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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 (사 41:8-10)

열려라 에바다 2025. 9. 1. 10:28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 (사 41:8-10)
 
新 婦추천 0조회 1325.08.31 20:3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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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이기는 은사 (사 41:8-10)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시간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라는 제목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학설들이 많은데, ’마사 누스바움‘은 말하기를 '두려움은 군주적인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되면 그렇게 두려움이 많은가 봅니다. 군주가 아닌데 두려운 것은 왜 그럴까요? 쫓아오는 사람이 없은데 왜 불안할까요?


심리학에서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으로 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으로, 위험을 회피하고 대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죠. 두려움이 있을 때 인간의 삶의 질은 최하로 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실존(實存)의 밑바탕은 바로 허무(虛無)”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파묻혀 잊고 사는 것뿐, 자신의 허무하고 비참한 본질을 깨닫는 순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신자라면 아직 은혜 받지 못해서입니다. 은혜 받았다면 더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랑 안에서 영원히 안전한 참 평화를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이길 특별한 은사를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무엇일까요?


1.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임마누엘입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6: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히13:5-6에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신 말씀은 위대한 복음입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한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부불에 던져졌으나 그곳에 셋이 아니라 넷이 있었습니다. 단3:25에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시23:4에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함께하심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함께하시도록  늘 사랑하고 거룩하시기를 바랍니다.


2.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사랑입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일4:17을 보면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은 심판도 이기고, 예수님도 사랑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 그의 신학사상은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봉사정신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가 임종을 앞두고 유언했던 것은 “나를 보통 사람들처럼 죽어가게 내버려 두라.”였습니다. 그런 담대함이 어디선 온 것일까요? 사랑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요일4:16에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두렵다면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두렵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오는데 그 첫째가 자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기도입니다.


시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여기 “간구”는 기도보다는 더 간절하고 강한 기도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강한 기도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기도가 약하기에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이런 노래가 있지요. 3년 걸려야 치료할 수 있다는 불면증과 불안증에 걸린 환자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더니 석 달 만에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부르짖는 기도를 했다면 더 빨랐을 것입니다.


강한 기도가 사탄을 물리칩니다. 사탄이 물러가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줍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근심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라는 신호입니다. 마음이 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몸과 마음 다 바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담대한 은사를 주십니다.


중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하고 이방종교에 빠져 살 때 얼마나 오래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모니카는 크게 낙심하여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서 “감독님,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버리신 것 같아요. 제가 오랜 세월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하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암브로스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격려의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한 결과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왔고 기독교 역사상 빛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4.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의 세심하심이 이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인 안이숙 여사는 묘비에 자기는 “실격한 순교자”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위 순교하기를 갈망했지만 갑자기 우리나라가 광복되어 1945년 8월 17일에 석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46:3-4에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이 말씀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21:5-8에도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했습니다.


부흥사 무디가 한번은 영국에 가서 부흥회를 마치고 배를 타고 오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는데 무디는 쿨쿨 잠을 자니 옆에 있는 사람이 깨우면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죽음의 경각에 잠이 옵니까?” 그러자 무디는 눈을 비비며 “왜 그러십니까?” “지금 폭풍으로 죽게 됐는데 모르겠어요?” “예. 난 또 무슨 큰일이 났다구요, 뭘 걱정입니까? 죽으면 천국 가고 살면 미국 가고 걱정할 것 없어요.” 그리고 다시 잠을 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심하라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사인 보내신 것이 없다면 별일 없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걱정을 해도 하나님이 평안 주시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에라도 경고하시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딤후1:7).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두려움이 있다면 영육간 어디엔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잘 경외함으로 능력 받아서 임마누엘의 은사, 사랑의 은사, 기도의 은사, 말씀의 은사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