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이끌어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누군가를 도와주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해병대에 다니세요
어르신들 사이에 노년생활을 대학에 비유한 말이 유행입니다.
노인들이 다니고 싶지 않은 대학과 꼭 다니고 싶은 대학이 있습니다.
서럽고 울적해서 공원에 가시는 분들을 서울공대 다닌다고 합니다.
동네 경로당 나가면 일본에 있는 ‘동경대’에 다닌다고 합니다.
전철과 국철로 여기저기 시간을 보내고 계시면 ‘전국대’라고 다닌다고 합니다.
연금으로 세상 구경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을 ‘연세대’에 다닌다고 합니다.
고상하게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노인네들은 ‘고려대’에 다닌다고 합니다.
서로 위로하며 강하게 살면 ‘서강대’에 다닌다고 합니다.
건강하면서 국민연금으로 살면 ‘건국대’에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느 대학에 다니면 좋을까요?
다같이 해 봅시다. “해병대”
그러면 해병대는 어떤 대학일까요?
해피하게, 행복하게 평생! 병 안 걸리고 사는 대학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과 사랑 속에서 항상 해피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병에 안 걸리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
P4.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시골길에서 실수로 도로를 약간 벗어나서 운전석 앞바퀴가 옆에 있는 토랑으로 빠져서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한번은 옆에서 공사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도와주어서 빠져나왔고, 또 한번은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견인차가 와서 차를 끌어내어 토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되는 상황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란 존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갖가지 관계들 속에서 공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기쁨이요 은혜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는 무인도에 갇혔다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할까?
우리들은 무인도가 아니라 가족들, 동료들,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실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라는 말씀일까?
D4.
① 적어도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소경, 맹인을 예화로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39절에서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소경, 맹인들을 비하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절대로 아니다.
소경, 맹인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제자들, 신앙인들에게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소경을 예화로 사용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소경, 맹인은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아픔과 고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눈은 있으되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사람, 맹인, 소경, 장님은 얼마나 답답할까?
소경은 선천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다른 일반인들과 똑같이 태어나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마음껏 바라보면서 성장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소경이 되는 후천적인 경우가 있다.
후천적으로 소경이 되는 경우는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면서 소경이 되는 경우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안요한목사님 같은 경우도 후천적인 소경에 해당한다.
후천적으로 소경이 되는 경우는 우리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저가 강의하는 신학교에도 경찰이었던 분이 시력을 잃고 소경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신학을 공부하던 분이 계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힐렌켈러 여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들려주고 있다.
힐렌켈러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저 가슴으로만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소경이라는 사람은 자기 혼자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데리고 이끌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경은 자기 혼자서도 어딘가를 찾아갈 수 없다.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별할 수 없어서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어딘가를 찾아갈 수 있다.
자기 혼자서 어딘가를 찾아갈 수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어딘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인도하여 어디론가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 다 어렵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앞이 보이는 사람이라야 한다.
소경인 사람이 두 발이 없는 사람을 업어서 시냇가를 건너가는 것처럼 누군가 한 사람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이끌고 어디론가 찾아가려고 한다면 좋은 시력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인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신앙인들이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소경처럼 되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적어도 소경처럼, 맹인들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눈을 어둡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창세기 19장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동성애를 즐기려고 하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서 분간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사건을 기록한다.
열왕기하 6장에서는 엘리사를 잡아죽이기 위해서 도단성을 포위했던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사건을 기록한다.
사도행전 9장에서 사울의 눈을 어둡게 만들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멀쩡하게 육신의 눈은 떠 있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잠시동안 앞을 볼 수 없는 일시적인 소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잠시 잠깐이라도 소경으로 만들어버리면 전혀 보지 못한다.
멀쩡한 눈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육신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을 소경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볼 수 있는 육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세계, 십자가 복음의 세계, 구원의 세계를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은 영적인 맹인, 소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적인 눈,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세계, 영의 세계,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가 보인다.
영적인 눈, 영안이 열린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세계, 영적인 세계가 보이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가 열리는 사람이다.
영적인 눈, 영안이 열린 사람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 세계, 천국의 세계가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노라고,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한다고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며 살 것이라고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요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눈,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바라보지도 못하는 육신의 소경이 되는 것처럼 살아서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요 신앙인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대하여 아무것도 분별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누군가를 하나님의 나라로, 천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적어도 하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성령님은 어떤 분인지, 도대체 성경은 어떤 책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알고 있어야 하고 체험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학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의 삶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는 가짜 교수들, 가짜 목사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자칭 스스로 목사라고, 성경교수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유일한 십자가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유일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성경 말씀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목사요 교수라고 떠벌린다.
이런 자들이 영적인 소경이요 맹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믿지도 않고 삼위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나 체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삼위 하나님과 구원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바라볼 수도 없고, 누군가를 이끌어갈 수도 없는 맹인처럼, 소경처럼은 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하고 계신다.
적어도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분별할 수 있고, 삼위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올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제자가 되고 신앙인이 되고 직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요 신앙인들이라면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사랑과 십자가 복음을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 믿음의 사람, 의인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이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가?
정말 삼위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오늘밤에 살인강도가 찾아와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는다 해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고 굳건하게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천국을 선포할 수 있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우리들 자신에게나 누구에게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② 예수님의 수준까지 올라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4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곧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분명히 스승이 제자보다 여러 가지로 나을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제자보다 스승이 낫고 높고 깊기 때문에 제자는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가 더 많이 노력하고 배우고 익히면서 연구하고 연단한다면 언젠가는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낳아서 길러 준 부모보다 랍비를 더 높게 존경하고 추앙하라고 가르친다.
스승, 선생, 랍비에게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고, 토라를 배우고, 세상 살아가는 삶의 원리와 원칙과 규례를 배워야 올바른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은 스승인 자신보다 낮은 수준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자신과 같아지거나 더 높은 수준에까지 올라가기를 소망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보다는 더 높아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예수님처럼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가리켜서 영어로 “크리스챤(Christian)”이라고 부른다.
크리스챤이라는 말은 “작은 예수”라는 말이다.
곧 신앙인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흔적,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말씀이 숨겨져 있다는 말씀이다.
신앙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서 1/10000이라도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의 모습, 흔적, 능력, 말씀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처럼은 될 수 없어도 언제나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갈망하면서 끊임없는 연단과 훈련을 받으면서 다듬어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정대로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전 세계 민족들을 향하여 선교의 현장으로 달려 나간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순교자의 길로 달려간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말미암아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고 주님의 거룩한 직분자, 일꾼으로 세워지면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 확장 사역에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바쳐서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진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따라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신앙인들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그 길을 따라간다.
12명의 제자들, 사도들이 걸어간 선교와 순교의 길을 따라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복음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이 걸어간 그 길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동참하여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③ 자신에게 있는 허물을 먼저 깨닫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41-42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냉정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흔히 자신이 하면 로멘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내로남불, 후안무치”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당연하다고 합리화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자신이 지닌 허물, 죄, 탐욕, 욕망은 한없이 너그럽게 용납하면서, 다른 사람이 지닌 허물이나 죄나 탐욕이나 욕망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죄악들이라고 몰아세운다.
이들은 마치 현미경이나 돗보기로 보는 것처럼 너무나 상세하고 세세하게 잘 보인다.
좌파 사상이나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이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자신들은 온갖 범죄에 연루되어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온갖 험한 말로 저주하고 심판한다.
어떤 고위공직자에게는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탄핵이란 용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한다.
탄핵이란 단어는 맡겨진 일을 수행하던 중에 중대한 범죄행위가 드러났을 때 행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이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 운운한다.
좌파 사상이나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온갖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것을 본다.
정말 인격이나 사람 됨됨이에서 깨끗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허물, 죄악, 탐욕, 욕망, 수치들을 제대로 깨닫고 해결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단죄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41-42절의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흔히 좌파 정치인들 중에 상당수가 교회의 직분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목사 같지 않은 좌파 목사들도 수없이 많다.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연약한 목사이지만, 삼위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읽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고, 이단도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 그대로 믿고 실천하면서 산다고 하면서 좌파인 사람들은 가면을 쓴 외식주의자들에 불과한 악인들이다.
성경에도 가짜 선지자들, 가짜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던가.
지금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온갖 잘난척하는 죄악의 무리들, 외식하는 무리들을 책망하시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요 신앙인들이라면 이런 류의 사람으로 추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요 신앙인들이라면 자기 자신에게나 누구에게나 한 점 부끄러움이나 수치스러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과 갖가지 결점, 허물, 단점을 먼저 체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 사무엘이 백성들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나 수치스러움이 없다고 증명한 것처럼,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누구 앞에서든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오픈할 수 있는 신앙과 인품과 성품과 지조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L4 & B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앙인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신앙인들의 삶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하고 좋은 일이겠는가.
①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소경이라는 존재는 자기 문제에 갇혀서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소경이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너무나 큰 문제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소경이라는 자기의 문제에 갇혀 있다면 절대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소경이라는 너무나 큰 문제 덩어리가 자기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올가매고 있는 것이다.
소경이라는 너무나 큰 문제 덩어리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사로잡아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문제가 너무 크면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불어닥친 문제가 너무 크고 높고 넓고 깊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최우선하려는 인간의 속성에서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고 말씀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경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요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믿음으로 다 맡겨드리고 해결할 수 있어야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 사정이 너무 딱하고 급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오비삼척(吾鼻三尺) 곧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란 존재는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일에 최우선을 여기는 존재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다른 사람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자기 손에 박힌 작은 가시를 뽑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기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에게 있는 문제덩어리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올려드리고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무능하고 모자라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임을 믿는 믿음으로 맡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여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②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 스승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 때, 스승은 그 제자를 바라보면서 큰 보람과 자존감을 느끼는 것이다.
제자가 자기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기 질투하는 스승은 없다.
만약에 그런 스승이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스승이 될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참된 스승은 자신의 제자가 자기보다 더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은 스승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또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양육하면서 도와주고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박 겉햩기식으로 읽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말씀의 깊은 의미와 능력을 하나하나 체험하고 인지하고 고백하면서 영적인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나가야 한다.
③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세워갈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티를 빼내지 못해서 안달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인정해 줄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허물, 죄악들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고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그를 인정하고 따라갈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럴 사람은 없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지키기 위해서 뽑힌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들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국회의원들을 응원하고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속담에 윗물이 고와야 아랫물이 곱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고 이끌어가려고 하는 사람, 지도자의 위치, 윗사람의 위치에 서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자기 자신에게나 가족들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신앙과 인격과 인품과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다듬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의 신령한 세계,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복음을 보여주는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명자들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당당하지 못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도 당당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 스스로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고백하며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신앙인들에게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신다.
신앙인들의 모든 것들, EVERYTHING의 참된 주인되시는 주님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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