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렘23:1-6)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43325.11.22 14:26댓글 10
하나님의 선한 목자
예레미야23:1-6
오늘은 2025년 교회력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가 대림절 첫 번째 주일로 2026년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인데요,
기다림의 의미는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과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주를 기다리는 두 가지의 의미가 섞여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되었던 대림절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할까요?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역사를 보면 인간은 많은 사람과 많은 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왔습니다.
훌륭한 지도자에게 희망을 걸기도 하였고 과학 기술문명에 희망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에이아이에게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만 과연 AI가 인류에게 어떤 미래의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희망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 분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며 도와주실 수 있기에 우리는 그 분을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수 있기에 우리는 다른 분이 아닌 오직 그 분만을 기다립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희망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에서 선지자는 우리의 희망이 누구이며 왜 우리의 희망인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상의 목자는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 활동을 할 때 유다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큰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국가의 위기 앞에서 국론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친 바벨론파와 친 애굽파로 나누어져 있었고
선지자도 바벨론에 항복해야 된다는 사람과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곧 물리칠 것이라는 선지자로 나누어져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벨론에 항복해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예레미야 27장에 보면,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11절)
시드기야 왕에게는 직접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12절)고 직언합니다.
적국에게 항복하라는 선지자의 말이 좋게 들릴 수 없었겠지요?
많은 반대가 있었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서서 예레미야의 예언과 달리 하나님께서 2년 안에 이 나라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나라가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었기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는 것이 피해를 줄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와께서는 그 이유를 목자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고 경고합니다.
유다나라를 목장의 양떼로 비유하면서 그 양떼를 목자들 즉 지도자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양을 잘 돌보고 평안하게 하고 안전하게 지켜야 할 목자들이 오히려 양떼를 멸했습니다. 흩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유다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자가 목자들, 지도자들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왕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유대 나라의 대표적인 선한 왕이었는데 아들인 므낫세는 정반대로 대표적인 악한 왕이었습니다.
어떻게 부자간에 이런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이루었던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모든 모습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섬깁니다.(왕하21:4)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심했던지 역사는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예루살렘과 유다는 재앙을 받게 되었고 원수들의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의 목자,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한데요,
그래서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하고 지도자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라가 어렵고 멸망당하는 원인 중의 원인을 지도자에게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인간의 지도자는 진정한 우리의 목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5년마다 대통령을 뽑고 이번에는 다르겠지 기대를 해 봅니다만
기대는 늘 무너지고 ‘역시나’ 하는 절망감을 느끼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목자라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하게 만듭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지도자를 세우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는 내가 새로운 목자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로 말미암아 유다는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주전 601년경 여호야김 왕이 바벨론에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배척하자 바벨론 왕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성이 포위되기 전에 여호야김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올라 BC 597년 3월 16일 바벨론 군대에게 성을 내주고 수많은 백성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바벨론은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앉혔지만 약하고 줏대가 없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10년간 조공을 바치다가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바벨론을 배반합니다.
바벨론은 2번째로 예루살렘에 군대를 보냈고, 왕 자신도 직접 따라와 주전 586년 8월에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것으로 유다는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시드기야 재위 초에 예레미야는 1차로 잡혀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동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거짓 예언자들이 그들을 부추기면서 하는 말을 믿고서 곧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지 말고,
그곳에 평화롭게 정착하고 바벨론이 잘 되기를 바라라고 권고합니다.(29장)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70년 정도 길게 이어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 편 기간이 차면 해방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의 예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는 그 예언대로 포로를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들 위에 내가 목자들을 세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4절)
이 말씀에서 중요한 구절이 ‘내가’ ‘여호와가’인데요, 3절과 4절에 한 번씩 ‘내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도 여호와요, 그들 위에 좋은 목자를 세우는 것도 여호와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우는 목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목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선한 목자를 세우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호와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025년을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많은 혼란과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전 정권을 심판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방어하려는 자들이 대치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한 가운데 처해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의 위협과 불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인간의 지도자가 아닌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셔야 나라가 안전하고 평화롭고 흥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 이 폭풍전야와 같은 한반도에 강림 하셔서 이 나라를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당신만이 우리의 희망임을 믿기에 당신을 기다리오니 우리를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옵소서.’
여러분, 우리의 희망이 오직 주님밖에 없는 줄 믿고 주님을 기다리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참된 목자를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구제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모두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성을 갖습니다.
그 예언들은 현실적인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궁극적인 목적을 겨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레미야의 예언은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들을 일으켜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시온의 땅으로 돌아오게 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응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본문의 예언은 참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통해 실현될 예언이었습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할 참된 지도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분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신 새로운 목자이신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주님은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한 목자인 줄 믿습니다.
양들인 우리는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목자를 따를 때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선한 목자라고 선전하며 자기를 따르도록 유혹하는 거짓목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만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 양들을 구원한 목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 목자만을 따르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선한 목자를 따르게 될 때 우리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 줄 믿습니다.
이런 선한 목자를 따르게 될 때 우리가 받게 되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➀먼저는,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양들은 정신없이 풀을 뜯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목자를 잃어버리고 위험에 처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풍성한 삶을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음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➁두 번째는, 올바른 다스림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오게 되는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의 나라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닌 만국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스스로 만왕의 왕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목자이실 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고 놀라운 축복과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 땅에서도 그 축복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또한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축복을 ‘구원을 받는다. 평안을 누린다. 정의와 공의의 삶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합니다.
이 땅의 희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목자들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문명과 가치관과 과학기술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참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 분을 희망으로 삼고 그 분을 모시고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축복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분을 떠나갈 때 우리는 인간의 것들이 주는 실패와 낙심과 좌절과 절망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참된 목자이시고 영원한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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