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역경의 열매] 윤복희 (19) 남진·이종용·구봉서·곽규석… 주님의 선한 종들

열려라 에바다 2012. 2. 26. 19:24


“대중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뒤집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연예인 성경공부모임을 인도하시던 하용조 전도사님은 우리들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척 열정적이셨습니다. 우리는 아세아연합신학대 채플실 인근의 하 전도사님 댁에 모이기만 하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그분을 하나님과 종씨라고 놀리면서 깔깔대기도 했습니다. 성경공부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하루에도 몇 명씩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만나면 얼싸안고 반가워했습니다. 우리는 무시로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연예인에게 시간이 돈인데도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한번 모였다 하면 돌아갈 줄을 몰랐습니다.

‘할렐루야’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인사하고, 하 전도사님 서재에 꽂힌 책을 아무나 뽑아보고, 냉장고를 다 털어먹고,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해 먹으면서 그렇게 ‘첫사랑’을 만끽했습니다. 가끔 전도나 심방을 나가면 누가 돈을 냈는지 모르는 식사를 시켜서 함께 먹었습니다. 누군가 기타를 치면 ‘내게 강 같은 평화’ ‘금과 은 나 없어도’ 등 복음성가를 합창했습니다. 나중엔 새벽기도와 조찬기도모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모임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체계화하고 조직화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패역한 시대에 역사하신 주님의 은혜와 능력은 놀라웠습니다. 그물을 깁고 있던 어부들을 불러들여 주님의 제단을 만드는 놀라운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1976년 3월 7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의 교실 하나를 빌려 연예인교회를 세웠습니다. 곽규석 장로님의 동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곽대웅 교수님이 로고를 만들어서 문패를 달아주셨습니다. 창립예배에는 저와 남진 이종용 서수남 쿨시스터즈 허림 방은미 유준(봉봉4중창단) 최성욱 김홍철 등 가수와 신영균 이영후 전아 등 연예인들이 참석했습니다.

교회 문을 열자 많은 기독 연예인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성경공부를 하며 기도와 찬송을 했습니다. 가수들 중심으로 성가대도 만들었습니다. 저마다 색깔을 가진 이들이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색깔을 줄이며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차에 하 전도사님이 ‘새롭게 하소서’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조화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입장료 수익으로 예배당을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공연을 계기로 기독교적인 대중문화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 전도사님 댁에서 합숙하면서 공연준비를 했습니다. 낱알로 흩어져 있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로 되는 걸 느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면서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사람을 붙여주시고 재정을 충당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저기 교회와 기도원 등으로 옮겨 다니며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했습니다.

하 전도사님은 연예인교회에 네 분의 장로님을 세워 기둥으로 삼으셨습니다. 코미디언 구봉서 곽규석, 영화인 신영균과 영화제작자 곽정환 장로님입니다. 곽 장로님은 고은아 권사님의 부군이시죠.

우리는 예배 땐 찬송가를 불렀지만 성경공부를 할 때는 복음성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처음에 한국교회에서 다소 당황스러워했지만 우리는 복음성가를 부르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간증했습니다. 가수 허림 언니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날 구했네’를 유행시켰고, 쿨시스터즈는 ‘금과 은 나 없어도’를 널리 알렸습니다. 지금 목사님이 되신 이종용씨는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복음성가를 단골로 불렀습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