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편 11절: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왕은 누구를 즐거워한다고 하느냐?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왕은 통치자요, 이 통치자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고 했으니까 이 왕은 왕 자리보다 하나님이 더 좋다는 거다. 그러면 이 왕이 누구의 말씀을 받아서 통치를 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통치를 한다. 그러니 왕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 거다. ‘왕’ 하면 국민이 따라가고, ‘왕’ 하면 영토가 있고, 생활이 있고, 통치가 있는 거다. 성경에 보면 성도들을 보고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 라고 했다.
목사님이 하나님을 자랑하면 교인들이 누구를 기뻐하겠느냐? 하나님을 기뻐한다. 반대로 교회에서 목사님이 세상을 자랑하면 교인들이 누구를 더 사랑하게 되느냐? 세상이다. 그러면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뭐냐? 구하는 것이 세상이고 가르치는 것이 세상이라면 이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거다. 누가 이 말을 하는 거냐? ‘네가 말하였도다.’ 설교를 하는 자가 세상을 자랑하고 자기 입이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네 입으로 네가 세상을 더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거다.
세상에 살면서 생활 면이 오르락내리락 할 수는 있지만 생활이 가난하다고 해서 불행이냐? 그렇지 않다.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반면에 부자라도 불행한 사람도 있다.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서 돈을 다 뺏어버리면 이 사람은 불행해지는 거다.
사람은 물질이 있고 없고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느냐, 안 떠났느냐?’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한 거다. 생활이 좀 곤란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로운 말씀을 받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온다. 그러면서 신앙실력이 더 붙는 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불행에 빠지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래서 교회의 인도자들은 성도들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강하게 사랑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복 복, 만사형통’ 하게 되면 교인들이 불행에 빠지겠느냐, 점점 행복해지겠느냐? 불행에 빠진다. 물질은 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니 우리 기독자들은 물질이 있을 때에 없을 때를 생각해서 물질 면에 절제를 하고, 물질이 없을 때는 모든 면에서 그에 맞게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통치를 받으면 백성들의 도덕성이 왕처럼 올라간다. 왕의 실력으로 올라간다. 이러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주를 자랑한다. 주를 자랑한다는 것은 진리자랑이다. 말씀자랑이다. 말씀자랑은 하나님을 높이는 거다. 성도가 하나님 대신 물질을 자랑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무슨 말이냐? 네가 하나님을 물질 이하로 끄집어 내리는구나. 물질이 줄어들던 많아지던 물질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라. 행여나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빨리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이게 신앙인이다.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하는 자의 입이 막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변명이 안 되고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입이 막힌다는 것은 거짓말로 인해서이기도 하지만 거짓말로 인한 인격의 수치를 말하는 거다. 도덕성이 고상한 사람은 인격 면의 수치를 못 견뎌 한다.
그러면 거짓말이라는 게 뭐냐? 거짓말도 분별을 해야 한다. 일반적인 거짓말은 우리가 다 안다. 현실에서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에 다른 것을 더 붙이거나 다르게 말하는 게 거짓말이다. 신앙 면의 거짓말이란 성경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천국을 자랑하는데 성경을 들고 세상을 자랑하고 임시성적인 것을 자랑하는 게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 마음, 소원 목적을 말하고 있고, 천국에 관한 것, 신령한 것, 영원히 가는 것, 불타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성경을 들고 이런 것을 가지라고 하고 소원 목적을 품게 하는 것은 참말이다. 하나님도, 하늘나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것도 불에 타지 않고 영원히 가는 것이니 이해타산 평가적으로 이것을 가지게 하는 것은 참말이다.
우리 주님이 ‘천국복음을 말씀하시더라.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라고 하신 것은 불에 안 타지는 것, 영원히 가는 것을 주려고 하늘나라에서 오셨다는 거다. 그러니까 교회의 인도자들이 영능의 실력, 하나님의 성품, 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 이게 다 하늘나라 것인데, 이걸 자랑하고 가지라고 하는 게 참말이다.
그러면 거짓 종들은 성경을 가지고 어디를 가르치느냐? 참말은 하늘나라에 속한 것, 영원히 가는 것, 신령계에 속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거짓말은 이와 반대로 임시적인 것, 불에 타지는 것, 썩는 것, 바람 불면 날아가는 것, 변질되는 것, 요동되는 것을 가지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 이런 게 어디에 있느냐? 하늘나라에 있느냐, 이 땅에 있느냐? 이 땅에 있다. 땅의 것은 전부가 불에 타지고 썩고 변질되는 것인데 이걸 가지라고 하는 것은 천국의 영원한 것이 아니요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이 되는 거다.
인간은 영육 결합체인데, 성도의 영은 신령계에 속하는 거고, 육신은 땅에 속하는 거다. 땅에 속한 것은 썩는다. 그래서 육신은 영에 비하면 잠깐이고, 썩는 거고, 불에 타는 것이니 이런 세상에 속한 것은 영원히 가는 영에 비하면 임시적인 것이니 거짓이 되는 거다. 그래서 ‘거짓이냐, 참이냐?’ 할 때 하늘나라에 속한 것은 참이고, 세상에 속한 것은 거짓이라고 하는 거다. 따라서 가르침의 교훈에 있어서 땅의 것을 영원한 것처럼 말을 하며 자랑을 하고 가지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땅의 것이 영원히 가는 것처럼, 신령한 것처럼, 참 복인 것처럼, 참 실력인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경은 영원히 가는 것, 하나님의 것을 말을 하고 자랑을 하고 있으니 교회에서 성경을 들고 가르치는 사람이 이걸 말을 하면 참말이다. 하늘나라의 거다. 신령한 천국의 거다. 그런데 임시적인 땅의 것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한다면 거짓말이 돼버린다. 아무리 성경을 들고 말을 할지라도 거짓말이다. 거짓교훈이다. 예를 들어서 이 집게는 물질에 속한 거냐, 신령계에 속한 거냐? 물질에 속한 거다. 물질에 속한 것은 녹고 썩고 불에 타지고 상한다. 임시적인 거다. 그런데 이걸 영원히 가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처럼 성경은 영원한 것을 말하고 있는데 성경을 들고 임시적인 이 세상 것을 가지라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세상 임시적인 것은 활용성이고 사용성이고 구원을 이루는데 이용물이다. 우리의 육신도 죽기 전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이용해야 한다. 말씀을 떠난 이용은 하나님 앞에 형벌이다. 왜 형벌이냐?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살라고 네 몸을 만들었는데 네 몸을 어디에 썼느냐 그 말이다. ‘인간 너를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나님 비슷하게 만들었고, 말씀을 주었고, 구속을 입혀서 영을 중생시켰고, 진리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했는데 왜 하나님의 성품은 안 닮고 거짓된 교훈에 빠져서 거기에 네 몸을 불살랐느냐? 네가 깨달은 게 뭐냐? 속사람이 바꿔진 것을 내놔봐라’ 라고 하시며 책임추궁을 하는 게 형벌이요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미운 사람을 보내니까 자기 속에서 미움이 올라와서 이 사람을 잡고 싸운다면 사람이 바꿔진 거냐, 안 바꿔진 거냐? 안 바꿔졌다. 자기 눈에 미운 사람을 잡고 싸우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할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마: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 앞에서 세상을 자랑하며 ‘내 앞에 절을 하라. 그러면 세상만물을 다 너에게 주겠다’ 라고 했다. 이게 마귀의 수법이요 마귀의 꾀임에 빠진 거짓 종들의 수법이다. 그래서 거짓 인도자는 교인들에게 어디를 향해 절을 하라고 하느냐? 마귀에게냐, 세상에게냐? 세상을 보고 절을 하라고 한다. 세상을 보고 절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부러워하고 돋보는 것을 말한다. 이게 경배하는 거다. 거짓 종들이 세상에게 경배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알고 보면 마귀에게 경배를 하라는 거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거고, 예수를 따라가는 이유는 말씀을 들으려고 따라가는 거다. 예수님께서 왜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하신 거냐? 예수님께서 뭘 가지고 있느냐? 말씀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 거냐?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주님을 따르라는 거다. 이렇게 되면 누굴 닮아지느냐? 예수님으로 닮아진다.
수학선생이 좋아서 자꾸 따라다니면 누굴 닮느냐? 수학선생을 닮는다. 노름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누굴 닮겠느냐? 노름하는 게 닮는다. 사람에게는 이런 감염성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것에 따라 교인은 그걸 따라가게 되어있다. 반드시 그렇다. 그래서 목사가 세상을 달라고 기도하고, 부자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렇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면 교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 ‘아멘’ 하느냐, 안 하느냐? ‘아멘’ 한다. 아멘을 하는 것은 그 말이 좋아서 그것을 따라가겠다는 거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거짓 종이다.
사람 속에 세상만 잔뜩 들어서 세상정신, 세상소원, 세상목적을 가지게 되면 이 사람의 머리는 어두워진다. 다른 말로 하면 우상을 섬기는 자들처럼 된다. 머리가 돌대가리가 된다. 이게 실감이 안 나거든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을 봐라. 그 백성들을 봐라. 생활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머리를 쓰는 수준을 봐라.
성경을 들고 세상 것을 자랑하고 세상 것을 가지라고 한다면 이건 거짓말이다. 그러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늘나라의 것을 가르치느냐, 세상 것을 가르치느냐? 세상 것을 가르친다. 그러면 이건 거짓말이냐, 참말이냐? 거짓말은 아닌데 세상 말이다. 왜 거짓말이 아니냐? 학교 선생님들이 성경을 놓고 그렇게 가르치느냐? 그건 아니다. 성경을 놓고 그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은 성경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세상물질에 관한 법칙과 이치를 알려줘서 그걸 잘 이용 활용 응용해서 세상을 편히 살아가도록 한다. 믿는 우리도 그런 것을 배워서 그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는 일에 활용을 하는 거다. 이게 믿음생활이요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 바로 잘 배워서 세상을 이용 활용 응용해서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한 일에 써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과를 먹고 자타의 이룰구원을 목적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거다. 그런데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따먹으니 세상을 다스릴 존재가 세상 밑으로 들어가서 세상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정신 사상부터가 물질 위에 있어야 하겠는데 물질 밑에, 돈 밑에 들어가 있으니 자꾸 돈을 따라다니는 거다. 말씀은 상관이 없이 돈만 자꾸 따라다니면 이 사람의 머리통 속이 어떻게 되겠느냐? 돈만 자꾸 세고 있게 된다. 그러면 자기가 돈이 들어올 것을 계산한대로 돈이 들어오느냐? 얼마나 어리석으냐?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첫째는 임시적인 것으로 자랑하는 자의 입은 막혀버린다. 사람자랑, 물질자랑, 업적자랑 등등 부귀나 명예나 권세나 권력을 가지고 큰소리치는 자들은 모두 입이 막히게 되어있다. 왜 그러냐? 이런 세상 것들은 모두 변질되고 요동되고 바람 타고 불타고 날려갈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랑을 한다면 영원히 남아있을 것으로 자랑을 해야 된다.
누가 세상부자, 명예 영광성을 자랑을 하면 그냥 내버려둬라. 왜 그러냐? 가만 놔둬도 그들은 입이 막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임시성이라는 것은 가르쳐 줘라.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들은 입이 막히게 되어있다. 한 마디로 ‘나는 건강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안 아팠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한 것이 며칠이나 가는지 봐라. 그런 것을 자랑하는 입을 딱 막는 사건이 오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런 사람의 입을 틀어 막아버린다. 그러니 절대로 세상에 속한 것으로 자랑하지 말아라.
두 번째는 진리이치가 아닌 말은 입이 막혀버린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땅의 것으로, 세상 것으로 해석을 하면 이치적으로 하나도 안 맞는다. 왜 안 맞느냐? 일반개념, 육적인 개념, 세상의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신령한 하나님의 뜻이 전부 세상의 뜻으로 바꿔져 버리기 때문이다.
거짓된 종들이 세상을 가르치는 말을 들어보면 하나도 안 맞는 건데, 정신 사상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축복, 축복’ 하고 재미있게 해 주니까 그냥 따라간다. 그러나 거짓 종들은 무슨 말을 해도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가 임시성에 속한 거다. 예를 들어서 남녀가 결혼을 해서 ‘우리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자’ 라고 한다면 이들이 ‘영원히’ 라고 하는 것이 어떤 ‘영원’이냐? 둘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떨어지지 말고 변질되지 말고 오래토록 행복하게 끝까지 사랑하며 살자는 거다.
그러면 이 생각이 생명과를 따먹고 나온 생각이냐,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생각이냐? 이 세상에서 끝까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거니까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에서 ‘영원히’ 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영원성은 둘이 있어야 행복하고 좋은 거지 하나만 있으면 행복하지 못한 거다. 이 부부가 말하는 행복은 물질성에 속한 행복성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물질이 하나 둘 없어지면 서로 미워하고 원망을 하게 된다. 이런 물질성적인 사랑은 가난해지고 물질이 나가고 몸이 아프면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것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속의 이런 사상, 이런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으로 바꿔져야 한다.
우리교회 교인들의 존귀영광 행복성이 어디에 있느냐? 세상에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느냐? 말씀 안에 자기의 인생길이 있다. 이걸 잊지 말아라. 이걸 발견해라. 세상사람들처럼 제 멋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건 신앙 믿음도 아니고, 세상바람을 타게 되어있고, 얼마 안 가서 눈물을 흘리게 되어있다.
세 번째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입이 막혀버린다. 그동안 가르치고 자랑하던 세상 것이 다 타버렸으니 할 말이 없어서 입이 막혀버린다. 충성봉사나 종교적 사업을 크게 하면 상을 받는다고 했는데 상은커녕 하나님 앞에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으니 할 말이 없어서 입이 막혀버리는 거다.
성경에 보면 ‘왼쪽에 있는 자들과 오른쪽에 있는 자들’이 있는데, 왼쪽에 있는 자들이 자기들이 한 일을 자랑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대로, 주의 이름으로 행동적으로 열심히 했다는 거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인들이 교회에서나 사회에 나가서나 충성봉사를 열심히 했다는 거다. 그런데 왕이 하는 말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한 게 아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냐? 왕이 하는 말이 ‘나의 형제에게’ 라고 그랬으니까 왕족을 말한다. 왕족이란 기독교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앙 믿음이 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신앙 믿음이 올라가도록 성장이 되게 키워야 하는데 이 일은 안 하고 노력이나 물질을 예수이름으로 사회에 퍼준 것을 주님을 위해 한 것이라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사람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한 거냐? 그게 아니기 때문에 왕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고, 이로 인해 저주의 소리를 들은 거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주의 말씀대로 했느냐?’ 라고 물으니까 안 했다고 대답을 했는데도 이들은 칭찬을 받았다. 왜 안 했다고 한 거냐? 안 했기 때문에 안 했다고 한 거냐, 했지만 겸손의 말로 안 했다고 한 거냐? 한 마디로 오른쪽에 있는 자들은 왕족에게 말씀을 잘 가르쳐서 신앙 믿음이 잘 성장하도록 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은 거다. 이 일은 왕족으로서 왕의 기업을 받게 하는 것이니 칭찬을 받게 되는 거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했듯이 성도는 자타의 이룰구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기 때문에 말씀위주, 진리위주, 깨닫는 위주로 물질을 쓰게 된다. 그래서 오른쪽에 있는 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자타의 신앙 믿음을 위해 사용을 했지만 왼쪽에 있는 자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밥도 해 먹이고 옷도 입히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일을 한 자신이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심판을 받게 되었으니 할 말이 없는 거다. 입이 막혀버린다.
우리는 입이 막혀버릴 자로 살지 말고 영원히 가는 것을 자랑할 자로 살고, 자랑할 것을 장만해야 한다. 우리는 목적적으로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타의 이룰구원에 세상을 이용하고 활용하며 사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왜 사는 거냐? 예수님을 잘 믿는 목적으로 사는 거다. 이게 신앙이다.
세상을 목적적으로 살면 입이 막혀버리고, 세상 것을 자랑하면 입이 막혀버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지 못했으면 입이 막혀버린다. 세상을 소원 목적적으로 살면 어차피 세상을 자랑하게 되어있다. 이러면 안 된다. 우리는 입이 막힐 자로 살지 말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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