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집을 지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에 거할 집을 지어가는 것이다.
다름과 틀림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 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m 직진하면 됩니다!”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저기 교회당 보이시죠?
그 교회당을 지나 100m 정도 가면 2층에 교회가 보입니다.
그 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말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십자가라고 말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말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말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게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이해의 대상입니다.
우리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화내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화를 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분명한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대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르게 생겼습니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고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아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맥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각기 다르게 은사를 주시면서 태어나게 하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나와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어도 나는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DNA는 오직 자기 자신 혼자밖에 없습니다.
손가락에서 나타나는 지문(指紋)도 마찬가지입니다.
쌍둥이도 각각 다른 개체입니다.
이제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P4.
요한복음 6:40에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 아버지의 뜻이란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고백하여 구원받아야 영생의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깊은 산속에 있는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련하면서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란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자, 구속주, 메시야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에 가면 바위 위에 지은 마테오라 수도원((The Greek monastery of Mateora built on a rock)이 있다.
마테오라 수도원은 커다랗고 높은 바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갈 정도이다.
그리스에 성지여행을 하면서 마테오라 수도원을 바라보는데, 어떻게 이런 수도원을 세울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중세기 신앙인들은 커다란 바위 위에 수도원을 세워놓고 수도사들이 그 수도원에서 올라가서 수도해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고,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저에게 “상원아, 마테오라 수도원 같은 수도원에 가서 수도해야 그 대가로 천국에 갈 수 있어. 그러니 수도원으로 올라가서 수도해.”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런 수도원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런 수도원에 올라가서 수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마테오라 수도원과 같은 수도원에 올라가서 수행한다고 해서 천국 갈 수 있는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란 아주 단순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거창한 어떤 업적을 쌓으면서 살아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산에 가보면 간혹 돌맹이들로 커다란 탑을 쌓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단순하게 돌맹이들을 모아서 탑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신앙이 어떤 신앙이든, 자신이 믿는 신앙으로 업적을 쌓기 위해서 돌탑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는 삶이 진정으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46절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7:21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주여”라는 말은 “주인님”이라는 호칭이다.
예수님 시대는 로마제국 시대로 주인과 하인이라는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하인은 주인에게 “주인님이여”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이 시키는 말, 주인이 원하는 말에는 100%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인의 아들이 큰 범죄자가 되어서 사형 언도를 받았을 때, 아들 대신에 누군가가 아들의 죄 값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주인이 하인에게 ‘내 아들 대신에 너가 죽어야 한다.’라고 요구하면 하인은 주인의 말을 따라서 주인의 아들을 대신하여 사형을 당해서 죽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하인이 주인의 말에 100% 순종하지 않으면 죽음밖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 근처에 있는 여러 마을에 있는 회당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신다.
수많은 병자들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마치 자신들의 주인인 것처럼 여기면서 “주인님이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말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인님이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하인은 주인의 말에 100%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데,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다.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야로 믿고 구원받는 것이 주인의 뜻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든지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다.
말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있던가.
입으로는, 말로는 하늘에 떠 있는 Star, 별들도 다 따다 줄 수 있다.
말로는 만리장성도 얼마든지 허물고 새롭게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에는 책임지지 않는다.
허풍으로 끝나는 것이다.
실제로는 하늘에 올라가서 별들을 따다 주는 사람도 없고, 만리장성을 허물었다가 다시 세우는 사람도 없듯이 입으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삶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주는 것이 없다.
입서비스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온 몸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을 살아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선거할 때에는 표를 얻으려고 온갖 입서비스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서 당선하여 정치인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면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을 실천하는 이들이 몇몇은 있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지키지 않는다.
선거하기 전에는 그렇게도 인사 잘하던 사람이 선거가 끝나면 인사하기는커녕 교만, 거만, 속임수의 달인이 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그런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가장 낙후한 정치 세계가 되고 만다.
이런 모습은 소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떠벌리는 신앙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사들, 사두개인들,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신앙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라고 하면서 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미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요 신앙인도 아니요 직분자도 아니요 사명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라다니는 제자요 신앙인이요 사명자요 직분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삼위 하나님의 말씀,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시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도리요 의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신앙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신앙인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영혼에 가만히 가만히 찾아오시고 감동시켜 주시는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는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다.
순종이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순종하는 이에게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에게 요구하는 트레이드마크는 삼위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② 기초가 튼튼한 집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47-4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거주할 집을 짓는데 있어서 기초를 견고하고 든든하게, 튼튼하게 세워서 지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당시, 고고고고고대 사회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이나 부유층이나 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은 튼튼하고 견고한 집을 건축하여 살았었다.
예루살렘 성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도 모리아산, 성전산에 성전을 건축할 때, 기초공사를 하면서 단단한 바위, 돌로 넓은 바닥을 만들어서 그 위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 하층민들은 기초가 튼튼하고 견고한 좋은 집에서 살지 못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화전민들이 있었다.
화전민들은 산이나 들에 들어가서 산불을 붙여서 나무나 풀들을 다 태운다.
그러면 풀과 나무가 타게 되고 재가 생기면서 거름이 된다.
그곳에 터를 잡고 농사하면서 살다가 거름기가 다 떨어지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다시 불을 붙여서 거름을 만들어 농사하면서 사는 것이다.
저가 24년 작년에 작은 텃밭 농사지만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대파, 땅콩, 서리태를 심어보았는데, 생각만큼 수확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 지나니까 농작물들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도 형편없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거름과 비료를 많이 주지 않았던 요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화전민들은 들이나 산에 불을 넣어서 농토를 만들고 농사하여 먹고 살았는데, 처음에는 소출이 많더니 점점 해가 갈수록 소출이 떨어지는 것이다.
화전으로 일구어놓은 농토에 거름 끼가 떨어지면서 소출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다시 불을 넣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 고고고고 고대사회에서는 주로 하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온갖 풀들, 나무들이 홍수에 떠밀려와서 썩고 거름이 되면서 땅이 비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위에 임시로 살 수 있는 움막을 만들어 거주하면서 농사하여 먹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에서는 모래 위에 집을 짓다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 6장에서는 흙 위에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신다.
고고고고대 일반 서민들은 집이라고 해봐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모래 위에 혹은 흙 위에 움막이나 천막을 만들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모래 위나 흙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그곳에서 몇 십 년, 몇 백 년씩 사는 것이 아니다.
몇 달, 길어야 1-2년 정도 사는 것이다.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더 이상 바라는 것들이 없다.
특히 이들은 유목생활을 하던 이들이기 때문에 양 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목초지만 있으면 어디든지 삶의 터전을 삼아서 움막이나 천막을 세워서 사는 것이다.
생명체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터전을 마련하여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살았던 시절은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지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야 좋은 집을 지어서 살겠지만, 하층민들, 서민들은 모래가 되었든, 흙이 되었든 물과 식량만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움막을 짓고 사는 것이다.
③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천국의 집을 주고 싶어하시는 예수님.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사정을 모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목자 없는 양 떼들처럼 헤메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을 향하여 깊은 애정과 사랑을 가지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층민들, 서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시는 것일까?
마태복음 7장에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모래나 흙 위에 움막을 지어서 살아야 하는 하층민들이나 일반 서민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일까?
유투브(YOU TUBE)에서 보면 지구촌 각 곳에 태풍이나 허리케인, 토네이도, 쓰나미, 집중 호우와 같은 자연재해,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홍수가 발생하고 산사태가 일어나고 강물, 냇물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동네를 집어삼키는 재앙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기초를 튼튼하게 세워서 건축한다 해도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가까운 유등천에만 해도 1년에 한두 차례는 꼭 물난리를 일으킨다.
많은 경비를 들여서 가까스로 사람이 잘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정비해 놓으면 어김없이 폭우로 인하여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해마다 복구하는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자들인 알카에다 무장단체가 일으킨 2001년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에서 일어난 9.11테러 사건으로 미국의 상징이요 자랑처럼 여기던 두 건물이 무너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이 사건으로 인하여 2996명이 사망하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아무리 견고하고 튼튼하게 건물을 건축했더라도 지구촌에 있는 건물들은 무너지지 않는 건물은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가까이로는 작년 24년 장마 때에 내린 비로 인하여 유등교가 갈라지고 무너져서 통행금지시키지 않았던가.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의 자랑이요 상징이었던 폼페이라는 도시가 무너지면서 도시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지 않았나.
지구촌의 불가사이한 건축물과 문화유적들이 많지만, 무너지고 만다.
인류 최초의 거대한 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벨탑도 무너지고 말았다.
에돔족 출신의 헤롯 대제가 유대의 왕으로 임명을 받고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하여 거대한 하나님의 성전, 헤롯 성전을 30년에 걸쳐서 건축한다.
하지만 AD70년에 로마 군사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지 않나.
헤롯이 성전을 건축하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헤롯 성전을 보지 않고는 건축물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견고하게 성전을 건축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돌 위로 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무너지고 만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지구촌에 세워진 건물들은 어떤 건물이 되었든 모두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반석 아니라 그 이상으로 튼튼한 기초를 쌓아서 세운 건물이라 할지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건물보다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세워질 집을 믿음으로 세워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3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우리들이 거할 집이 세워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에 있는 건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집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도 주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세상에서 보여주는 것들에 온 마음과 영혼을 빼앗겨버린 이들을 행하여 책망하고 계신다.
마태복음 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행함이 따라오는 삶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하기도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하시는 말씀은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메시야로,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단언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은혜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석과 모래 또는 흙은 의미가 각각 다르다.
반석, 바위, 돌은 변하지 않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바위, 반석이라도 표현하는 성경 구절이 아주 많다.
예수님을 산돌, 흰돌이라고 표현한다.
반석, 바위, 돌은 정결, 거룩과 연결된다.
반면에 흙이나 모래는 모든 물이나 독이나 악이나 모든 것들을 흡수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흙이나 모래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뀌고 변할 수 있다.
그래서 흙이나 모래는 부정이란 의미와 연결된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이란 부정한 상태에서 세워지는 집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다.
부정한 존재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한 상태라야 한다.
정결한 상태, 거룩하고 온전하고 완전한 상태라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세워가야 함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거할 영원한 집을 짓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고백해야 한다.
로마서 10:9-10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12-13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 3:20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각종 직분을 받았고 충성했다 하더라도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주님으로, 구세주로,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았다면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마음에 믿음으로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심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시고 30세까지 성장하시고 3년 동안 공생애를 감당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힌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신 분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
나의 죄 때문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데, 나 대신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나의 죄가 완전히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고백하듯이 예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님께서 내주하면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나를 살리고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 무덤의 권세, 죄악의 권세, 마귀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중동지역의 이슬람 지역에서는 종종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고 전해온다.
어느 지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일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순교를 각오하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상황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마치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찾아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신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증언하는 이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도 신앙인들은 예배의 자리에 찾아오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영원한 구주, 주님, 구세주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사명자로, 직분자로 세워지는 은혜로 충만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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