(Francis of Assisi) 등의 시들이 캐럴로 불렸다. 1833년에는 영국의 윌리엄 샌디스(William Sandys)라는 사람에 의하여 『고대와 현대 크리스마스 캐럴집』(Christmas Carols Ancient and Modern)이 만들어졌는데,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아는 <만백성 기뻐하여라>(God Rest You Merry, Gentlemen), <저 들 밖에 한밤중에>(The First Noel), <천사 찬송하기를>(Hark! The Herald Angels Sing), <참 반가운 신도여>(Adeste Fideles) 등이 들어 있다.

1. “곧 오소서 임마누엘”

중세부터 전해내려오는 찬송가 중 하나인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은 우리나라에서 대림절 찬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림절(待臨節)은 영어로 Advent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강절(待降節) 또는 강림절 등의 여러 용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대림절은 성탄절부터 4주전에 시작되어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엄숙한 교회 절기이다. 본래 이 대림절 기간에는 금식을 하기도 하였고, 결혼식도 금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오르간을 비롯한 악기의 사용도 금하였다.

이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의미도 함께 포함된 절기이다. 그래서 구약의 이사야서나 신약의 세례요한에 관련된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하고, 오실 주님을 진심으로 고대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절기이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대림절에 대한 특별한 영성적 지침이 없는 것이 아쉽다. 교회의 대림절은 교회학교 발표회나 성가대의 음악회 등의 성탄행사 준비로 분주할 뿐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교회의 대림절에는 어떤 요란한 행사나 음악회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행사를 금하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오실 주님을 모실만한 마음이 되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대림절의 정신이 다시 되살아나기를 소원한다. 예수의 탄생 사건은 그 자체에 이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하고 있다. 즉 예수는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대림절의 의미인 것이다.

대림절과 성탄절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마리아일 것이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성령잉태 사건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순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림절을 보낸다면 최고의 신앙생활이 될 것이다.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보면 신약시대의 유명한 찬가 중 하나인 <마리아의 찬가>가 나온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음악 전문용어로는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첫 단어가 라틴어로 Magnificat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마그니피카트와 더불어 누가복음에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찬송 세 종류가 나온다. 바로 사가랴의 노래인 베네딕투스(Benedictus), 그리고 시므온의 노래인 눙크 디미티스(Nunc Dimittis)가 그것이다. 그런데 중세부터 대림절 마지막 주간에는 마리아의 노래가 많이 불려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마리아의 노래를 오실 아기 예수님의 특성과 연관시켜서, 모음인 오(O)를 길게 뽑고 여기에 특수한 가사를 붙여 노래하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길게 뽑은 오-(O-)라는 모음 뒤에는 메시야를 상징하는 7개의 짧은 라틴어 성구를 붙여 노래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 지혜(O- Sapientia), 오- 주(O- Adonay), 오- 이새의 뿌리(O- Radix Jesse), 오- 다윗의 열쇠(O- Clavis David), 오- 동방(O- Oriens), 오- 왕(O- Rex), 오- 임마누엘(O- Emmanuel) 이렇게 가사를 붙여 노래했던 것이다.

이 7개의 짧은 성구를 주제로 이 찬송가의 가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각 나라의 교회마다 이를 서로 다른 가사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 찬송가(104장)에는 임마누엘, 지혜, 주에 관련된 가사만 실려 있다. 1절은 “곧 오소서 임마누엘”, 2절은 “곧 오소서 지혜의 주”, 3절은 “곧 오소서 소망의 주”가 나온다. 이 찬송가는 우리나라에 1959년에 발행된 『청년찬송가』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 찬송가집의 가사는 4절까지 되어 있었고, 그 내용은 1절 “임마누엘”, 2절 “이새의 뿌리”, 3절 “지혜”, 4절 “다윗의 열쇠”를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찬송시를 쓴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지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중세 찬송 가사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곡을 붙인 사람은 영국 성공회의 닐(John Mason Neale, 1818-1866) 신부였다. 그는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그가 1851년에 발행한 『중세 찬송가』(Mediaeval‎‎ Hymns and Sequences)집에 실었다. 그리고 이 찬송의 곡조는 중세의 그레고리 성가 중 하나라는 설과, 프랑스 단선율 성가 중 하나라는 설이 있다. 이 중세의 곡조를 영국의 헬모어(Thomas Helmore, 1811-1890)라는 사람이 화성을 붙여 편곡한 것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2.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절 찬송 중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불린 찬송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찬송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4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찬송가인 <찬양가> 53장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성탄찬송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한국교회가 130년 동안 부르고 있는 노래이다. 이 성탄찬송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밝고 힘찬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 때문에 성탄의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찬송가의 작사자는 ‘영국 찬송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명한 찬송 작가요 독립교회의 목사인 아이작 왓츠(Isaac Watts, 1674-1748)이다. 이 가사는 1719년에 그가 펴낸 시편 찬송집인 『신약의 언어로 모방한 다윗의 시편』(Psalms of David imitated in the Language of the New Testament)에 수록되었는데, 이때 왓츠는 이 찬송시의 제목을 ‘메시아의 오심과 왕국’(The Messiah's Coming and Kingdom)이라고 붙였다.

이 찬송가의 작곡자는 유명한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edrich Händel, 1685-1759)로 되어 있다. 그리고 편곡자는 미국 찬송 작곡가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으로 되어 있다. 미국 찬송가의 최고의 공로자인 메이슨은 1839년에 발행된 그의 찬송곡집 『현대 시편찬송』(Modern Psalmist)에 이 곡을 수록하고 “헨델로부터”(from Händel)라는 설명을 달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곡의 원 작곡자가 헨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헨델의 어느 작품에서도 찬송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멜로디를 찾을 수 없다. 단지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 중에서 제2번과 33번에 비슷한 멜로디의 일부분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이 곡의 작곡자에 대하여 헨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로웰 메이슨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다. 메이슨은 미국에서 태어나 일평생 1,100곡 이상을 작곡하고 500곡 이상을 편곡하여 미국 찬송가와 음악 교육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러니 메이슨을 이 곡의 작곡자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 중 이 노래만큼 유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찬송가의 가사 원문은 독일어다. 원문 전체를 소개한다.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och heilige Paar. Holder Knabe im lockigen Haar, schlaf in himmmlischer Ruh, schlaf in himmlischer Ruh!(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것이 잠든 때, 홀로 신실하고 지극히 거룩한 부부만이 깨어있네.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는 가사도 곡도 밤에 쓰였다. 그리고 이 노래의 초연도 늦은 밤에 이루어졌다. 이 노래의 가사는 전문 시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거창한 신학자의 작품도 아니다. 곡도 유명한 직업 작곡가의 창작품이 아니다. 그저 소박한 시골 목회자가 특별한 동기 없이 써놓았던 가사를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급하게 한 두 시간 만에 예배용으로 작곡한 노래이다.

이 노래를 미국에서 번역하였는데, 이는 독일어 원문의 뜻을 받들지 못한 엉터리 번역이다.

Silent night, holy night! / All is calm, all is bright. /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 Sleep in heavenly peace, / Sleep in heavenly peace

미국식 영어 가사에는 “모든 것이 잠들어있다”(Alles schläft)를 “모든 것이 고요하다”(All is calm)로, “홀로 깨어있다”(einsam wacht)를 “모든 것이 밝다”(all is bright)로, “신실하고 지극히 거룩한 부부”(Das traute hoch heilige Paar)를 “처녀 엄마와 아기”(Virgin, Mother and Child)로,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Holder Knab’ im lockigten Haar)를 “상냥하고 온순한 거룩한 아기”(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로 바꾸어버렸다.

이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의 번역이 아닌가? 이에 반하여 ‘고요한밤협회’(Stille Nacht Gesellschaft: Silent Night Society)가 내놓은 독일어 원문에 충실한 영어번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Silent night, holy night everyone sleeps; alone watches only the beloved, holy couple blessed boy in curly hair, sleep in heavenly peace(x2).(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사람이 잠든 때, 홀로 귀하고 거룩한 부부만이 깨어있네. 곱슬머리의 성스런 아기,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1818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의 한 작은 마을 안스도르프(Arnsdorf)의 초등학교 교사가 작곡한 “고요한 밤…”이라는 노래는 본래 교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어른보다는 어린이를 위한 노래의 성격이 짙다. 이 찬송가의 작사자(Joseph Franz Mohr)나 작곡자(Franz Xaver Gruber)조차도 이 노래가 후에 이렇게까지 유명해지고 전 세계에 애창되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였다. 이 노래는 찬송가로서 보다는 캐럴(Carol)로서 알려졌고 민요와 동요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세상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초기에 이 노래는 대중성이 너무 짙다(vulgar)는 비판을 받았다. 그 가사나 멜로디가 너무 동요적이고 민요적이어서 찬송가로서의 품위도 없고 캐럴로서도 적당치 않다는 평가 때문에 권위 있는 찬송집에 실리지 못하였다. 이 노래는 브램리와 스테이너(H.R. Bramley &J. Stainer)가 1871년에 편집한 『Christmas Carols New and Old』에 빠져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1861년에 초판이 시작된 가장 방대하고 권위 있는 찬송집인 『Hymns Ancient and Modern』의 결정판인 1924년 판(Standard Edition)에도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28년에 영국에서 발행된 아주 권위 있는 캐럴 모음집인 『The Oxford Book of Carols』에도 이 찬송이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1900년대 초기의 영국과 미국의 찬송가와 캐럴집에도 들어있지 않다.

이 노래는 후에 주로 어린이를 위한 캐럴로 찬송가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찬송이 얼마나 소박하고 민요적이고 동요적인 노래인가를 말해준다. 원문인 독일어에 나타나는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Holder Knabe im lockigen Haar)라는 가사만 보아도 그렇다. 찬송가로서보다는 동요적 색채가 짙게 풍기지 않는가?

이러한 소박하기 그지없는 노래에다 어떤 사람은 무거운 신학적이고 교조적인 해석을 가하여 예수님이 탄생했으니 “All is bright”이고 “어둠이 걷힌 밤”이라고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편 적이 있다. 순수한 원 가사에 불손한 해석을 덧칠하는 이런 행위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는 격이요, 동요를 벨칸토 창법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과오이다. 밤은 현상적으로 고요하고 어두울 뿐이다.

“고요한 밤…”은 전 세계적으로 종교나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크리스마스 최대의 캐럴이 되어버렸다. 또한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을 막론하고 편곡되어 그야말로 유비쿼터스의 노래가 되었다. “고요한 밤…”은 이제 기독교만의 유산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유물이고 국가적인 보물이다. (‘기독교사상’ 2015년 12월호)/문성모 교수

크리스마스의 전통과 관습

크리스마스와 함께 오래도록 지켜 내려 오는 전통과 관습이 있는데 Christmas 장작, Christmas를 상징하는 빨간 열매가 달린 초록색 담장이(Holly), Santa Claus, 마구간 등이 그것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면 이들 관습의 많은 부분이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이것은 본래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축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전통과 관습이 기독교의 관습에 그대로 남아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장작

고대 Scandinavia에서는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동지까지 해가 짧아 지다가 이 날로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하기위한 행사의 하나였는데, 태양이 없는 겨울울 지내는 북극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 다시 살아 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인 것입니다. 이 전통이 영국에 와서는 큰 장작(Christmas 장작 또는 Yule log)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Christmas 전날 밤에 벽난로(fire- place)에서 불을 붙여 밤새도록 태워 방도 따뜻하게 하고 Christmas의 흥을 돋구는 풍습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상록 담장 넝쿨

크리스마스 가 되면 집과 교회에 장식을 하고, 거리에 상점에 걸려있는 장식물의 대부분과 Christmas 카드,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계신 인터넷상의 사이트에도 빠짐이 없는 장식이 바로 이 상록 담장 넝쿨, 영어로는 Holly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넝쿨이 Christmas 의 대표적인 장식이 된 유래는 북유럽의 비기독교인들의 전통이 영국에 전해진 것이랍니다. 아리안 인종의 한 분파로 Ireland와 Wales 및 Scotland에 사는 켈트족과 게르만족들은 동짓날 축제 때가 되면 상록 담장 넝쿨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숭배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식물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태양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 때 쓰신 가시 면류관이 담장 넝쿨로 만들어졌다고도 주장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담장 넝쿨은 본래 흰 열매를 맺는 식물이었는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움으로 예수님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빨간 열매로 변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전설이구요. 이제는 Christmas때 담장 넝쿨로 화환을 만들어 교회와 집 문에 붙이는 관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면류관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독일에서 Martin Luther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인데요, Christmas 전날 밤 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이 Luther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뾰족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 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 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얘기지요.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상록수는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교도들의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와 기독교인들의 생명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진 전통이 Christmas Tree라는 것이라는 설이구요. 어쨌든 Christmas때 우리 주위에서 항상 그 의미를 알려 주는 상징물의 하나임에 분명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마스 색상의 의미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맞는 색깔을 꼽으라면?

흔히 빨강, 초록, 흰색이 쉽게 연상이 되겠죠. 빨강은 Santa의 옷색깔로, 초록은 담장 넝쿨로, 흰색은 눈으로 대표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그 색깔 뒤의 숨은 뜻은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가 담겨있답니다.

RED : Love and Sacrifice (사랑과 희생)

GREEN : Hope and Eternity (희망과 영원한 생명)

WHITE : Innocence and Purity (순수와 순결)

이젠 그냥 Christmas 분위기에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의미까지 깊히 생각하시는 ‘그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

로마에서 축제로 지키는 12월 17일 부터 24일 까지는 흥겹게 지내는 주간이었습니다. 이때는 집안을 상록수나 상록 담장 넝쿨, 그리고 촛불로 장식을 하고 선물을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종들에게까지 나눠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풍습이 Christmas에 까지 영향을 미쳐 오늘까지도 선물을 교환하는 문화가 생긴 것입니다. 또한 동방박사가 아기예수님을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린 것을 본받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라는게 강력한 추측입니다. 그러나 추측을 떠나서 1년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표시를 하는 문화는 Christmas가 사랑을 대표하는 날인만큼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화가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Christmas에는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것 자체가 즐거울 것입니다.

Christmas전날은 Christmas Eve, Christmas 다음날은? Boxing Day

흔히 Christmas Eve는 누구나가 Christmas를 기다리는 즐거움에 부푼 날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Eve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고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Christmas가 발전한 영국과 영국 연방 국가에서는 Christmas다음날 역시 중요한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Boxing Day’권투하는 날이 아니구요, 이날은 약 800년 전인 중세부터 유래했는데, 중세 교회에서는 Christmas 다음날 교회에 설치해 두었던 자선함(alms box)을 열어 그 속에 든 내용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Christmas때도 수고하는 우편배달부나 신문배달부, 청소부등에게 그동안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뜻에서 Christmas 선물(Christmas box)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추운 Christmas를 보내는 이웃에게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

'박사들(마고이)'의 어원은 점성가와 같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점성가가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롬1:20)한 진실한 천문학자들'이며,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본(마5:8) 현자들임이 분명하다. AD 250년경 터툴리안은 "박사들은 왕들이었다"고 말했다.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시68:29)", "낙타를 타고 와서 유향을 드리리이다(사60:3∼6)"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됐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동방 박사들의 수가 적혀있지 않아 몇 명이나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세 가지 예물을 드린 것으로 볼 때 세 사람인 것으로 추정되며 예루살렘이 소동할 정도로(마2:3) 상당수의 일행을 데리고 온 것 같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박사들의 이름은 가스팔, 발타살, 멜키올이다. 이들은 백인, 황인, 흑인이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며, 연령도 노인, 장년, 청년으로 각각이다. 이들은 당시 모든 세상, 모든 인종, 모든 연령층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변치 않는 황금은 예수님의 영원한 왕권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시신에 사용되는 몰약은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며, 예수님은 존귀하신 왕이시며, 하나님께 향을 드리는 제사장이시며, 십자가상에서 몰약을 맛보시고 죽으신 선지자이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는 금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을 예수님께 드려야 하며, 향기로운 향인 기도를 드려야 하며, 몰약과 같이 부패를 방지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크리스마스의 기본정신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말은 그리스도(Christ)와 마스(mas) 의 두 말이 합하여 된 말이다. "마스"란 말은 "예배"란 말과 같다. 카톨릭교회에서 에배를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미사"와 "마스"는 같은 말이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는 거기에 참 뜻이 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할까? 그 이유는 2천년전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분이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단순한 "나심"의 사건에 연결짓는다면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성자로 모시고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 될지언정 그가 예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예배의 근거는 "나심"(자연인의 탄생) 때문이 아니요, "오심"의 사건, 곧 성육신(Incarnation)에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속에서 인간 구원을 위해 그의 "오심"의 사건을 알려주는 칭호는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의미를 지녀야 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는 영광을, 이 땅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국가간에는 온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었다(눅2:14).

(2) 성육신 하셔서 영원자, 구원자로 오셨다(빌2:6-11).

(3)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눅4:18-19).

(4) 죄의 어둠과 실패와 좌절의 어둠을 이기는 빛으로 오셨다(요1:4-5).

(5) 복을 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요10:10).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처럼 천대받는 차별사회 속에서 만인은 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동등한 자녀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다. 항상 이웃속에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 이웃이 누군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분은 오셨다. 참 종교는 제사(종교의식) 그 자체 보다도 사랑의 실천(순종)에 있다는 순수한 진리를 알려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민중들의 가난, 질병, 고독함, 공포 그리고 각종 악령에 고통받는 아픔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죄의 댓가로 죽음이란 제한성 속에 사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어린양)이 되고자 예수님은 오셨다.

혼돈과 무질서의 역사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있는 세상 인간들에게 천사가 전한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는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 분에게 존경과 경배의 예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는 뜻도 모르고 막연하게 흥청대거나, 단순한 연례행사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보다 엄숙하고 정중한 것이 되어야 한다.

X- Mas와 주님의 새생명

'하나님 자신의 성자가 인자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들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크리소스톰).' 크리스마스의 의의는 크리스마스, X-Mas란 문자 중에 상징적으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X는 '크리스마스' 즉 그리스도, M은 '마니훼스트' 즉 현현하다, A는 '아가페' 즉 사랑, S는 '소테리아' 즉 구원을 각각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죄인인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큰 사랑으로써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X는 그리스도의 이름, 기름부음을 받은 구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있어서는 오시려고 하는 메시아, 신약에 있어서는 때가 차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신 성령에 의하여 잉태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면

서 사람, 사람이시면서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재위 자기 겸허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다만 한마디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뿐입니다.

M은 마니훼스트, 현현(顯現)하다, 현시하다의 뜻입니다. 그것은 선재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예언에 응하여 때가 차매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 성육신하여 현현하신 것을 가리킴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 : 23)" 마태, 누가적 처녀 탄생과 요한, 바울적 성육신은 이자선일적(二者選一的)인 것이 아니라 이자통일적(二者統一約) 진리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의 현현, 성육신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역사 중에 진입하여 이를 구원하려 하신 사실적 이름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란 무엇이냐 ?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진리"입니다.

A는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 16)"의 진리를 상징하는 문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주권적, 선행적, 섭리적, 구원적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비밀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 죄인을 사랑하여 거룩한 성자를 주시고,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구원의 대업을 완수하심에 있습니다.

S란 소테리아, 즉 구속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죄인인 인류의 구원에는 거룩한 하나님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의 희생이 필요하였습니다. 갈보리를 예상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갈보리는 다시 부활절을 예견합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쁨의 저쪽에는 더욱 큰 기쁨 중에 지양됩니다. 성탄절은 큰 신적 희극의 발단이요, 그것은 수난의 큰 신적 비극을 통하여 부활절의 큰 신적 희극 중에 완성을 봅니다. 이것만이 죄에 빠진 인류를 구하여 새생명을 주시려는 하나 님의 경륜의 비밀인 것입니다.

명사들의 잊지 못할 성탄절

성탄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설렘과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슴에 각인된 잊지 못할 사연들도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배하는 성탄절을 맞아 기독교계 명사 4인의 ‘잊지 못할 성탄절’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동대 총장 김영길 박사

서울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나는 미국에 유학, 뉴욕 PRI 공과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항공우주관리국(NASA) 연구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내가 미국 금속학회에 발표한 '제트엔진에 쓰이는 특수합금'이란 논문이 NASA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인교회에 출석했지만 거듭나지 못했던 내게 조 밀이라는 연구원이 NASA 기독모임에 초청했다.

모임이 있는 화요일 12시 내놓라 하는 세계적인 석학과 연구원 150명이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고 있었다. 기쁨과 감사, 평안이 넘치는 그들의 표정이 내게 큰 충격을 줬다.

이때부터 나는 과학자적인 자세로 기독교 신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오병이어'나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사건'은 도저히 과학이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이때 '기적의 이해'란 책이 나를 사로잡았다.

"원자와 분자로 시작되는 물질세계는 영과 혼과 육의 인간세계로 이어지고 다음이 하나님의 영적세계다. 이 영적세계는 마귀의 세계도 존재한다. 신앙이 없으면 이 영적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이 모든 것이 사실로 다가온다.

자신의 영적 수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기사와 이적을 이해하느냐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평가할 수 없고 하나님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며 영적 이해와 성령의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75년 드디어 나는 '영혼의 지진'을 경험했다. 계속되는 성경공부와 묵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집회를 통해 성령의 강한 은혜까지 체험하니 내 주변의 세계가 온통 새롭게 다가왔다.

◇ 월드비전 구호팀 한비야씨

1990년 성탄절에 나는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미국 유학생활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다. 토론식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등 나와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당시 동양인 여자를 싫어했던 한 미국인 여자친구가 나를 무척 괴롭혔다. 그 친구는 대학원생 가운데서도 '짱'으로 통했다.

한번은 친구들과 식사를 하던 중 물을 가지러 가던 나는 물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떠다주겠다고 했다. 한 친구가 내게 부탁했다.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그 '짱'이라는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동양 여자들의 저 노예 근성을 좀 보라"고 소리쳤다. 나는 파란 눈들을 향해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친절이라고 한다"며 당당히 밝혔지만 그 미국인 여자친구의 괴롭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계속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한국에서는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을 들었던 나였다. 미국에 와보니 상황이 너무 달랐다. 이런 곳에서 내가 따돌림을 당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치 나로 인해 우리나라가 망신을 당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신경성 위산과다로 쓰러졌다. 그때 나를 보살펴준 미국인 양부모께서 내게 바나나와 식빵 등을 먹으며 속을 다스리라고 주문했지만 도저히 그런 것들을 먹을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양어머니에게 "죽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 분은 "죽을 어떻게 만드냐"며 물었고 나는 대충 죽 끓이는 법을 설명해드렸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 가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이 놓여있었다. 양어머니는 "이게 죽이 맞니? 네 이야기만 듣고 동양마켓에 가서 쌀을 사와 만들었는데…"라며 쑥스러워하셨다. 그 분이 내민 죽은 국물만 흥건한 '홍수죽'이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 그 날 나는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양부모님은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나를 감싸안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양어머니가 끓여준 그 '홍수죽'을 먹었다.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양부모 덕분에 힘든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들이 새해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온다. 가장 힘든 시절 큰 웃음으로 성탄의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양부모의 얼굴이 오늘 따라 유난히 생각난다.

◇ 서울대 성악과 김인혜 교수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1985년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한 그 해 겨울 처음 뉴욕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내 인생에 커다란 축복의 날이었다. 제법 많은 한국 유학생 속에서 나와 가까운 기독인 친구 대여섯 명은 몇 개월의 준비기도 끝에 커다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름하여 '꼬실라이제이션'. 전도사업이었다.

미국 대학에선 성탄절 직전 겨울방학을 2주일 정도 갖는다. 우리는 이때를 이용해 멋진 곳으로 스키여행을 떠난다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냈다. 물론 우리의 계획은 그곳에서 전도수련회를 갖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의 사탕발림에 16명의 친구들이 넘어갔다. 그들을 데리고 포코노수양관으로 향할 때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스키복에 고글을 착용하고 모처럼 멋을 낸 친구들. 또 다른 친구는 카드놀이를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등을 전공하는 이 친구들은 모두 하루만 연습을 하지 않아도 그것을 자살행위로 생각했다. 그런 친구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꾐'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수양관에 도착하자마자 "사고의 위험이 있으면 안되니 짧게 기도하자"며 손을 모았다.

16명의 친구들은 시큰둥해하며 "그래, 짧게 끝내"라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기도가 시작되더니 한 두 명의 친구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여러 명의 친구들로 확산됐다. 나는 살짝 곁눈질로 친구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울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친구들은 용서를 구하며 잘못을 뉘우쳤다. 자신의 불신을, 교만을, 무지를, 그리고 자신의 죄악을 다 내놓았다. 모두 주님을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의 그 기도는 자연스럽게 철야기도와 찬양의 밤으로 이어졌다. 친구들은 자신의 악기를 꺼내어 연주하고 목청껏 눈물의 찬양을 불렀다. 경쟁과 도전 속의 음악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아껴주고 겸손으로 무장한 사랑의 메신저, 주님의 향기, 주님의 대사가 되기로 그 날 약속했다.

그때의 포코노의 주역들이 바로 명성황후 이태원씨, 총신대 이기선 교수, 이화여대 배일환 교수, 하피스트 박라나, 피아니스트 최승혜, 바이올리니스트 김호영씨 등이다. 지금도 그때의 첫사랑 같은 주님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 보잉코리아 박형순 상무

불혹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나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가난한 시골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와 친구들에겐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나누어주던 사탕과 연필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어떤 친구는 인근 동네까지 원정을 다녀온 후 두둑한 주머니를 자랑하곤 했다.

고무신 속에서 녹아버린 눈으로 발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얼굴에서는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가진 것 없던 사람들이 조금씩 쪼개어 사랑을 나누던 그때가 참 좋았다.

이전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해진 지금 크리스마스에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는다. 고무신 대신 첨단 신소재로 만든 신발을 신어도 왠지 발이 시렵다. 요즘 사람들은 영하 10도만 되면 살인추위라며 엄살을 떤다.

그러나 사랑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작은 선물에 감격하고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성년이 된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외국 출장을 다닐 때마다 유니세프 모금 운동에 동참하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면 순회하며 모금에 참여하는 나를 발견한다.

또 한 회사의 홍보담당자로서 얼마 전에는 '사랑의 집짓기'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성사시키고 그 기공식에 다녀왔다. 기공식에서 주최측의 한 관계자가 후원회사들을 무주택자들에게 보금자리를 지어주는 '참 좋은 산타클로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솟아 넘치는 사랑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365일을 무보수로 일하고 봉사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산타클로스라는 생각을 했다.

보잉코리아의 전 임직원과 가족들은 내년 봄 경기도 파주의 집짓기 현장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계절은 봄이 되어도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크게 고동치는 심장의 박동소리도 들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1년 내내 계속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사실로 알고 있는 7가지 크리스마스 신화

(크리스천 포스트)

크리스마스는 한 해 가운데 가장 놀라운 절기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관심이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 가운데 하나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진리 뒤에 있는 실체(하나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를 깨닫는다면, 이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이후로 가장 위대한 이 이야기에 많은 신화들이 덧붙여졌다.

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크리스마스와 관련해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성경은 예수님께서 12월 25일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는 매우 오래된 질문이다.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생일인가?” 정답은 예수님의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정확한 날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12월 25일이 되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크리스마스가 로마 이방인들의 축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대응이라고 믿고 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시기로 알려진 3월에 대한 반응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 태어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나셨다는 것과 성경이 정확한 날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2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2. 성경은 마리아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고 말한다?

만삭의 마리아가 나귀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는 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 가장 흔하면서 확실한 신화이다. 이에 따르면,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나귀를 타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65마일을 이동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 2장 1~6절의 말씀은 이를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만삭의 마리아가 이러한 여행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남성들도 감기가 걸리면 이불 밖으로 나오기 힘들지 않는가.

3. 성경은 3명의 동방박사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3명의 왕들(We Three Kings)’이라는 유명한 캐롤이 있다. 이 캐롤 역시 이 특별한 신화가 얼마나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있는지 말해준다. 마태복음에서는 3명을 마술사나 현자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3명의 동방박사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그들이 3개의 선물(황금, 유황, 몰약)을 가져왔다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동방박사가 3명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4, 8, 10명일 수도 있다.

4. 성경은 말구유 위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없는 성탄조형물을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별은 매우 좋은 요소이자 상징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서에 이같은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고(마2:1~2), 그 다음 베들레헴(9~10)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기를 발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롯 왕이 2살 이하의 자녀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느 때까지는 계속 베들레헴에 계셨음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는 별들도 없었고, 동방박사들도 없었다.

5. 성경은 예수님께서 헛간이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모든 성탄조형물에서 아기 예수님은 마굿간에 누워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가정이다. 성경에서 이를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실제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유’라는 언급 때문에 예수님께서 헛간이나 마굿간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다. 구유는 동물들의 먹이통이다. 그러나 먹이통은 일반적으로 집 안에 있었다. 추운 밤 가족들은 윗층에서 자고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아래 층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 성경은 예수님께서 A.D 0년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이고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이다. 이는 ‘주님의 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장 1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 왕 때 태어나셨다. 대부분 역사가들은 헤롯의 죽음을 B.C 4년 경으로 본다. 헤롯 왕이 2세 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는 그의 죽음 이전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년도를 추측해보면 대략 B.C 6~4년 사이로 볼 수 있다.

7.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은 크리스마스에서 그리스도를 지우려는 것이다?

이 말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홀리데이(holiday)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날’(holy day)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은 분명히 거룩한 날이 된다.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든 날이 거룩한 날이 될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기념일이라기보다 ‘예수님은 우리의 임마누엘이시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리를 축복하는 삶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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