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7) - 화평케 하는 자 마5:9, 엡2:11-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 중 팔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일곱 번째의 복인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을 상고합니다. 화평은 사람들이 가장 바라고 가장 소원하는 일입니다. 부산에 있는 한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마태복음 5장에 있는 8복중 어떤 복을 누리기를 제일 원합니까?"라고 설문을 했는데, 교인들의 90%가 7번째 복인 화평케 하는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화평은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가장 귀한 복입니다.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이 화평입니다. 잠언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했습니다.
화평은 가정에서뿐 아니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전 세계적으로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화평 대신 분열, 다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평화를 만드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화평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 사람입니다. 사실 화평이 없는 곳에 화평을 만드는 일이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려고 한 평생을 노력했던 성 프랜시스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를 생활화하며 살았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보면,
1.첫째, 예수님은 십자가로 화평의 길을 여셨음을 봅니다.
서신서 본문 엡2:16-18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사탄 마귀가 하는 중요한 일은 평화를 깨트리는 일입니다. 에덴에서 아담 하와를 미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하여 죄를 범하게 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깨트려버렸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깨뜨려 형제간에 살인하는 일이 생겼고, 사회적인 평화도 깨트려버렸습니다. 가인의 자손들이 말하기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4:23)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평화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 중 하나가 ‘평강의 왕’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사9:6)라고 예언했습니다. 성탄의 아침 천군 천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왜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부르실까요? 평화를 깨뜨리는 근본 문제는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죄가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죄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담을 만듭니다. 범죄 한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잠언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28:1)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속죄하는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본문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가지 장기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에서도 심장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 가운데 아주 높은 것이 심장마비입니다. 특히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는 원인은 심장마비가 1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심장과도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면 그 영혼이 죽습니다. 피가 심장을 거쳐 온 몸으로 잘 흘러가야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혈관에 기름기, 노폐물, 중금속, 찌꺼기 등과 같은 장애물이 생겨 심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거나 좁게 만들게 되면 중풍, 뇌졸중, 뇌경색, 뇌출혈, 안면 마비, 사지 마비, 심근경색 등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이 짓는 여러 가지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와 이웃 사이에 장애물을 만들게 되어 관계가 깨어지게 되고, 화평이 깨어지게 됩니다. 주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 죄를 정케 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장애물을 제거 해 줍니다. 십자가 앞에 모든 죄와 허물을 내어 놓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성도가 됩시다.
2.둘째, 성도는 주님을 본받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은 팔복의 일곱 번째 복으로 화평케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평화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가 없음에도 세상에는 분쟁과 불화와 싸움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깨뜨리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끼어들기만 하면, 소란을 피우고, 시비를 걸고, 파당을 만들고, 분열을 일으키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주석가인 메튜 헨리는 ‘평화를 만드는 자가 복을 받는다면, 평화를 깨뜨리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라고 혹독하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만드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처와 아픔을 주는 자들과도 화평의 관계를 맺기를 힘써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롬12:18)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한 분이 어거스틴입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가정에 화평을 만드는 일을 너무 잘 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남편을 하나님과 화평케 했고, 자기와 화평케 했습니다. 까다로운 성격의 시어머니를 하나님과 화평케 했고, 자기와 화평케 했습니다. 탕자와 같은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과 화평케 했습니다.
이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나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고 믿음에 굳게 서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 안에 늘 평안을 소유해야합니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평화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평화는 아직도 진정한 평화는 못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내 안에 위로부터 오는 참 평강이 깃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근심과 염려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고 했습니다. *다음에 온유 겸손한 예수님을 닮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만하고 작은 일에도 혈기를 부리며 사람을 대하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될 수 있어도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화평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희생을 통해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일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타고난 기질도 고칠 수 없고, 우리의 게으르고 이기적인 행동도 고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부은 바가 되어 이제는 원수까지도 포용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성령이 강권하여 역사하시므로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평화를 심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5).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행16:6-8). 이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온유 겸손한 주님을 본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화평케 하는 자로 삽시다.
3.셋째,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일을 힘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복 중의 복이요, 큰 특권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3)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의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나, 고행이나,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거듭 나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것은 크나 큰 영적인 특권입니다.
서신서 본문에 보면 우리는 본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본문11-12절에서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했습니다. 우리의 본래의 신분과 처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을 받지 못한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권속이 된 우리가 과거 머물러 있었던 옛 삶의 자리는 소망이 없는 죽음의 자리였다는 이 사실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아무리 수고를 많이 하고 큰공을 세웠다 해도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신서 본문19-2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새로워진 신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22절에 있는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는 말의 원어에서의 의미는 ‘이 일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단 한 순간이라도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든지,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직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깨어 있어 두렵고 떨림으로 끝까지 우리의 길을 성실하게 인내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4:7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을 받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로 화평의 길을 여셨음을 봅니다.
◑.둘째, 성도는 주님을 본받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아멘.
<2025. 09. 18.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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