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6) 마음이 청결한 자 마5:8, 롬1:18-32
비가 온 후 먼지가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보면 마음이 상쾌합니다. 물이 맑아 수심 깊은 곳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호수나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저분한 곳을 청소하고 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죄 짓는 일을 멈추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나아가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성결한 마음이 되어 영혼이 맑아지는 일은 가장 귀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인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을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보면 언제나 마음에 관계하고 있고, 마음을 중요시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이나, 잔과 대접의 겉에만 관심을 가졌고 속을 무시했습니다. 겉만 보면 그들은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에는 탐욕과 악이 가득했습니다. 주님은 마15:17-20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하셨습니다.
그들은 종교의 외형에만 관심을 가졌고, 율법의 더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잊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십일조는 했지만 그 정신은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23:23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교리나 신학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조나 교리에 대한 이해, 또는 지식적인 동의에서만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사고나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 자들이 짓는 죄에 대해 서신서 본문 롬1:28-31에 의 죄악 목록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연상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워왔고, 복음을 전할 때 많이 사용하는 문구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상반된 두 성품을 가진 하나님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개념을 처음부터 부정해 버리고, 신성 모독으로 간주합니다. 더 나아가서 죄인을 심판하려고 준비한 지옥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할 만 한 구절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나나니’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불경건한 행동과 불의한 행동으로써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성결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애들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단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단다."라고 하였더니, 성경 교육을 잘 받은 한 꼬마가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 아니에요. 하나님이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요."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그게 뭔데?"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꼬마는 "예수님의 피 아래 있는 내 죄는 볼 수가 없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죄 사함 받은 자들의 죄를 기억도 안 하십니다. 누구도 정죄할 수 없는 것은 그 피가 우리 속에 청결한 새 마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죄 없는 성결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불러내어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며,(엡 2:6-14)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버려두셨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택함을 받은 자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 모습에 대해 로마서 본문 24-25절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하였습니다. 인간의 정욕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택한 백성들은 정욕대로 살지 않고 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1-12)했습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버려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온갖 부끄럽고 더러운 생활에 빠져 삽니다. 본문 26-27절에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했습니다. 택한 백성들도 정욕이 있지만 절제로 정욕을 제어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힘쓰며 삽니다. 그러나 버려진 자들은 그렇게 억제하며 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죄를 짓고, 자랑하기도 하며, 영광으로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 행하는 자들을 가증이 여기시고 진노 하십니다.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의 버려진 생활은 바람직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녀들을 보면 거의가 불량아들이 되고,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은 대부분 폐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은 더욱 부끄럽고 추한 삶을 살다가 진노아래 심판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후회 속에 지내게 됩니다.
거듭난 성도는 새 마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했습니다. 새 마음을 받은 자들은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마음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부르셨는데, 그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고’(삼상 10:9)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새 마음을 받았던 사울은 그 마음을 관리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했고, 도중에 믿음이 파선 되었습니다. 이는 청지기적 삶의 실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적합한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때에 찾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엘리압을 추천하였습니다. 엘리압의 용모가 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 여호와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셨고,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높이고, 끝까지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기를 힘쓴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며 사랑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의 가장 큰 행복은 주님을 보는 것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3:12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다윗도 하나님을 보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보는 것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8-1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많은 기도 자들이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영이신 하나님을 눈으로 감각적으로 직접 본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출33:20).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영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같게 되면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 또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보게 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지나간 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중 한 사람인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세계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다!”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 찬양, 기도 등을 통한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교제 관계에서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꿈 가운데 하늘과 땅으로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임재를 체험하고 서원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욥은 고난을 겪으면서 주님의 임재를 깨닫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나이다.’고백했습니다. 지난 날 뒤 돌아보면 매일 발걸음마다 주께서 함께 하신 것을 고백하고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나무와 꽃과 열매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느끼고 찬양합니다. 모차르트와 왕실 사냥꾼인 그의 친구가 나란히 산에 가게 되었을 때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냥꾼인 그의 친구는 “이 바람은 산토끼를 놀라게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들어 봐, 하나님의 거대한 오르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에 대한 보조 교과서라고 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주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자비하심, 긍휼하심, 오래 참으심, 심판 등등.....하나님의 속성과 참 모습들을 볼 수가 있어 믿음에서 믿음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다 마침내 주님 앞에 서서 뵙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영적 안목을 가지고 주님을 보고,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인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를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아멘. <‘25. 09. 03.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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