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5)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5:7, 엡2:1-10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다섯 번째 복은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입니다. 최덕신 님이 작사 작곡한 <긍휼>의 가사 내용에는 긍휼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소서./ 우리를 향하신 긍휼의 그 마음/ 언제나 그 눈엔 눈물로 가득/ 우리를 바라보시는 사랑의 그 마음/ 죄악에 눌린 영혼들 상처로 얼룩진 우리들/ 슬픔과 외로움에 울고 있는 인간들/ 주님의 마음으로 보게 하소서/ 우리를 향하신 긍휼의 그 마음/ 사랑 받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우리들/ 외면과 거절감에 닫쳐진 마음들/ 주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소서/ 우리를 향하신 긍휼의 그 마음/ 언제나 그 눈엔 눈물로 가득/ 우리를 바라보시는 사랑의 그 마음/ 사랑의 그 마음 사랑의 그 마음/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의 말씀을 나눕니다.
1.성도의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입니다.
본문의 ‘긍휼’이란 말의 어원은 헬라어 ‘엘레오스’(eleos)란 말로 그 뜻은 ‘당연한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그를 돕는 미덕’을 의미하는 말로, ‘불쌍히 여긴다.’, ‘측은히 여긴다.’, ‘동정한다.’, ‘자비를 베푼다.’, ‘은혜를 베푼다.’, ‘사랑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긍휼은 성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인자하십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시86:15)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엡2:4)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을 구원하신 다음 그것을 불평하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이것이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15:22-24).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광장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돌아온 탕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그림에 아버지의 눈물방울 네 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이 많고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을 가지신 분이기에 독생자까지 우리 위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역시 긍휼의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주님은 간음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예수님의 긍휼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십자가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야유와 조소와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 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서신서 엡2:1-3에 구원받기 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과거의 삶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았으며, 세상 풍속을 쫓아 살았고, 사단의 지배 아래서 시키는 대로 살던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는 죄의 종으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진노의 자식이며 죄의 종으로 아무런 소망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존재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큰사랑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4-5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 하는 죽음으로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2.긍휼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세상이나 타종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이나 자비심은 성경이 말하는 긍휼과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세상에서 행하는 긍휼의 출발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가 쌓은 선, 자비, 공로로 자기 의를 이루어 그 공로로 구원도 받고 보상도 받는 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긍휼은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쌓은 선이나 자비나 공로가 내 죄를 없이 할 수 없고, 그것으로 구원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것으로 가능 하다면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니면 죄 사함과 긍휼을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가3:22-23) 이 말씀처럼 우리가 죄를 지은대로 진멸을 당하지 않는 궁극적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의 결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성도들은 이웃을 긍휼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은총을 전하며 은혜에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서신서 본문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했고,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은혜를 전파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은혜로 자라게 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지음 받은 우리는 그의 뜻대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날 토끼가 길을 가는데 함정에 빠진 늑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굶어 가지고 삐쩍 말라 죽어가는 늑대가 토끼를 보고 사정을 했습니다. "나 좀 건져 달라." 그러니까 토끼는 "건져 주면 당신이 나를 잡아먹을게 아니오?" 늑대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어떻게 생명의 은인을 잡아먹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토끼는 늑대가 불쌍하여 나뭇가지를 던져 주어 살려냈습니다. 살려냈더니 늑대는 딴소리를 합니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배가 고파 못 견디겠으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토끼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이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여우를 만났습니다. 여우한테 사실이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재판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여우가 늑대를 보고 묻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어떤 형편에 있었느냐?" 늑대는 함정에 다시 풍덩 빠지면서 "요렇게 하고 있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우가 늑대를 보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너는 그대로 있는 것이 좋겠다." 토끼와 여우는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전에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은 사랑의 빚진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것을 늘 생각하며 보답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긍휼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마9:13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입은 우리 모두 긍휼히 여기며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 받는 복을 받습니다.
본문 마5:7의 말씀 같이 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주님의 긍휼을 알고도 이웃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거나 주님의 긍휼을 모르는 자들은 복 있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성령의 은혜도 받고,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왕이 될 수 있겠느냐고 숨고 피하려 했던 겸손한 자였으나 후에 권력욕이 생겨 자신의 왕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사위이기도 한 다윗을 죽이려 했고, 그를 도와 준 제사장들을 무참히 죽이는 무자비한 긍휼 없는 자로 살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리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을 비난하고, 세리와 죄인들을 정죄하기에 급급한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얼싸 앉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긍휼이 없이 불평하는 맡 아들의 모습에서 복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했습니다. 마18장에 보면 예수께서 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의 비유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빚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지방에서 로마에 바치는 세금의 총액이 6백 달란트였다고 합니다. 일만 달란트는 오늘날로 환산하면 수조원이 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하자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큰 긍휼을 입고도 긍휼을 베풀지 않은 그에게 분노하며 당장 그 악한 종을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수많은 성가의 가사 중에는 ‘끼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란 가사가 계속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 역시 주의 긍휼을 바라며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주님의 긍휼함을 입은 우리가 이웃을 긍휼히 여기면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항상 그런 자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와 함께 하시며 늘 새 은혜로 그의 삶을 복되게 하십니다. 종말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긍휼이 없고 무자비하고 무정한 것입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서로 긍휼히 여기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벤자민 프랭크린은 여러 가지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발명을 했고 사회개혁과 교육, 정치를 통해 미국 사회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유용하게 쓰는 가로등을 그가 제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되면 길을 다니는 사람이 어두워서 길 다니기가 어려우니까 해가 지고 난 후에 길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이 있으면 많은 도움 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프랭클린은 아무 말도 없이 해가 져서 날이 어두워지면 등불 하나를 환하게 켜서 집 앞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다른 집과는 달리 그 집 앞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 을 보고 참으로 좋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프랭클린의 집 앞에 켜져 있는 등불의 유용성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하나씩 둘씩 자기 집 앞에 등불을 달아 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 안 되어서 온 마을 전체가 저녁만 되면 집 앞마다 등불을 달아 놓아서 마을 전체가 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긍휼의 등불을 밝혀 걸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자손손 대대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은 우리가 긍휼히 여김으로 주님께로부터 더 큰 사랑과 긍휼을 받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도의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 받는 복을 받습니다. 아멘.
<2025. 08. 29.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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