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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 있는 사람(8)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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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현낙선추천 0조회 6825.09.25 07:51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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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8)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5:10-12, 벧전2:18-25
팔복 중 마지막 8 번째의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에 대한 말씀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먼저, 핍박이 아닌 것을 핍박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잘못 처리한 결과로 어려움이나 곤경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 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핍박이 아닙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은 핍박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본문 20절에서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했고, 벧전4:15 이하에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무지와 광신적인 태도 때문에 받는 곤경도 핍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여 받는 고난도 그러합니다. 핍박과 순교라도 동기가 순수해야하는데, 쾌감이나 종교적 이기주의로 할 수 있습니다. 고전13:3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했습니다. *내 성격이 까다롭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핍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의를 위해 박해 받는 것은,
1.아름다운 고난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서신서 본문 18-20절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인 베드로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제국에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노예제도 아래서 자행되는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와 고통이 많았는데,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세를 본문은 제시합니다. 베드로는 주인과 사환의 관계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노예들이 고난을 참고 복음을 위함이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현실 가운데서도 주인의 마음에 더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믿지 않는 노예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욱 공손해야 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길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인내 하면서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름답다고 거듭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23:5-6)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1:30)했습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의가 되신 주님을 본받아 진실 된 믿음을 가지고 살려할 때 고난을 받게 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삶이 변화되어 경건한 삶을 추구하다가 받는 핍박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사는 자들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에게 박해를 받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인에 의해 박해를 받아 죽었던 첫 순교자 아벨이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결한 자로 살려고 하다 여 주인의 미움과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선택한 모세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기를 힘썼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사자굴과 풀무 불에 들어가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에게 많은 박해가 따랐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참 빛이 되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믿음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살 때 박해를 받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박해 받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은 박해를 받고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인내하며 순교자들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늘의 시인' 이라고 불리는 송명희씨는 뇌성마비 장애자입니다. 그녀는 예수를 영접한 후 예수께 드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서두에 "고난의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녀는 당하는 고통이 너무도 심해 예수를 고난의 선생님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 편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생님을 좇은 후에 고난은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이 많아져 고통스러움이 더해만 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 곁에 계셨기에 육신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안했고,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슬프고 괴로울 때는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했을 때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시며 수없이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주셨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후, 건강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많은 재물이 없어도, 선생님이 계시기에 감사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성숙과 이해의 성숙은 고난이 아니면 얻어지지 않는가 봅니다." 주어진 고통과 환경을 뛰어 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고난을 받는 자의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서신서 본문 21-25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주님은 본을 끼쳐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몇 가지 자취는, *성결하신 자취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마음도, 생각도, 입의 말도, 행하시는 모든 것 가운데 거짓 없는 진실함과 성결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겸손히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믿음의 자취를 보여 주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23)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로 할 수 없는 수모와 수치를 당해도, 배신과 배반을 당해도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믿음의 자취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능히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음에도 친히 해결하려 하시지 않으시고 아버지께 맡기는 믿음의 자취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남을 위해, 인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사랑의 자취를 보여 주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24) 주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셨고, 사랑으로 섬기는 본을 보여 주셨고, 세상 죄를 지고 도살장으로 끄려가는 양처럼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에서 나무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자취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보혈 밖에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수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되어 질 수 없고, 우리의 사고를 초월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비밀이요, 신비요, 능력입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도 이 팔복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3-10절까지 읽어보면서 옳다 옳아라고 하면서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자신이 주장하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정신과 일치하는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1절의 나를 인하여 핍박과 고난당하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을 읽고서는 성경책을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외치기를 도대체 예수가 누구관대 그를 위해 고난 받고 핍박받을 정도로 그를 따르라는 것이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인도의 영웅은 되었지만, 천국 시민이 될 자격은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와 같은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복 중의 복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마5:10-12 함께 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라 하셨고, 8 번째 복은 천국과 더불어 상급의 복이 더해집니다. 어떤 분은 8 복의 말씀은 사닥다리와 같이 한 단계씩 높아지는데, 그 맨 위에 의를 위해 박해 받는 복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큰 복이지만 상급을 받으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상급 받는 것은 수고와 고난의 대가가 따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1)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면서 예수님 이름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박해를 받고, 고난이 올 때 복이 있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며,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길의 결국은 주님의 칭찬과 인정과 그에 따른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여기 기뻐하다의 헬라어 카이로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좋은 감정, 벅찬 기쁨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즐거워하다의 헬라어 아갈리아오는 외부로 넘치는 기쁨, 억제할 수 없는 역동적인 환희의 뜻으로서 카이로 보다는 좀 더 점층 된 기쁨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중에 있더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큰 상에 비하면 땅의 박해는 작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5: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벧전4:12,13)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힘씁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갔던 한 핀란드(Finland)여인이 심한 폐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휴양을 하며 농사일을 돕던 중 탈곡기에 한쪽 팔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겹치는 고난가운데서 그녀는 기도합니다. "주님, 오른 팔이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여인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냐고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할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이라고 묻는 여인에게 농장을 양로원으로 개조하도록 하셨고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뜻하지 않은 고난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납니까?' 라고 따집니다. 그러나 '' 라는 말 대신 '무엇' 이라는 말을 할 때 아름다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믿는 성도가 됩시다. 의를 위해 기쁨으로 박해를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복 중에 복을 받는 성도로 삽시다. 말씀을 마칩니다. 의를 위해 박해 받는 것은,
.아름다운 고난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복 중의 복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아멘. <‘25. 09. 25.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