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복음을 깨달으라 AG : 신앙인들
TS : 믿음이란 복음을 확신하게 깨달아 알고 믿는 것이다.
푸른 길잡이 물고기
태평양 깊은 바다 속에 사는 푸른 길잡이 물고기가 있다고 합니다.
태평양 깊은 곳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사는 이 물고기는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물고기는 종종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종을 짝사랑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어찌나 간절한지 사랑하는 물고기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수면 위로 올라가 낚시대에 걸려 있는 미끼를 물어다 줍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물고기가 춥다고 하면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그가 따뜻하도록 온도를 높여 주기도 합니다.
그의 마지막 남은 시신은 서서히 푸른빛을 내며 사랑하는 물고기가 어두운 바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서 인도해 가십니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살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밝은 빛의 세계로, 신령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 깊이 되새기면서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갈망하고 섬기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종종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지구촌으로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없이 높으시고 지고지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지구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것일까?
완벽하시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악이 난무하는 인간세계로, 인간의 몸으로 찾아올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의 구세주,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지구촌으로 찾아오신 지, 2028년이 지났는데도, 죄악된 인간 사회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 평화”라고 찬양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는데도 지구촌에 언제쯤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려나 막막하기만 하다.
아직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연재해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여전히 죄악들로 넘쳐나고, 미움과 다툼과 원망과 불평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와 나라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종교와 종교간에 전쟁이 끊어지지 않는다.
무기를 사용하여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은 다양한 무기의 형태만 달라질 뿐, 무기는 더욱더 고도화되고 발전하면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지금 지구촌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죄악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지구촌을 심판할 때까지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질 전망이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1948년8월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기에 예수님을 믿는 국민들이 100만 명만 되면 나라와 민족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면서 풍요롭게 잘 살 것이라고 여기고는 100만 명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그래서 각 학교에는 교목, 경찰에는 경목, 군대에는 군목, 형무소에는 형목, 회사에는 사목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100만 명이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승만 대통령께서 그렇게도 원하던 100만 명이 되었을 즈음에 1960년 4월 19일에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길을 올라서 애타게 조국통일을 염원하면서 평생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1000만 명이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존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이름만 내걸고 교회를 개척해도 성도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기도원마다 기도하려는 신앙인들로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다.
산마다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개최하면 밤낮으로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받으면서 기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이 축소되어서 500만 명, 600만 명이나 예수님을 믿는 지 모르겠다.
기도원에 기도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어도 모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점점 신앙인들의 숫자는 감소하고, 교회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교회문을 닫는 교회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저의 개인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이전보다 훨씬 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열망, 우리 구주 예수님에 대한 뜨거움, 생명의 말씀이신 성경에 대한 열정,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까지 사랑한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가슴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 염려, 걱정, 무서움을 느낀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에 동참해야 할까?
정말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날 급변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서 찾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삼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결단하면서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무언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구주 예수님과 예수님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을 제대로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깊이 깊이 더 깊이 예수님을 깨달아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흔적을 다시 깊게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D4.
① 복음서를 깨우쳐 주시는 주님.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을 복음서라고 한다.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메시야이신 예수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빼앗긴 하나님 나라와 생명을 회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주시려고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여 지상세계로 오셨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복음서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인간세계에 주시는 복음(福音)이라 한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에 주시는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복된 음성이다.
복음을 영어로 The Good News, The Gospel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네 사람에 의해서 기록하였는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인 마태라는 사람이 기록하였다고 하여 마태복음이라 부르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오실 때마다 마가 요한의 집에 머물렀는데, 이 마가 요한에 의하여 기록하였다고 하여 마가복음이라 부르고, 바울의 동역자요 의사였던 누가가 기록했다고 해서 누가복음이라 부르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요한이 기록하였다고 해서 요한복음이라고 부른다.
이들에 의해서 기록한 복음서를 4복음서라고 부른다.
ⓐ 4복음서를 상징하는 네 생물
에스겔 1:10에서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4:7에서는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라고 말씀하신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강림하면서 세워진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시작하여 사도들의 사역 시대를 걸치고 속사도 시대와 교부 시대를 걸치면서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네 생물의 모습과 4복음서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제롬, 아타나시우스, 이레니우스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4복음서와 4생물을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사자는 왕권, 황소는 희생,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 독수리는 교회를 지탱하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때문에 천사, 사람으로 상징하고, 마가복음은 광야에서 부르짖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라 하여 사자를 상징하고, 누가복음은 십자가 희생제물이 되시는 황소로 상징하고, 요한복음은 독수리의 활기찬 비행과 닮아서 높은 영성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 4복음서는 정사각형과 같다.
이 사복음서는 정사각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모습을 각각 다른 면을 가진 정사각형의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라는 사각형의 벽면에 마태는 왕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한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온 인류의 왕이란 점을 기록하기 위하여 다윗 왕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써서 붙이기도 한다.
유대인 제사장 그룹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마태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마가는 이방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오신 종이신 예수님, 섬기려고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점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인간의 측면에서 아담에 이르기까지 기록한다.
누가는 예수님은 사람이라는 점,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기록한다.
누가는 로마제국의 원로원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요한은 초대교회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단들, 특히 영은 거룩하고 육은 더럽고 악하다고 주장하면서 이원론적인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기록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밝히기 위해서 말씀이신 예수님,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통치하고 다스리는 왕이시고, 섬기는 종이고, 사람이시고, 하나님이신 분이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4가지 면을 기록하면서 완벽하게 정사각형을 이루어내고 계신다.
이 네 가지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복음을 올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4가지 모습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깨닫고 믿어야 올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4가지 모습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부정하여 가르치고 전한다면 그들은 이단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②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확증시켜 주시는 하나님.
1-2절에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흔적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상상이나 망상이나 꿈으로 꾸며진 설화나 신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어서 사람들을 혼란케 만들어내는지 모른다.
진화론 이야기들, 각종 귀신과 정령 이야기들, 반려동물 이야기들, 가짜뉴스들을 꾸며내어서 진짜인 것처럼, 가장하고 과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러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인가 하는 것이다.
2절에서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 목격자가 생존하고 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여러 이유들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예수님을 증명할 목격자들이 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이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이다.
예수님의 친가족들이 생존하고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존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수많은 이적들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던 이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5병2어과 7병2어의 이적도 직접 체험했고, 산상보훈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께서 로마 병사들에 의해서 끌려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도 직접 보았고,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자신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증언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 전달자들이 있다.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보았고, 두 귀로 똑똑하게 들었고, 어쩌면 두 발로 걸어서 예수님 곁에서 양 손으로 만져본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고, 장애를 고침 받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 기록자가 있다.
우리 성경에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한 사람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4명만 기록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결정할 당시에는 4명이 기록한 복음서만을 성경으로 인정한 것이다.
신약성경에 대한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초대교회는 363년 라오디게아 공의회, 393년 히포 공의회,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결정하여 공포하게 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 4복음서를 기록한 연대가 다르다.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AD50년 경에 기록되고, 누가와 마태와 가장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이 기록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누가복음이 AD 63년 전후에 기록하였고, 마태복음이 AD70년 전후에 기록하였고, 요한복음은 AD80-90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신약성경 27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유다복음, 바나바복음도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어쩌튼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하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③ 누가를 세우시는 하나님.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Luke)라는 사람이다.
누가라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누가는 이방인이다.
초대교회역사가인 유세비우스 (Eusebius of Caesarea, 260-340)는 누가가 "민족으로는 안디옥 사람이요. 직업적으로는 의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헬라인으로 수리아 안디옥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고 의사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이다.
누가는 이방인으로 의사이고,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이다.
누가는 복음서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과정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다.
누가는 그리스도께 부름받은 제자는 아니지만 바울의 선교를 동역한 사람이다.
누가(Λογκαν.)는 “빛을 주다, 빛을 비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이 직접 부르신 제자가 아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14에서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기록하면서 누가의 직업이 의사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3대 사단의 가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울은 안질과 두통과 간질 증세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누가는 항상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 곁에서 바울이 가진 질병들을 치료하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누가는 바울이 순교를 당한 후에 죽어서 튀르키예에 있는 에베소에 묻히게 된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에베소지역을 여행하게 되는데, 에베소 유적지를 들어가기 전에 누가의 무덤을 먼저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에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인 누가를 세워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커다란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면서 동시에 로마인으로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이다.
바울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 랍비의 제자로서 구약성경에 정통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입게 된다.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 의사로 일하면서 안디옥교회에서 신앙생활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개종한 이후에 아라비야 광야에서 3년 동안 지낸 후에 고향인 다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초대 목사로 부임한 바나바의 초대로 안디옥교회에서 1년 동안 동역하게 된다.
이 때에 누가는 안디옥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었고,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때 누가도 전도팀과 동행하면서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 동역자가 되었을 것이다.
누가는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격자들에게서 예수님의 행적을 전해 들으면서 자료들을 수집했을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수많은 목격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말씀들, 업적들, 행적들을 들으면서 바울의 동역자로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서를 기록해야 한다는 감동을 받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받으면서 누가복음서를 기록하고, 사도행전까지 기록하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AD63년 전후로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장문의 복음서를 써서 보낸다고 누가복음을 기록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도 데오빌로 각하를 수신자로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1;1-2에서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라고 말씀하면서 사도행전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 누가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보내게 된 데오빌로 각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길래 누가가 예수님의 행적과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하여 보내주는 것일까?
데오빌로는 헬라어로 테오필로스(θεόφιλος, Theophilus)이다.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사랑받는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데오필로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여러 추측과 전승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가 두 번에 걸쳐서 장대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여 보낼 정도면 분명히 실존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하”라는 극존칭을 사용하여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도 로마 시대에 총독급, 원로원급의 인물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조카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이름으로 개명한 이름이 데오빌로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데오빌로가 어떤 인물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으로 초대교회 시대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많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④ 확실하게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시는 주님.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1-4절에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더욱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누가는 본래 헬라 사람으로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몰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을 통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서 바울과 함께 전도자의 삶, 선교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좀 더 확실하고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해 주었을 것이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전해 듣고 알고 있는 진리들을 더욱더 확고하게 전해주기 위해서 복음서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는 본인도 이방인으로 잘 몰랐던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자신이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가는 과정을 걸쳤던 사람이다.
이런 누가가 가진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여 좀 더 많이 듣고 배우면서 깨달아 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악과 온갖 패악으로 난무하는 세상의 이상야릇하게 알랑방구 뀌는 소리에 홀가닥 넘어가서 이단에 빠지거나 복음을 떠나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세상의 이상야릇한 소리에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이단에 빠져서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 하는 것이다.
신실하게 주님을 믿던 수많은 신앙인들이 천주교, 통일교, 신천지, 정명석, 장길자, 신옥주, 구원파 등등 이단에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불행자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행적, 말씀, 이적들을 올바로 배우고 깨달아 알아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만을 신실하게 믿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L4 & B4.
그러면 신앙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하고 명확하게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정확하고 명확하게 잘 배워야 한다.
올바른 지도자에게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교육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성경을 무분별하게 배우게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이단들의 가르침에 홀가닥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 때문에 검증된 지도자에게서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②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100% 확신해야 한다.
성경은 신앙생활의 표준이다.
표준, 기준이 되는 성경을 100% 확신하지 못한다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계시록 22장까지의 말씀은 추호의 하나라도 의심하지 말고 전폭적인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임을 확신해야 한다.
진화론,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창조론과 신본주의에 입각하여 성경을 확신해야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③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성민이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께 복음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환하게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배워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2:15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이 활짝 열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람으로, 사명자로 세움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흔적과 말씀과 이적과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확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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