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요 = 누가복음9;46-48(260201)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3426.01.29 09:52댓글
PW : 믿음 BIW : 전도자가 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학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손톱에게 힘든 일 시키지 않고 그냥 빈둥빈둥 놀게 하면 됩니다.”
선생님은 “아닙니다.”
다른 학생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루 한 번 매니큐어로 관리하며 왕비처럼 모시면 됩니다.”
이에 선생님은 “아닙니다. 역시 틀렸습니다.”
학생들이 만족스런 답을 내놓지 못하자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손톱을 갖고 싶으면 손톱에게 일을 시켜야 합니다.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면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설거지를 해도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손 빨래를 해도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남의 손을 씻겨주면 내 손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손톱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될까요?
남을 위해서 내 마음을 쓰면 내가 깨끗해집니다.
남을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내 마음은 저절로 부유해집니다.
남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다 보면 우리들은 저절로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손톱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령님께서 감동시켜 주시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의 마음으로, 격려의 마음으로, 아껴줌의 마음으로 채워지도록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2024년12월3일에 윤석열대통령께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2월 4일에 계엄을 해제하고, 12월14일에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대행이 되었지만, 역시 국회에서 12월27일에 국무총리 탄핵이 가결되면서 최상목기획재정부 장관이 대대행이 된다.
국회에서는 최상목 기획재정부장관까지 탄핵해야 한다고 하면서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는데, 장관들의 서열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각 부처 장관이고, 국무의원이면 다 동등한 줄 알았는데, 정부 각 부처가 서열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조직법에서 국무위원 서열을 알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정부조직법에 의한 서열은 평상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국가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위기의 국가를 통치하고 이끌어가야 할 중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정해진 제도이다.
1. 기획재정부
2. 교육부
3. 과학기술정보통신부
4. 외교부
5. 통일부
6. 법무부
7. 국방부
8. 행정안전부
9. 국가보훈부
10. 문화체육관광부
11. 농림축산식품부
12. 산업통상자원부
13. 보건복지부
14. 환경부
15. 고용노동부
16. 여성가족부
17. 국토교통부
18. 해양수산부
19. 중소벤처기업부
이런 순위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어떤 모임이나 기관이나 단체든 사람들의 모임에는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 등등 자연스럽게 서열이 매겨진다.
그러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서열이 매겨지는 것일까?
예수님을 필부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으로 일컬어지는 제자 3인방과 다른 9명의 제자들 간에는 어떤 서열이 정해져 있었을까?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 중에서 3인방을 데리고 따로 기도하러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에 다른 제자들은 기분 나쁘고 속상하지는 않았을까?
다른 제자들은 “우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야 뭐야?” 하는 생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지는 않았을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열이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12명 모두가 서열없이 평등하다고 느꼈을까?
신앙인의 모임에는 어떨까?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누가 신학대학원 선배인가? 몇 회 출신인가? 누가 먼저 안수받았는가? 누가 먼저 노회에 들어왔는가? 누가 나이가 더 많으냐? 하는 것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진다.
우리 교회가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대전노회에서도 노회장이 병석으로 수술하고 입원하면서 부노회장이 노회장 직위를 대행해야 하는데, 부노회장마저 공석이 생기면서 장로부회장이 노회장의 직위를 대행하기도 하고, 노회 서기가 대행하기도 했던 전례가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모임에는 서열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이슈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D4.
① 쟁론하는 제자들을 안타까이 바라보시는 예수님.
성경의 배경이 되는 중동지역은 모든 것들이 평등하다. 균등하다. 차별하지 않는다 라는 정서와 문화로 살아가는 지역이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에게 평등하고 균등하고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기업을 분배해 주면서 평등하신 하나님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탐욕, 욕망을 가진 죄인들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46-47에서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제자라는 그룹을 형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열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미리 서열을 정해주셨더라면 제자들이 서열 문제 때문에 설왕설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예수님께서 서열을 정해주지 않았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제일 앞서고 누가 뒤에 있냐? 누가 크고 높으냐? 누가 중간이고 누가 낮으냐?”라는 언쟁들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 서열에 따라서 장차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되면 서열의 공적을 따라서 이스라엘 나라의 주요 공직에 등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서열의 높고 낮음, 크고 작음, 앞자리에 있고 뒷자리에 있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워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 천국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것은 전혀 관심도 없고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제자들은 하늘의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은 이 땅에서 누릴 영광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구나 곁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 속으로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가장 앞서고 싶어하고 1등이 되고 싶어하고,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리다툼을 하고 서열 싸움을 하는 것이다.
1인자가 되고 싶어한다.
2인자나 3인자나 이름없는 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낮아지려고 하는 사람이 우대받고 칭찬받고 높임을 받는 것이다.
마가복음9;35에서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도리어 먼저 낮아지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낮아지고 섬기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면 크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크고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면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올라갈 것인데, 자신이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크고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셔서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에 모든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데, 제자들이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성공과 안위만을 꿈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워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우리들 자신이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우리들은 어떤 심경일까?
난감하지 않을까?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느냐고 혼내주고 싶은 마음일까?
예수님의 마음은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딱하기만 하다.
제자들의 앞날에는 틀림없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텐데... 그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하려나?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저 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
저 녀석들이 언제쯤이면 정신을 차리고 철이 들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도 살아내기 힘든 세상인데....
예수님은 여전히 세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것이다.
② 어린아이를 세우시는 예수님.
47에서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설왕설래하면서 누가 1등인가? 누가 2등인가? 누가 꼴찌인가? 하면서 자신들끼리 서열 다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면서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린아이 하나를 골라서 자신의 곁에 세운다.
마태복음18:2에서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기록한다.
마가복음9:36에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안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어린아이를 자신들 가운데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린아이를 자신 곁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헬라어원문직역성경에서는 예수님 앞에 어린아이를 세웠다고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자신의 곁에 세우기도 하고, 자신의 앞에 세우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③ 비밀의 전달자 어린아이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린아이 하나를 선택하여 불러서 자신의 앞에 세우기고 하고, 곁에 세우기도 하고, 안아주시기도 하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보편적으로 누가 높으냐? 누가 크냐?라고 서열 싸움하는 제자들에게 순진하고 순수하게 겸손과 섬김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어린아이를 선택하여 세워주셨다고 설명하시는 분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과연 어린아이는 항상 순진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고 섬기는 존재일까?
혹자들은 어린아이는 너무나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가르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스폰지처럼 속속 빨아들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우시는 것은 어린아이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로 속속 빨아들이고 순수하고 순진하게 순종하며 섬기라고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아이들을 안아주시기도 하고 세워주시기도 했다고 말한다.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순진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은 죄가 없는 정말 깨끗하고 정결하고 순수하고 순진한 존재일까?
아기를 낳아서 키워본 부모는 갓난아이가 얼마나 영악한지를 너무나 잘 안다.
갓난아기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을 잘 관찰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 짓을 하는지 모른다.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어린아이들이 영악하다.
단지 내 아이요 자녀이기 때문에 내 아기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귀엽고 예쁘고 멋져 보일 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관찰해 보면 아이들이 하는 행위들 자체가 죄악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 죄인인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아담 이후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일 뿐이다.
결코 어린아이들이 순결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고, 정결하지도 않다.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입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죄인임에 틀림없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워서 제자들에게 겸손하고 섬김과 헌신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면 어린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도 있었다.
정말 낮고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자신을 감추기에 바쁜 사람들, 불구자들이나 장애자들을 세워서 겸손하라고, 섬기라고, 온전히 헌신하여 섬기라고 가르쳐 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인이나 노예나 종이나 여인이나 나그네를 세워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겸손하게 살고 있느냐? 이런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세우지 않고 어린아이를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도 있었는데, 왜 어린아이를 세우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움으로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일까?
우리 한민족이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정서와 중동지역 사람들이 어린아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정서에는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중동지역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정서에는 어린아이들이란 가정 비밀의 전달자, 비밀의 누설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씨족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여 살아가던 고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이들을 통해서 상대방의 비밀을 캐내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으로 몰려다니면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그날 있었던 일들을 부모와 가족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부모는 그 집의 은밀한 비밀을 캐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밀을 알게 된 부모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이들에게서 얻은 비밀을 밝히면서 그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는 것이다.
명예와 수치라는 두 가지 개념 속에 살아가는 중동지역 사람들은 상대방에게서 수치스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항목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중동지역의 사람들은 비밀의 전달자, 상대방의 비밀의 누설자로 아이들을 사용하면서 비밀을 캐낼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④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예수님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이 있는 곳에 어린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 아이들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낱낱이 자기 가족들에게 알려주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행동들, 제자들이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저절로 예수님이 가진 비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자기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자기 가족들에게 전하면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전도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전도의 모델로 삼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48절에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영접하게 되면 어린아이들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들을 수 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전도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전도자로 세우시고, 전도자들에게 축복하시는 것이고, 전도자들에게 축복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과 천국이 저절로 확장되어져 가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제자들이 누가 높고 낮으냐? 누가 크고 작으냐? 하면서 서열 다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서열 다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함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증거되고 복음이 증거되는데, 제자라는 사람들이 서열 다툼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라고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세상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여 주요 요직에 앉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왕국의 회복을 위하여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도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병을 고치는 권세와 능력을 주시지 않았더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세상의 나라를 회복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세상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제자로,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⑤ 하늘의 크신 상을 예비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는 제자들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예비해 주시고 면류관의 상급을 씌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제자들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때,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로 세워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어지는 상급은 전도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도자의 삶이 매우 중요한 위치, 가장 앞서가는 위치, 가장 높고 큰 위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12-14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디모데후서4:7-8에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전도자의 삶을 산 전도자들에게 하늘에서 큰 상과 면류관으로 에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세상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의 성공을 위한 길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는 길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핫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교회의 법을 찾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의 성공은 삼위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보람과 긍지가 있다면 누가 뭐래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구원자라는 사실이다.
제자들의 사명인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이 확장되어져 나가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무리들에게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고 작으냐 누가 높고 낮으냐 하는 서열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와 왕국이 주변으로 주변으로 주변으로 계속 전파되어 가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분명한 사명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께서 왜 자신들을 제자로, 사도로 불러주셨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은 지금 가장 핫한 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고 건국되면 주요 요직에 앉을 수 있다는 세상의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리다툼, 서열 다툼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능력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제자로 불러주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생활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세상에 낮은 사람들을 불러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기 위하여 불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탁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잘난 사람들, 금수저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잘난 사람들, 금수저와 같은 사람을 제자로 불러서 세상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 예루살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을 것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이야말로 금수저 출신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셨기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 흙수저 출신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이들, 흙수저 출신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위대한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하기 위하여 부르시고 감동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고백하게 만들어 주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26-29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흙수저 출신들을 찾아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출신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어떤 세상적인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②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끼는 대로 전하기만 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일깨워 주시기 위하여 어린아이들의 특성을 사용하신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고 느낀 그대로 전하면서 어른들에게 비밀의 전달자가 되고 비밀의 누설자가 된 것처럼 제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고 느낀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고 느낀 대로 부모와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비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은 그저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이야기하면서 전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랬는데 아이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전해주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정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어서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에게서 들었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본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느낀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가시고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되도록 역사해 가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무언가 특별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도자들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특별한 일은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특별한 사역은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행해나가실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전도자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까지 먼저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빼앗는 격이 되는 것이고, 월권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전도자가 할 일은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한 사상이나 견해를 집어넣어서 전한다면 이미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라도 더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저주가 더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라도 뺀다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서 뺄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22:18-19에서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에는 더욱더 냉정하게 오직 예수님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종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길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인격으로 만나고, 죄사함의 은혜를 입고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전하면서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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