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12-20)

열려라 에바다 2025. 4. 18. 16:48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12-20) - 부활
 
문지기님추천 0조회 2925.04.18 10:30댓글 0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12-20)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19-2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진 자들에게는 부활 전과 후가 놀랍게도 비교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 하여 그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씀을 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다. 

1. 무덤 문 앞에서 슬피 울던 막달라 마리아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요 20:14).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바르려고 이른 새벽 무덤을 찾아 갔으나, 빈 무덤인 것을 발견하고는 빈 무덤 앞에 엎드려서 슬피 울고 있었다. 
 그때, 주께서 마리아야 평안하뇨 하시매, 그때서야 주께서 다시 사신 줄을 믿고 슬픈 눈물을 거두고 기뻐하며, 분부대로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떠났다. 우리는 빈 무덤만 바라보고 엎드려 슬피 울지 말고, 빈 무덤을 통하여 영원을 바라보고 승리의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아야 하겠다. 

2.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눅 24:13-14). 이때에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말씀하고 계셨지만,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이신 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서 예수께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지면서 예수님이신 줄 보게 되었을 때,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승리의 발걸음을 옮겨 제자들과 합세하며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본  발걸음은 절망의 하향 길이었으나,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한 저들의 발걸음은 승리의 상향 길이었다. 

3. 공포 속에서 떨고 있던 제자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4).

 다시 사신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봤지만, 예수께서 승천하시자, 박해에 겁에 질린 제자들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려움 속에서 떨며 비겁하게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 성령체험을 한 후 사망권세를 이기고, 불의를 누르고  승리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과 함께함을 확신하자,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의 화신이 되어 순교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4. 교회를 진멸하려고 했던 사울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4-5).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청년 사울은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하면서 이단으로 여겼는 예수님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사도가 된 이후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0:13) 단언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의 잔을 마셨다.

결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전해오는 재미있는 설화 한 토막


유대 요단강 계곡의 경사면에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다. 이들 나무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나무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재목이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는 하나님 성전의 한 부분이 됨으로 저를 통하여 하나님께 크게 높이 찬양되기를 소원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다로 가고 싶었다. 곧 큰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면서 소중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기를 소원했다.


세 번째는 나무는 '나는 여기 남아서 높이 자라 하늘을 향해 가지를 쳐들고 있겠다. 그리하여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내 그늘에 앉아 쉬면서 하나님을 사모하게 해 주겠다'는 소원을 밝혔다.


세월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고 싶어했던 첫 번째 나무는 찍혀서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의 작은 구유가 되어 나귀가 핥아먹는 먹이통이 되어 마구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지는 슬픈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나무는 큰배가 되어 큰 바다로 나가고 싶었는데 서글프게도 찍히고 깎이어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갈릴리 호수로 가게 되어 꾀죄죄한 어부들이나 올라타고 비린내나는 생선이나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뿐입니까? 일 없을 때에는 쓸모 없이 버려진 채 호숫가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 한 그의 소원과는 달리 어느 날인가 웬 사람들이 와서 결국은 찍혀버렸고 그리고 다듬어져서 엉뚱하게도 저주받은 죄인들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인 십자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께서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만 왕의 왕으로 오시는 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다. 그래서 첫 번째 나무였던 그 말구유가 결국은 더 할 수없이 큰 영광을 입은 것이다.

 

다시 세월이 더 흘러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실패자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의 배를 빌려 복음을 전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만선의 복이 임하게 되었다. 결국 두 번째 나무였던 그 조각배가 주님께 강단을 드리는 뜻밖의 영광을 입었다. 

 

그리고 다시 3년쯤의 세월이 더 흘렀다. 세 번째 나무였던 그 십자가는 예수께서 못 박혀 달리심으로 길이길이 만백성의 추앙을 받는 거룩한 십자가가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