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나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부부는 평생 동반자
어느 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가 끝날 무렵,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게임을 시켰습니다.
결혼한 한 여학생에게 좋아하는 사람 20명의 이름을 칠판에 써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친구, 가족, 회사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습니다.
그런 후 교수님은 학생에게 그 중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하나를 지우라 했습니다.
교수님은 또 말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이름을 하나 지우게나.”
교수님의 요구에 따라 계속 사람들의 이름을 지워서 결국 칠판 위에는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아이, 네 사람만 남았습니다.
교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교수님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다시 별로 중요치 않은 사람 이름을 지워 보게.”
그녀는 한참 망설이다가 아버님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교수님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다시 한 명...!”
그녀는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또 다시 교수님은 말했다.
“한 명을 더 지워 보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지우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 눈물을 그친 학생에게 교수님께서 물었습니다.
“자네를 낳아준 부모와 자네가 낳은 자식을 왜 지웠으며,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구할 수가 있는 남편을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남겼는가?”
그녀는 천천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는 먼저 돌아가실 것이고, 아이는 다 자라면 내 품을 떠날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해보면 평생 옆에서 저의 동반자가 될 사람은 남편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도, 자녀들도 언젠가는 우리들의 곁을 떠나갈 것입니다.
언젠가는 배우자도 떠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을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주, 구세주, 주님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들 곁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만은 결코 우리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고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응원해 주실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복된 예배자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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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교회당, 예배당이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교회당이나 예배당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교회라는 호칭으로 통합하여 사용한다.
교회와 교회당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교회는 사람을 가르치는 의미가 있고, 교회당은 장소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을 성도(聖徒)라고 부른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 성도들이 모인 모임을 교회(敎會)라고 부른다.
신앙인들, 성도들, 교회가 모이는 장소를 교회당(敎會堂), 교회가 모여서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예배당(禮拜堂)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라는 호칭에 장소적인 의미까지 포함하여 000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회라는 호칭에 믿음의 사람들, 신앙인들과 장소까지 포함하여 교회라고 부른다.
예수님 시대에는 시나고게(Synagoge)라는 회당(會堂)이 존재했다.
회당은 유대인 신앙공동체, 유대인들이 모일 수 있는 집회 장소이다.
회당이라는 이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 복음을 믿는 신앙인들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회당은 예수님을 비롯하여 초대교회에서 사도들, 전도자들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아주 중요한 예배 처소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셨을까?
신앙인들, 믿음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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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나사렛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수모를 당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오신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을 찾아가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인식을 한 남성 10인 이상만 모이면 민얀(Minyan)의 조건이 형성되어 회당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반드시 회당이 세워져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2000규빗, 대략 900m의 거리 안에서 거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든 항상 회당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생업 터전과 배움터도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은 집회와 모임의 중심이다.
회당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중심이다.
회당은 토라를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낭독하고 배우면서 학습할 수 있는 말씀 중심이다.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의 중심지이다.
그러기 때문에 회당에는 언제든지 사람들이 모인다.
예수님은 회당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가셔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에 대하여 강론하면서 자기 자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언약한 바로 그 메시야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하셨듯이 오늘날에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중심으로 사역하신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서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선교와 헌신과 교제의 중심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서 신앙인들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아울러 문화생활과 교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카페, 음악회, 영화관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죄악이 득실거리는 사회로 나가지 말고 교회에서 모든 편의시설, 문화시설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교회는 현대인들의 취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변신할 수 있지만, 단 동성애나 반려동물을 위한 변신은 안 된다.
동성애나 반려동물은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 사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탄의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신앙공동체적인 교회를 세워갈 수 있어야 한다.
②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라는 무리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에 대하여 가르쳤으리라 믿는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전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씀임을 직감한다.
회당장이나 랍비들이 전했던 말씀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에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이다.
32절에서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성경을 기록하는 저자에게 성경을 기록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시고 감동을 주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준비하여 설교하시는 분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감동을 주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영적인 권위를 지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③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는 예수님.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에 걸린 사람이 들어와 있다.
더러운 귀신에 걸려서 허덕이는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성전에는 온전한 사람, 거룩한 사람, 정결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거나 부정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성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각종 질환자들, 불구자들, 소경들, 소외된 자들은 성전 입구 문까지는 갈 수 있어도 문을 통과하여 성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이들은 부정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회당에는 어느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다.
회당에는 각종 질환자들, 불구자들, 소경들, 소외된 자들을 비롯하여 귀신에 사로잡힌 이들도 들어갈 수 있다.
단, 회당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면 회당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방인들은 회당에 들어갈 수 없다.
교회에도 어느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다.
교회에는 신앙인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각종 질환자들, 불구자들, 소외된 이들을 비롯하여 불신자들도, 심지어는 이단들도, 이교도들도 교회에는 들어올 수 있다.
가버나움 회당에는 더러운 귀신에 걸려서 허덕이는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말씀을 전하면서 뭇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칭송하게 된다.
그러자 더러운 귀신이 시기, 질투가 작동하였는가 싶다.
더러운 귀신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떠드는 것이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정체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왜 하늘나라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지구촌으로 찾아오셨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귀신은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면서 발악하지 않는다.
귀신은 처음에는 자신의 본색을 감추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신에게 유익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어느 한순간에 자기 본색을 드러내면서 발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으로 찾아온 마귀도 처음부터 하와에게 찾아와서 유혹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자신의 유혹이 하와가 넘어가고 곧 아담도 넘어갈 수 있겠다고 판단한 그 순간에 하와에게 찾아와서 유혹하는 것이다.
하와와 아담은 마귀의 속임수에 꼼짝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자마자 곧바로 찾아와서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못하여 육신적으로 힘이 들고 나약해질 때,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 귀신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때다.”라고 판단이 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귀신은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시험하고 발악하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더러운 귀신이 언제 어떻게 집요하리만치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서 경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틈을 주면 귀신들은 “이때다.” 하면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꾸짖는다.
그랬더니 귀신은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면서 발악하다가 그 사람에게서 나간다.
귀신이 나가면서 넘어뜨리고 발악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그 사람이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안아주신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이 회당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모르고 계셨던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회당에 들어와 있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이미 다 알고 계심에도 귀신이 발악하기 전까지는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다.
귀신이 발악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꾸짖으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아무리 잘났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귀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에는 꼼짝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할 수 없다.
귀신들은 마귀가 되는 루시퍼 천사장을 따르다가 쫓겨난 천사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온통 자기 세상처럼 활개를 치고 다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한 마디 선포하면 거절할 수 없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이런 악한 영적인 존재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마귀, 사탄, 귀신들은 책망하고 꾸짖고 쫓아낼 대상일 뿐이다.
이들과는 조금의 타협도 해서는 안 된다.
악한 영들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긍휼이나 자비나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인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도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데,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신앙인들은 어떤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정말 성경 66권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신앙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다.
신앙인들 스스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체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④ 이적에 놀라워하는 무리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더러운 귀신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은 36절에서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반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귀신이 떠나는 모습을 처음 봤는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악하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면 그 귀신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고 능력이 더 넘치는 귀신을 데려와야만 가능하다고 여긴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전형적인 모습이 이런 모습이다.
더 센 귀신을 데리고 와서 기존의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굿을 한다.
그러면 이전 귀신보다 더 센 귀신이 자리 잡게 되는 꼴이 된다.
그러면 이번 귀신보다 더 세고 위대한 귀신을 데리고 와야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굿을 하면 계속 굿을 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무당들처럼 굿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씀 한마디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권위 있는 말씀에도 놀라고, 예수님께서 귀신도 쫓아내는 권세까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 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있어서 연약할 것처럼 보이지만,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면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만 더러운 귀신 들렸던 사람이 회당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사람은 예전부터 계속 회당으로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토라를 낭독하고, 기도하고,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려왔던 사람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더러운 귀신이 자신에게 들어와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본인도 모르고, 가족들도 모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으로 들어오시자 들통이 난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들어오시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었는데, ‘그저 좀 이상해 보인다. 간혹 정신이 맹할 때가 있어.’ 하면서도 더러운 귀신이 들어와서 몹쓸 짓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귀신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발악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한마디 말씀했을 때, 귀신은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 저 사람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그랬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어. 저 양반, 대단하네, 저 양반의 한마디에 귀신이 꼼작 못하고 떠나네. 참 신기로운 일이 다 있네그려. 저 양반이 전하는 말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대단하네.” 하면서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도,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아주 작은 능력이라도 인간들의 시선에서는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다.
⑤ 소문으로 사방에 퍼져 나가는 예수님.
37절에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생명줄이라는 물이 풍부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가버나움 동네 근처로는 고라신, 막달라, 뱃세다, 디베랴 등등 여러 마을들이 있다.
가버나움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건너편에는 군대 귀신에 걸린 사람이 살고 있던 거라사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까지도 퍼져나가는 것이다.
소문은 좋은 소문들도 있을 수 있고, 좋지 않은 소문들도 있을 수 있다.
좋지 않은 소문은 감추고 좋은 소문만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은 일인데, 실상은 좋은 소문은 잘 퍼져 나가지 않고, 좋지 않은 소문만 무성하게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고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고 계속 퍼져나가는 경향이 많다.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든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더욱더 널리 퍼져나갈 수 있으면 좋다.
어떤 모습으로 전해지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복음이 증거되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는 것 때문에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어떤 무리들이 바울이 없는 동안에 더 열심히 주님의 복음을 증거해서 바울에게 빼앗겼던 영광을 되찾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1;15-18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든지, 소문이 퍼져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과 복음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확장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에 대한 소문, 교회에 대한 소문,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형성된 각종 기관들, 단체들에 소문은 가능하면 좋지 않은 소문들을 감출 수 있다면 감추면 좋겠다.
이런 소문들이 각종 메스컴, SNS를 통해서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면서 퍼져나감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되고, 복음 전도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사회 각층에서 교회에 대하여 비난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넘쳐 나가고 있고 차별금지법이라는 미명아래 교회 폐쇄법을 만들려고 발악하고 있는데, 좋지 않은 소식들을 SNS에 올리면서 복음의 길을 가로막는 일에 휘발유를 퍼붓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좋은 소문들, 은혜로운 소문들,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전할 수 있는 소문들은 마구마구 널리 널리 퍼져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괜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L4 & B4
더러운 귀신에 걸렸던 사람은 가버나움 회당에 나옴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 주심으로 인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다.
예수님께서 매 안식일마다 가버나움 회당에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다른 안식일에는 다른 회당으로 찾아가셔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더러운 귀신에 걸린 사람은 공교롭게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오시는 날에 회당에 나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오시는 안식일에 회당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여전히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자신이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줄도 모르면서 허망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가버나움 회당에 나온 것은 예전과 똑같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기 때문에 회당으로 나온 것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이번 안식일에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오실 것이야.’라고 미리 알고 가버나움 회당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매 안식일마다 습관을 따라서 회당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회당으로 찾아가셔서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작정하시고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가시고 토라를 낭독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가버나움 회당으로 찾아가신 것이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찾아오시는 줄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회당으로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전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주권에 의해서, 예수님의 구원계획에 의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봉잡은 것이고 횡재한 것이다.
이 사람은 횡재한 인생을 사는 것이고, 대박 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 사람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전적인 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에 의해서 더러운 귀신에게서 해방받고 자유인이 되는 횡재하고 대박 난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횡재를 누리고 대박 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순전히 회당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람이 가버나움 회당에 나와 있지 않았다면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온 세상에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이들이 한둘이겠는가?
어쩌면 온 세상천지에 있는 수많은 무리들이 더럽고 악한 귀신들에게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서 살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천지에 널려 있는 더럽고 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이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해방시켜서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시려고 오셨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당에 나온 사람만 고쳐주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이 사람이 더러운 귀신에게서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횡재하고 대박 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회당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비록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좀 정신이 나간 사람, 좀 이상한 사람. 어딘가 모르게 맹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 가운데 살았지만, 그래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오면서 회당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찾아오셨을 때, 더러운 귀신이 쫓겨남으로 새사람이 되는 횡재하고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교회를 중심으로 살면 언젠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인이 교회를 중심으로 살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과 신앙인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한다.
10일 동안 전념으로 기도했는데, 9일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9일까지 기도에 전념하다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마가다락방에서 떠난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10일이 되는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마가다락방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시지 않는다.
10일이 되든, 15일 되든, 20일이 되든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강림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다.
성령님을 언제 보내주실 것인지, 언제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인지, 언제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기름 부어 주실 지는 오직 삼위 하나님만이 아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고 꾸준하게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임재하시고 성령께서 강력하게 감동시켜 주시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어찌하든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이다.
설령 지금 나가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각종 문제가 난무할 수 있다.
종종 시험이 드는 일들도 많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신앙 생활하기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신뢰하며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각종 어려움 때문에 교회 밖에서 여러 모임들을 통하여 신앙 생활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교회 밖에서 여러 모임들을 통해서 신앙 생활하다 보면 분명히 좋은 일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간혹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이단사상에 빠지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이단사상에 빠져서 영영 이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밖에서 ‘성경 공부한다. 기도회 한다.’ 등등 다른 모임을 통해서 이단에 빠진 경우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자신이 출석하며 신앙 생활하는 교회가 자기 마음에는 쏙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뭔가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안전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안전지대로 세워주셨음을 믿고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서 신실하게 오직 믿음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사님과 지도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 친양하면서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오직 성령님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순간에 하늘 아버지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셔서 강력하게 역사해 주시면서 만나주실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으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고백하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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