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주현절후 첫번째 주일설교-내가 택한 나의 종(사42:1-9)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18826.01.10 14:15댓글 3
내가 택한 나의 종
이사야42:1-9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6일이 주현절인데요, 주현절은 글자 그대로 주님께서 나타나신 절기를 말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셨고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에서 30년을 사셨습니다.
30년의 개인적인 삶은 누가가 기록한 12살 때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 외에는 나타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감추어진 시간이 지난 후 때가 되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드디어 메시아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출발을 복음서 기자들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례는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당연히 죄가 없으신 주님은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받으실 필요가 없는 세례를 받으시면서 메시아의 삶을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별 볼품없는 모습같이 보여 질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세례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을 보면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먼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임하게 됩니다. 주의 일을 감당할 능력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 아버지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내가 너의 생각과 뜻과 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정은 예수님에게 큰 확신과 자신감으로 출발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는 메시아 구세주의 첫 번째 발걸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2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와서 기약 없는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무슨 희망과 미래가 있었겠습니까?
어떤 희망도 미래도 찾아볼 수 없는 절망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때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고국으로의 귀환을 선포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시를 통하여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만,
하나님은 제2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절망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택한 종을 통하여 너희를 해방시키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놀랍게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메대와 바사를 통일한 고레스는 이전 국가들이 취했던 정책을 완전히 뒤바꿔버립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와 생활하고 있던 백성들을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는 직접적으로 고레스를 의미합니다.
고레스의 포로해방의 정책은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정말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은 이 본문이 고레스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메시아에 대한 이중적인 예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메시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구세주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 12장에서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이사야 42장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된 페르시아의 고레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예언된 메시아, 주의 종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먼저, 주의 종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입니다.
1절에서 메시아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던 적이 몇 번 있는데요,
주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눅3:22)
예수님이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자로 택함 받은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언급된 말씀이 그대로 주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택한 사람입니다.
고레스도 그랬고 메시아 예수님도 그랬고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주님께서 택하지 않고는 주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택하셨기에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고 주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귀하고 축복된 일은 없습니다.
미국의 윌리엄 올컷 커싱 목사는 유명한 설교자였지만 갑자기 성대에 이상이 생겨 설교를 할 수 없었고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커싱 목사는 설교가 아닌 다른 것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 다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병든 몸으로나마 아버지께 충성하고자 하오니 당신을 위하여 할 일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던 중에 시편 55편 6절과 이사야 40장 31절을 토대로 419장 ‘주 날개 밑’이란 찬송을 작사하게 되었습니다.
커싱은 이 찬송을 통해 주 날개 밑에는 참된 평화와 영원한 안식이 있으므로 영원히 거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 커싱은 가만히 앉아서 작은 목소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수많은 찬송가와 성가를 작시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예수께서 오실 때에’(564장), ‘기쁜 일이 있어 천국 종 치네’(509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545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419장) 가 실려 있습니다.
비록 성대에 이상이 있어 강단을 떠났지만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졌을 때 그는 다른 분야에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고 택하신 사람을 통하여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인간을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능력 있게 일을 하시는 분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위해서 고레스가 쓰임 받았듯이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완성하신 그 구원의 방법을 통하여 모든 인류가 구원받도록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줄 믿으시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주의 종은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6절 하 반절에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종들을 붙잡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위하여 종들을 세우셨는데 그냥 모른 체 방치하시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셨기에 여호와께서 붙잡아 주시고 보호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두 번째 방식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서도 택한 자들에게 나의 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었습니다.(요3:34)
말씀뿐 아니라 각종 기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능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 받았을 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하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절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를 보내시고 나에게 일을 맡기신 분이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신다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첫 번째 한 것은 애굽의 왕자로서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한창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힘으로 제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발각되고 애굽 왕의 노여움을 받았을 때 그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부르십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지팡이를 주십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지팡이요 능력의 지팡이요 함께 하심의 상징이였습니다.
모세는 아무런 힘도 없고 능력도 없었지만 여호와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은 주님의 능력으로 일을 해야 하고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일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주의 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7절 말씀에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당시에 고레스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레스는 칙령을 발표하여 포로로 잡혀와 노예로서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자에게 자유를 선포합니다.
모든 포로에게 해방을 주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고레스의 정책은 정치적인 계산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예언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씀은 또한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번은 주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 예배를 드릴 때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읽으신 후에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눅4:21)
자신을 통하여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응하게 되었다는 말씀은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 구세주라고 스스로 밝힌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주님을 통하여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적이고 영적인 어둠에서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까?
인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주님을 통하여 얼마나 억압에서 해방 받고 자유롭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종으로 쓰임 받고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게 되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는 주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세례요한은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구세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세장 죄를 지고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현절 첫 번째 주일에 우리는 메시아 구세주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그 분이 하나님이 택하신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 분이 결국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보고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시선이 다른 것에 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구원자이시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오직 우리의 대속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주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 주님이 구원을 주고 영생을 주고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202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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