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세상에 살면서 항상 있어야 할 것

열려라 에바다 2024. 12. 7. 08:17

세상에 살면서 항상 있어야 할 것       

   
글쓴이/봉민근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 세상을 똑바로 아는 것이다.
우리는 전능자가 아니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하나님보다 완전하며 완벽할 수가 있을까?
자신을 아는 사람이 겸손할 수가 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자신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남은 틀렸다고 말하면 안 된다.
나도 언젠가는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고
고난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내게 힘이 있다고 자랑할 것이 못된다.
언젠가는 나의 한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때가 온다.
영원한 내 것이란 없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내가 쥐고 있는 모든 것은 얼마가지 않아 버려야 할 쓰레기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세상을 떠나는 날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항상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추구해야 할 숙제요 해답이다.

성도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참된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시편기자는 말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이 땅에 사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자가 지혜 있는 자다.
우리의 소망도 생명도 영원한 나라 하늘에 있다.

잠시 다녀가는 세상에서 세상을 휘저으려 해서도 안되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길로 가서도 안된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그 답은 오직 한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인생이 사는 목적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하지 않는 죄        

 

세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 일꾼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기도하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재의 연구와
교회 일에 열심히 매달리고
설교와 사람들과의 대화에 정성을 쏟지만
끊임없는 기도가 부족하다.

성령의 확실한 약속과
위로부터 오는 능력의 통로인 기도가 없다.

강력한 영적 삶이 부족한 이유는
다름 아닌 기도하지 않는 죄다!

-앤드류 머레이-

 

믿음 대 염려        

 

김형익목사

 

1. 염려의 친구들: 염려는 다른 여러 죄악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마음 상태이다.

① 재정에 대한 염려 탐욕, 욕심, 사재기, 절도를 유발시킨다.

② 성공에 대한 염려 급해지고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변한다.

③ 관계에 대한 염려 주눅들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④ 반응에 대한 염려 진실을 가리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2. 염려의 뿌리

① 불신앙이 우리 마음을 제압해서 이길 때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가 염려다(마 6:25~34).

② 염려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있다.

 

3. 두 가지 그릇된 반응

① "염려가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에서 온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군요."

 염려가 개인적 기질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불신앙이다.

 암을 발견했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좋은 소식이다.

② "염려가 불신앙의 문제라면 나는 염려가 심해서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리는 것같다."

 믿음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역공을 취하고 있는가이다.

 성도는 두려움과 염려와 더불어 싸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시 56:3).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올 때 전투는 시작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았다.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셨다(벧전 5:7).

 

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두 가지 병기(살후 2:13)

① 하나님을 약속들은 차앞유리에 붙은 오물을 제거하는 와이퍼와 같다.

② 성령님의 도우심은 워셔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③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깨끗한 유리로 앞을 보듯이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앞길에 약속되있음을 믿게 되고 염려를 이기게 된다(렘 29:11).

 

 

5. 장래의 은혜에 대한 예수님의 7가지 약속

① 우리의 몸과 목숨을 보존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마 6:25).

② 인간은 새보다 귀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마 6:26).

③ 염려는 이롭지 않다. 때론 자신을 엄격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염려는 자신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한다. 염려를 주께 맡기라(마 6:27~28).

④ 들의 꽃과 비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심을 사용하여 자기 자녀를 돌보신다(마 6:28~30).

⑤ 하나님이 우리 필요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 필요를 아시고 최상의 때에 우리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움직이실 것이다(마 6:31~32).

⑥ 개인적 필요를 채우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드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돌리도록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마 6:33).

⑦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으신다(고전 10:13). 모든 날에 하나님의 은혜는 그날 당하는 어려뭄과 곤경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충분할 것이다(마 6:34).

 

6. 바울 사도의 권면(빌 4:6,19):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풍성함은 다함이 없다.

 

 

7. 하나님의 약속들: 내가 염려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불신앙과 싸우라.

① 사 41:10 엄청난 압박감이 나를 짓누를 때

② 사 55:11 사역이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 때

③ 고후 12:9 사역을 행하기에는 내가 너무 미약하다는 느낌이 들 때

④ 시 32:8 장래의 계획에 대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⑤ 롬 8:31 적대하는 사람들을 대해야 할 때

⑥ 마 7:11 사랑하는 이들의 평안이 염려될 때

⑦ 시 34:19; 롬 5:3~5 몸이 아파 염려될 때

⑧ 사 46:4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염려할 때

⑨ 롬 14:7~9 죽음에 대해 염려할 때

⑩ 빌 1:6; 히 7:25 믿음의 파선을 당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것을 염려할 때

 

8.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염려라는 불신앙과 싸우라.

하나님을 떠난 신자들        

 

한때 신자였지만, 지금은 믿음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

한때 교회를 다녔지만,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한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도 읽고 예배도 드렸지만, 더 이상 그런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경건한 삶을 목표로 순결한 삶을 지향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자유롭게 살아간다.

한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에 감사했지만, 이젠 자유로운 삶에 만족하며 떠나기를 잘했다 생각한다.

한때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의 시민이었지만, 지금은 천국의 시민권이 박탈당했다.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자들이다.

잃어버린 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그랬다.

그는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다 돈을 잃고 아버지도 잃었다.

 

탕자들은 왜 떠났을까?

 

탕자는 세상을 멋지게 즐기고 싶어 아버지를 떠났다.

어떤 신자는 세상의 향락에 서서히 빠져 떠나갔다.

어떤 신자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아 떠났다.

어떤 신자는 먹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신자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실망하여 떠났다.

어떤 신자는 처음부터 믿음이 작아 작은 시험거리에도 실족하여 떠났다.

어떤 신자는 세상이 주는 다양한 사상과 신념에 설득되어 떠났고 심지어 반기독교 활동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미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내가 어쩌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

 

죄 때문에 타락한 자신의 실상을 똑똑히 보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억한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책망받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떠나게 만든 동기가 바닥났거나 그것들의 실상을 보았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든다.

 

"그들은 아버지께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물론 탕자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요?"

 

자기 각성이 있을 때 회개로 돌이킬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돌아 갈 수 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자"

 

참된 회개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다.

"회개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면 용서하실 것이다.

"만일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합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를 용서해 주라" (눅 17:4)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탕자가 돌아오는데 장애물도 있었다.

탕자의 형은 아우가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분노했다.

 

"많은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까?"

 

큰 아들은 계속 작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는 직접 해야 한다.

참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 주시는 것으로 회복될 수 있다.

 

용서가 매우 쉬운 과정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한 번의 회개로 바코드처럼 즉시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간절한 회개로 며칠이나 몇 달이 걸려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싸인을 받을 수도 있다.

떠나기는 쉬웠을지 모르지만 용서는 쉽게 결재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돌아오는 자는 겸손하고 낮아져야 한다.

이전의 잘 나갔던 자리를 내려놓고 비어져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일치시켜야 한다.

 

최종적인 용서는 하나님의 주권이지 우리의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방탕한 기간이 수년이나 수십 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간단히 기도 한번 했다고 용서를 바라겠는가!

각성과 회개하는 마음의 강도가 클수록 용서도 커질 것이다.

 

탕자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자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더 회개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한계시간은 비단 종말의 시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죄악의 한계도 있어 용서받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회개의 필요성이나 각성을 갖지 못하는 상태까지 타락하게 되면 돌아올 수 없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32)

하나님은 지금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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