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로 가는 사랑의 편지
빌립보서1:3-11
어느덧 50 중반을 훌쩍 넘긴 저는 오래전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어찌하다 보니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엄마 없이 자란 아들이 가끔 저를 엄마처럼 의지할 땐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린 아들이 어디 가서 편부가정이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사춘기가 되니 자연스럽게 서먹해졌고 저도 이제 아들이 다 컸다고 생각하니깐 조금씩 소홀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들이 입대하는 날 마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대 간 아들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는 '사랑하는 엄마에게'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당신의 손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누구보다 깨끗하게 저의 옷을 빨아주시던 엄마의 손입니다.
그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더 저를 건강하고 배부르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아플 때마다 늘 제 손을 꼭 잡아주시던 당신의 따뜻한 손이 좋습니다.
남들은 엄마 아빠가 따로 있지만 저에게는 듬직한 아빠이자 엄마인 당신에게 언제나 말하고 싶었습니다.
엄마! 저에게 당신은 아빠지만, 당신은 저에게 따스함과 사랑으로 돌봐주신 소중한 엄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빠이자 엄마인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내 없이 사랑으로 키운 아빠에 대한 아들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사랑의 편지는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 같이 행복을 느낍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0수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사모님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목사님이 보내신 편지를 다시 읽었다고 합니다.
군에 가 있던 남편에게서 받은 편지를 50년 이상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습니다만
그 편지를 읽으면서 사랑받던 때가 떠올랐을 것이고 다시 한 번 행복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 대표가 빌립보 교인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편지의 내용 하나 하나에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7절에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요,
오래전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이 안에 너 있다.’ 대사가 나오면서 오래 동안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고백으로 자리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창시자는 사도 바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에 너희가 있다.’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는 말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심장으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그 사랑으로 너희를 사모한다는 표현은
얼마나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편지에는,
제일 먼저, 감사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고 5절에 보면, 그 감사의 이유로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과의 만남은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데요,
자주장사 루디아와 귀신들렸던 여종 그리고 감옥을 지켰던 간수장이 빌립보교회의 처음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이들은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아름다운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개척하여 어려운 시기에도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헌금하였고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쓸 것을 보냈고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위해서는 에바브라디도를 보내 돌보기까지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 교회는 빌립보교회가 유일했습니다.(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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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것은 복음에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돈을 갖다 주고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좋은 옷을 갖다 주어서가 아니라
바울이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던 복음전파에 빌립보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서 저도 정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여러분의 헌신과 충성이 빌립보 교인들 못지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어두컴컴한 아침 6시부터 먼 곳에서 나와서 식사준비를 하고 교회 청소를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찬양대로 섬기면서 매주 은혜스럽게 찬양을 인도하기도 하고
안내하고 헌금봉사하고, 설거지 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앞치마 두르면서 먼저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모릅니다.
식사 후에는 식탁을 닦는 일로 봉사하는 분들과 그 외에도 보이지 않게 봉사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리며 복음에 참여한 축복과 상급이 있을 줄 믿습니다.
복음에 참여한 것도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더 감사한 것은 그 일에 ‘처음부처 이제까지’ 헌신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한 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몇 번을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제까지’ 꾸준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은퇴목사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도 20년 동안 꾸준하게 어버이날에 선물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2만 원 정도의 선물이었지만 그 선물이 감동을 주었던 것은 한 두 해도 아니요 20년이나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수고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말없이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받으실 아름다운 모습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상급으로 채워주실 일인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빌립보로 가는 편지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해 첫날부터 이제까지 적극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헌신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신 은혜가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하게 하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만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믿음을 주시고 충성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감사를 표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합니다.(3절)
여러분, 우리의 감사가 여기에 있는 줄 믿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가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성도를 만나고 좋은 가족을 만나고 좋은 목회자를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 일이 그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그 귀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좋은 만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섬기면서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빌립보 교회가 받은 은혜는 착한 일, 헛되지 않은 귀한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일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그 귀하고 귀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세상에 가면 분명히 어렵고 조롱받고 힘든 삶을 살아갈 것을 아시면서도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인간을 아들 이상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의 고난과 고초를 받게 하시고 그 고통가운데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인간을 살리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없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귀한 희생과 사랑과 섭리 속에서 마련된 영혼구원의 길이 그냥 성경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해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괴로워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것보다 더 귀중한 성도의 사명을 없습니다.
그 일을 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 복음을 전하고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복음전파,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며 충성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착한 일을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빌립보에 가는 편지에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내가 기도하노라’ 하면서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도의 기도제목이 4가지 나옵니다.
이 기도제목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바라는 소망이며 기대입니다.
1) 너희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하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한 것이 더 선해지고 아름다운 것이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풍성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후퇴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빌립보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사도 바울을 돕는 일이나 사랑하는 삶에 있어서 지금까지 정말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더욱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풍성해야 하고 사도 바울을 돕는 일에도 풍성해야 하고 사랑하는 일에도 더욱 풍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처음보다 지금이 더 풍성합니까?
예배하는 일이나 기도하는 일이나 사랑하는 일이나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선한 일에 더욱 더 풍성합니까?
아니면 예전만 못한 자신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안타까워하는 그런 모습입니까?
사랑하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일에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도 점점 더 풍성해지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선한 것과 선하지 않는 것이 구별이 되지 않는 모호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이 모호하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모호하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모호하고, 옳은 것과 옳지 않는 것이 모호합니다.
이러한 시절에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모호성 속에 빠져 되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마귀의 유혹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려고 하지 말고 대충 적당히 형식만 갖춰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에게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딱 한 번만 절하라 그러면 세상영광을 네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호성을 벗어나 오직 말씀으로 살았고 승리하였습니다.
3) 진실하고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고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를 바라고 기도한다는 말은 점점 더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정결하게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씻음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새로워진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기에 새로움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하고 주님의 완성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모습이 허물없이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이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갈 때 맺어야 할 열매는 인격의 열매고 성품의 열매입니다.
내 인격과 성품을 통하여 열매가 맺혀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통하여, 사랑의 삶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통하여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입니다.
나의 삶을 통하여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들은 잘 압니다.
여러분이 사랑으로 살면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할 것이고, 여러분이 기쁨으로 살며 하나님이 기쁨이라고 할 것이고
여러분이 화목하게 살면 하나님이 화목하신 분이라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로 가는 사도 바울의 편지는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주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바람과 소망이 무엇인지가 나타나고 잇습니다.
이 사랑의 편지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바람과 기도를 생각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감사하며 더욱 더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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