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좋은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봐요 = 누가복음7;24-30(250914)

열려라 에바다 2025. 9. 11. 15:17
좋은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봐요 = 누가복음7;24-30(250914)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3325.09.10 19:36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PW : 믿음                  BIW : 칭찬을 받으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인격과 신앙을 인정받고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의부증이 심한 여인

늘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샤워할 때 와이셔츠에서 팬티까지 점검했습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라도 나오면 어떤 여자야?”라며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옷을 세밀히 봐도 머리털 하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샤워를 끝내고 나온 남편에게 아내가 하는 말,
이젠 하다 하다 대머리 여자까지 사귀냐?”
의심은 치료가 잘 안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의부증, 의처증은 정말 무서운 질병입니다.
조그마한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고, 의심은 불행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들은 불행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믿음으로 서로서로 깊이깊이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뢰는 행복의 씨앗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가정과 교회와 생업터전에서 서로 믿어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행복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P4


어느 누구나 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칭찬받을 때 행복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솟구쳐 오른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라가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칭찬을 받는다면 어떨까?
반대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라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서 인정받기는커녕, 심하게 인간적으로 모멸을 당하고 책망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일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 더 나아가서는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까지 들지 않을까?
간혹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심한 모멸감을 당하고 견디기 어려운 수치심을 느꼈다고 여겨질 때, 그 순간을 이기지 못해서 자기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라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라도 인정받고 칭찬받았다면 얼마나 감격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이러면 그야말로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그 무언가를 더 잘하고 싶은 욕망, 욕구, 희망, 소망이 넘쳐난다.
에너지가 솟구쳐 오른다. 능력이 솟아난다.
무언가라도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소망,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신앙인들은 누군가에게 좌절감, 실망감을 안겨주지 말고, 누군가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비롯하여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이들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말씀일까?


D4.


 세례요한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 예수님.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하면서 여쭈어보라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참다운 메시야의 실체, 정체에 대하여 듣고는 세례요한이 갇혀 있는 요르단의 마케루스 요새, 헤롯의 여름 별장으로 돌아간다.
예수님은 요한이 보냈던 사람들이 돌아간 다음에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라고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는 유대 광야는 그야말로 황량하기 짝이 없다.
황량한 들판, 광야에는 모래와 돌맹이들, 약간의 풀들, 나뭇가지들이 보이고, 바람이 힁힁 스쳐 지나가는 소리들만 들려오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광야로 나가는 것이냐?라고 되묻고 계신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 권세있는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 멋쟁이들, 소위 스타라는 사람들은 도시에, 왕궁에, 마을에서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다.
광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광야로 나아간다면 누구를 보려고 광야로 나가는 것일까?
선지자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그 하늘 아버지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면서 하늘 아버지의 뜻과 의지를 전해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면 광야로 가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제국에서 히브리민족대이동이라는 대의명분아래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했던 민족이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는 이적도 목격한다.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는 이적을 목격한다.
40년 동안 광야생활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낮에는 구름기둥의 모습으로, 밤에는 불기둥의 모습으로, 성막에는 영광의 모습으로 임재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일용한 양식인 만나를 내려주시고, 필요에 따라서 모든 것들을 채워주시고 막아주시고 건져주시는 이적을 목격한다.
심지어는 40년 동안 신었던 신발, 입었던 옷이 하나도 헤어지지 않는 이적을 체험한다.
40년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이적도 목격하고, 가나안 족속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는 이적을 목격한다.
이 모든 것들이 광야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광야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광야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라고 믿는 것이다.
광야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면 당연히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포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사명을 받은 선지자들은 당연히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세례요한은 쿰란이라는 광야에서 에세네파(Essenes)’라는 유대인공동체를 형성하여 살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이다.
비록 지금은 마케루스 헤롯 여름별장에 갇혀 있는 신세이지만, 세례요한은 쿰란공동체, 유대인공동체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광야에 나가서 선지자들에게서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포해 주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민족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광야로 나아간 민족이다.
그러면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광야는 어디일까?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역경과 핍박과 박해와 염려와 근심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려고 하시는 분이다.
고난의 자리, 환난과 역경의 자리, 시련의 자리, 온갖 문제 덩어리의 자리, 낙심하고 좌절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자리,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같은 막막한 자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그 자리에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 +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것이다.


또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령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위해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아가면 하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가면 영원한 생명이 되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외울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영혼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26-28절의 말씀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하여 어느 선지자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고 계신다.
자칭 선지자들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들도 세례요한은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 세상에 왔다 간 사람치고 여인이 낳지 않고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하늘에서 뚝 하니 떨어지고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처럼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던가?
사람들이 꾸며낸 전설이나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여인의 태를 통하여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 왔다 간 사람들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하고 큰 사람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세례요한이야말로 인류 최조의 사람이라는 아담과 하와 이래 가장 큰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1등에서 꼴등까지 등수를 매기면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기를 팍팍 죽이지만, 유대인의 교육에서는 모두가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유대인들의 교육에서는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가장 합당한 은사를 주시고 태어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 은사를 따라서 각자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1등 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로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가장 좋은 능력을 발휘하여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자신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그 분야를 찾아서 당당하게 1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글 쓰는 일에,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어떤 이들은 돌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어떤 이들은 모임을 주선하고 이끄는 일에, 어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 어떤 이들은 그 악기를 만드는 일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이것저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을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에 아주 심한 장애인들에게도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그 분야에서 1인자가 될 수 있도록 피나는 연단과 노력을 기울이면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인이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세례요한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28절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요한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자일지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어찌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자일지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큰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일까?
아담과 하와 이래로 세례요한까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소망하고 그리워하는 정도에 불과한 처지이다.

어쩌면 실체이신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세례요한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림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믿음의 사람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림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살아가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진수성찬의 그림을 본다 하더라도 그 그림이 직접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직접 김치에 식은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 전에 존재하는 세례요한까지의 모든 인물들은 진수성찬이 그려진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한낱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기 때문에 진수성찬의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베풀어주시는 영생의 맛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부럽지 않고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한과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에게서 기죽지 말고 살아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짱을 뜨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삼위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맞짱을 뜨려고 하면 세상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신앙인들이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면서 승리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최고의 신앙인이라고 떠벌리는 이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


세례요한에게서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은 여인이 낳은 자들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을 의로운 분이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 당시 잘난 사람들, 랍비들,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교사들, 제사장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레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이들을 떠나서 쿰란이라는 곳에서 유대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율법을 가르치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보내시면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사역을 맡겨주셨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소위 잘난 사람들, 랍비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도 인정하지 않고 세례요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모세5경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613개의 율법, 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면서 완벽하게 살고 있노라고 호언장담하던 이들이다.
이들은 모세5경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613개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 정결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상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요한도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불신자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칭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율법,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노라고 자랑하는 이들이었는데, 진짜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기는커녕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사람이라고 책망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30절에서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라고 기록하면서 이들을 책망하신다.
자기 스스로 잘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높이는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L4 & B4


신앙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받지 않고 인정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신앙과 인격을 골고루 잘 갖추어야 한다.


여자들은 3대 미덕인 솜씨, 맵씨, 마음씨를 잘 갖춘 여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맵씨, 솜씨, 마음씨는 여자만 잘 갖추어야 하고, 남자는 아무 것도 안 갖추어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맵씨나 솜씨나 마음씨는 여자, 남자 가릴 것없이 사람이라면, 특히 신앙인이라면 골고루 더 잘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믿음씨까지 하나도 더 추가하여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곧 인격과 신앙을 골고루 잘 갖추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은 좋은데, 신앙이 엉망인 사람도 안 되고, 신앙은 좋은데 인격이 개망난이같은 사람이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군가에게 꼭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인데, 인정받고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려면 사람 됨됨이도 좋아야 하는 것이고, 신앙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도 안 되는 것이다.
더더구나 사람 됨됨이도 안 되고, 싸가지가 바가지 같아서 개망난이인 사람, 인격과 신앙이 없어서 둘 다 안 갖추어진 사람은 대책이 없는 사람, 답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과 인격이라는 두 레일을 잘 갖추어서 평행선을 이루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 인생이란 열차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탈선하지 않고 온전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과 함께 살면 된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칭찬받는 이들이 많다.
사람 됨됨이가 되었다든지, 인간성이 되었다고 인정받고 칭찬듣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본래부터 죄인이요 악인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다.
그러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다들 거기서 거기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인격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사람이란 존재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변화받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목자가 되어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붙들고 한결같은 믿음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나 세례요한을 따르는 무리들이 실족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착하고 선하고 남을 배려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과 함께 더불어 동행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과 신앙인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 랍비들, 사두개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의인이라고,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흠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하더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못하고, 칭찬받지도 못한 사람으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들이 정해놓은 프레임, 테두리, 틀에 갇혀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님, 메시야로 보내신 예수님을 주님이요 구세주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고백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임마누엘로 동행하심으로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서 성령님께서 거룩하도록 인도하시는 손길에 따라서 아주 약간씩이라도 변화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울러 자기 자신의 의지로 온유한 삶을 살려고, 겸손한 삶을 살려고, 변화받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인들은 가능하면 말을 적게 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할 때는 크게 입을 열어서 말을 많이 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말에는 입을 적게 열고 말을 적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꼭 필요한 말은 해야 하지만, 말을 많이 하다보면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아주 쉽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많으면 그만큼 말실수도 많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야고보서3:1-3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삶의 흔적들, 주님의 말씀과 이적들, 예수님께서 친히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과 가족들, 성도들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칭찬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의 사명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1/10000이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쟁이로, 예수님의 향기와 좋은 복된 소식을 들려주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구약1, 2, 신약1)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창세기 이야기 1, 2
 출애굽기 이야기 1, 2
 레위기 이야기
 민수기&신명기이야기
 민수기 이야기
 신명기 이야기
 ()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 2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