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부활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11:17-27, 고전15:12-20
이슬람교를 열심히 믿는 한 신자가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하자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그를 불러놓고 심문을 하였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해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는가?" 그는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살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죽은 사람과 산사람을 만났습니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 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그거야 당연히 산사람에게 물어봐야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활하여 살아있는 예수님께 길을 물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마호메트는 죽었기 때문에 그를 믿을 수는 있었지만 그에게 길을 물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예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주님의 친구로 베다니로 지나실 때 종종 그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소식을 들으신 주님은 일부러 더 머무시다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야 베다니 마을에 들리셨습니다. 그것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은,
먼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마12:38-39에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큰 고기 뱃속에 있다 살아난 것처럼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서에 주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사건은 모두 세 번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눅7:12-16에 나오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로 죽어서 장사를 지내러 상여를 메고 가는 도중에 살리셨습니다. 또 하나는, 눅8:43-48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로 죽어 침상에 눕혀진 소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에 있는 나사로입니다. 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앞에 두 사건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을 통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사람들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믿지 못하기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야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에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도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장사까지 지냈고 그의 시신은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사건은 ‘주님이 무덤에서 어떻게 부활 하시느냐?’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기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그가 죽어 무덤에 묻히기 까지 기다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사건은 죽은 자가 나사로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827년 스코트랜드의 항구에서 배에 올라탄 노인 목사가 있었습니다. 성 안드레 교회에서 50년간 설교한 라이트 목사 (H. F. Lyte)는 건강을 위하여 따뜻한 곳에 살아야 하겠다는 의사의 권고를 따라 프렌치 리비에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첫 번 기항지인 프랑스의 북부 항구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아침 출항 시간에도 라이트 목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여관방을 열었더니 노인 목사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책상에는 밤사이에 쓴 시 한 편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전 세계가 애송하는 찬송가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481장)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날은 빨리 저물고 어둠이 짙어 가는데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오직 나를 도와주실 수 있는 주여, 나와 함께 거하소서. 작은 인생은 썰물처럼 멀어가고 땅의 기쁨과 영광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주님의 축복이 내 곁에 있으면 병도 힘을 못 쓰며, 눈물도 쓰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죽음도 무덤도 승리의 개가가 되리이다. 내 눈을 감기 전에 십자가를 보게 하소서 하늘의 새벽이 밝아올 때 허망한 땅의 그늘은 사라질 것이오니 사나 죽으나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이처럼 부활 신앙을 가지면 하늘 소망으로 두려울 게 없습니다.
다음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현재도 우리를 살리시는 일을 계속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나 마리아는 죽은 사람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질문은 죽은 네 오리비가 지금 살 것을 믿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무덤가로 가셔서 돌문을 옮기게 하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매 살아 걸어 나왔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의 사역을 통해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 권세를 힘입어 앉은뱅이도 일어나 걷게 하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다비다도 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그 영혼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신앙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에 근거한 사건입니다.
서신서 본문 12-13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완성이요, 기독교의 출발은 부활로부터 시작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고, 십자가뿐이었더라면 기독교는 비참한 종교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십자가의 가치를 증명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꾸며낸 신화도 아니요, 몇 사람들의 영적 체험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6가지 원칙에 의해서 증명되어지는 사건입니다. 누가(Wh0),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라는 물음에 대한 증명입니다. 이 육하원칙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빠져도 역사적 사실이라 말할 수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6가지 원칙에 그대로 맞는 사건으로 부활은 모든 사람이 공증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역사적 사건은 문서로 기록될 수 있고, 시대를 초월해 그것이 후대로 전승되는 사건입니다.
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하고서야 과연 그리스도의 진리가 참이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상 사실일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 했고,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신 분으로 죽음 속에 갇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 자체의 속성상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은 사단이 가지고 있는 최후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죽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인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본문 20-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각자 부활할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이들은 생명의 부활로, 어떤 이들은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아 영생과 영벌로 나누어질 것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이 두 축을 이루는 종교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서서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됩시다.
3.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인 신앙과 헌신의 근거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12절-19절에서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라고 가정해서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다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어 부활을 기다리는 성도들도 망한 것이며,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삶만 있는 것인데 그러면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주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을 계시면서 여러 차례 제자들과 믿는 무리들을 만나 주셨고, 어떤 때는 500여 명이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난 일도 있었고, 주님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도 바울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를 받게 되었노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에 성도들이 행하는 관습 중에 부활을 인정하는 것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본문 29절에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라고 반문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서는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관습이었기 때문에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비록 잘못된 관습이었지만 그런 관습을 예를 들어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지 못한다면 당신들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모순된 행동이 아니냐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바울 자신이 무엇 때문에 날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30절) 바울은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가정의 배경, 사회적 특권과 명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주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고 증거 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바울과 박해를 감수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던 그리스도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있지도 않은 천국을 위하여, 영생과 하늘의 상급을 위해 그 많은 고생을 하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죽어서 썩어 없어진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국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의 주님이 도우심으로 승리를 확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7-58) 우리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예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에 근거한 사건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인 신앙과 헌신의 근거가 됩니다. 아멘.
<2025. 04. 17.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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