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 : 믿음 BIW : 실족하지 말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삼위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슴이 닫혀버리면
존 월션이라는 사람이 쓴 “버리기 전에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언젠가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지 아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가 나면 우리의 가슴이 닫혀버리기 때문이란다.
가슴이 닫혀버리면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사랑과 연대감이 흘러넘쳐서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가슴이 열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서로의 소리를 분명하게 듣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을 닫아놓고서 도리어 다른 사람의 가슴이 닫혔다고 아쉬워합니다.
이제 우리 서로가 마음의 문, 가슴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활짝 보이게 됩니다.
굳게 닫혀버린 가슴을 활짝 열면 우리들 주변에 가슴을 활짝 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먼저 활짝 열어야 합니다.
사도행전17:11에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기록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시는 말씀은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높고 넓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열린 베뢰아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지 말고 활짝 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지 말고 활짝 열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찬양할 때도, 봉사할 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아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을 꽝꽝 닫아버리지 말고 활짝 열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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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6에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9:42에서도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 중에 어느 누구에게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실족할 사람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아 바다에 빠뜨려서 죽이는 것이 훨씬 더 낫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만에 하나라고 실족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된다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실족케 하지 말고 차라리 그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아 바다에 빠뜨려서 죽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실족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 사회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하고 복잡한 불상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에서 꼭 원하는 일만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실은 원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이 발생하여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기 때문에 누군가가 실족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불신으로 심판받아서 영원한 형벌,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지체 중에서 눈이나 손이 실족하여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한다면 차라리 그 눈과 손을 찍어내라고까지 말씀하신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실족하는 것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라도 실족하는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고,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무엇이라 형언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면서 실족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실족케 하는 일들도 다반사로 발생하게 마련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는 어떤 일들이 발생하였는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어떤 상태였는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당한 삶이 될까?
D4.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길을 위하여 태어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헤롯 안디바의 미움을 받아서 헤롯 궁에 갇혀 있었다.
세례요한이 헤롯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지역은 오늘날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요르단에 있는 곳이다.
유대고대사를 기록한 요세푸스라는 역사가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오늘날 요르단 땅에 있는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Macherus)에 있는 외딴 요새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해 동쪽 마케루스는 예수님 시대에는 헤롯 왕가가 통치하는 한 나라였던 곳이다.
이 마케루스에는 헤롯이 여름에 지냈던 여름 별장이 세워져 있다.
이 여름 별장에서 헤롯 안디바의 생일날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좋아서 살로메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나라의 절반이라도 다 들어주겠노라고 호언장담한다.
이에 헤로디아의 요구에 의해서 헤롯 안디바는 세례요한의 목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마케루스의 여름 별장에서 세례요한은 죽임을 당한다.
① 메시야 대망사상에 혼란스러워하는 세례요한
세례요한이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의 미움을 받아서 요르단에 있는 마케루스 여름별장으로 알려진 헤롯궁에 갇혀 있을 때 일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비롯한 갈릴리 지방에서 공생애를 감당하는 모습을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보고 듣는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마케루스 요새에 갇혀 있는 세례요한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상세하게 전해준다.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전해 들은 세례요한은 의아스러워한다.
요한은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보낸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찾아가서 몇 가지 여쭈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요한은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여쭈어보라고 한다.
요한은 예수님께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다는 메시야가 당신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여쭈어보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온다.
예수님을 찾아온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라고 여쭈어본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랐던 사람일까?
아니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물어보라고 하는 것일까?
세례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그리스도신가?”라고 하는 소리를 할 때, 세례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한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바로 그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했던 사람이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려 찾아온다.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라고 한다.
세례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하면서 만류하던 사람이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허락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세례를 베풀었을 때에,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성령이 예수님 위에 비둘기같이 내려앉으면서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다.
세례요한은 자신만큼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 마케루스 요새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고 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내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었나? 왜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에게서 로마제국이나 헤롯왕에 대하여 어떠한 제스쳐도 취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세례요한도 연약한 육체를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앞에서 선지자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의롭게 살려고 했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일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진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례요한도 유대인이다.
세례요한도 일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야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애타게 학수고대하며 메시야 대망사상으로 살아가는 민족이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 대망사상이라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야는 강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권력들의 폭력과 압제에서 해방시켜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주실 것이라는 메시야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에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시면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헤롯 왕가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해방된 이스라엘, 통일된 이스라엘을 꿈꾸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메시야라고 믿었던 예수그리스도라는 사람은 유대인들의 정서와는 전혀 다르게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의 압제에서 전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주려는 능력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세례요한도 일반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야에 대한 갈망을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예수님에게서 전혀 그런 갈망을 해결 받을 수 없을 것같은 마음이 들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메시야에 대한 감정과 예수님의 사역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묻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라도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가 딱하거나 험난하거나 역경 중에 있으면 온전한 믿음으로 반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들리고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급기야는 불신하는 데에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② 메시야의 실체를 직접 보여주시는 예수님.
요한이 보낸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21절에서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라고 기록하면서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 떼들처럼 세상에서 버림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치료와 회복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
병자들도 고치고, 귀신에게 들린 자들도 고쳐주고 소경들의 눈도 뜨게 해 주면서 질병과 고통과 악귀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때, 요한이 보낸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이 보낸 사람들에 의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여쭈어보라고 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시야의 실체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쳐주려고 한다.
2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61:1-3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을 통하여 메시야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해 주신 말씀이 하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보내주신다는 메시야의 정체, 실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해 주신 메시야의 정체에 따라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여러 불구자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더러운 악령에 의해서 압제를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악령들을 쫓아내 주시면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메시야가 오시게 되면 세상의 권력, 권세, 압제에서 강력한 권력과 권세로 그들을 물리쳐 주시고,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과 권세로 세상의 권력과 맞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에게 있는 온갖 질병, 역경, 악귀들, 불구자들을 치료하고 회복하여 온전한 사람, 정결한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메시야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을 비롯한 유대인이 추구하고 갈망하던 메시야 대망사상과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실제로 행하신 메시야 사역은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의미의 메시야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서 결국은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든,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에 세례요한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갈망하고 바라보던 메시야 대상사상과 실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견해는 서로 일치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메시야 사상과 삼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메시야 사상이 다른 것이다.
세상의 관전에서 교회와 목회자들을 비롯한 모든 신앙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실제로 삼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관점에 교회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관점과 성경의 관점에 세상이 맞추어서 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대로 교회가 되어주지 않으면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온갖 비난, 욕, 원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따라가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 교회의 방식은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야 합당한 것이다.
③ 실족하지 말고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요한의 제자들에게 메시야의 실체, 정체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시면서 23절에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세례요한이 실족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실족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세례요한은 본래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헤롯궁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이 처한 처지가 너무나 딱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진짜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면서 실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믿음이 흔들려서 실족하게 되면 저절로 요한이 가졌던 의문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신앙인들은 왜 실족하는 것일까?
주변에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실족하여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소위 시험에 들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옮긴다거나 아예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거나 심지어는 교회에서 그렇게나 이단이라고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구원파, 신천지, 장길자의 하나님의 교회, 악인 정명석의 JMS, 로마 교황청의 천주교 등등 이단으로 넘어간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다.
이처럼 신앙인들이 시험에 들어서 실족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기대치,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령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려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교회에 가서 예수님 믿고 기도해 봐요. 그러면 암병을 고칠 수 있을거에요.’라고 전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면 자신의 암병이 고침을 받을 줄 알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수요일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까지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병세는 더욱더 심해지고 아무런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소위 시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 교회에 나가서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소용 없더라....’하면서 시험에 들고는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찬가지로 사업하던 사람에게 사업이 잘 안되어서 고생하는 이에게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 믿어봐요. 그러면 장사도 잘되고, 사업도 잘될 꺼에요.’라는 전도를 받고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했는데, 장사가 잘되기는커녕 아예 쫄땅 망해버리면 교회를 비난하고 비방하고 원망하면서 교회를 다니기 전보다 훨씬 더 교회의 반항자. 박해자, 핍박자, 반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교회를 다녀야 하는 이유, 목적,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교회를 다니는 첫째 이유는 각종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업 성공을 위해서도 아니고, 좋은 신랑 신부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교회를 다님으로 인해서 각종 질병도 고침받을 수 있고, 장사도 더 잘 될 수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교회에 다녀야 하는 1차적인 요인, 목적, 기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 교회를 다녀야 합니까?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1차적인 요인, 목적, 기대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녀야 하는 것이다.
각종 질병을 고친다거나 취직을 한다거나 좋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장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2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덤으로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기대치를 가져버리면 잘 될 수도 있지만, 잘 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시험에 든다거나 실족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경우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실족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보혈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이라는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의심치 않는 믿음, 견고한 믿음, 확신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실족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실족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오늘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실족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실족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족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세례요한이 실족하게 된 원인은 잠시 잠깐이었지만, 메시야에 대하여 의심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잠시동안이라도 의심하는 생각이 앞서면 실족할 수 있다.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하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확신하는 믿음, 변치 않는 믿음, 심지가 곧은 믿음으로 살아야 실족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만큼은 조금의 의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곧바로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결국은 실족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는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주변에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로 힘들게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하지 않는 믿음, 확고한 믿음, 변치 않는 믿음, 굳건한 믿음으로 신앙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②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한다.
세상이란 사탄, 마귀, 어둠의 세력에 의해서 장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신앙인들의 삶을 흔들려고 발악하는 존재이다.
세상이란 존재는 더럽고 추하고 악한 영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에도 흔들리도록 미혹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잠시 잠깐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놓쳐버리면 곧바로 실족하도록 몰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잠시 잠깐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굳건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잠시라도 떠나버리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기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만 실족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③ 주변에 신앙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실족케 된 원인은 요한 자신에게 있다.
자신들이 가졌던 메시야에 대한 대망 사상이 흔들리면서 발생한 일이다.
스승인 요한이 흔들리니까 그의 제자들도 흔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인생살이에는 자기 자신의 문제로 인해서 실족케 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모습으로든 관계성을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나에게 유익을 주는 영향도 있을 수 있고, 나에게 불익을 주는 영향도 있을 수 있다.
우리들 자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실족당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주변에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신앙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 신앙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한 영향력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신앙인들의 삶이란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실족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실족케 하지 않는 믿음, 확신하는 믿음, 변치 않는 믿음,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면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은혜, 한결같은 은혜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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