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마5:1-12)

열려라 에바다 2026. 2. 4. 13:06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 마태5:1-12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24426.01.31 11:55댓글 10

 

오늘 말씀은 팔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팔복은 예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제일 첫 번째 말씀인데요,

팔복을 제일 먼저 하신 것을 보면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계셨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된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셔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이 팔복의 말씀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된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 말씀을 따라 살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저는, 이 말씀을 진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살아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이런 것인데 예수님은 그것을 복이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별로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복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팔복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이고 보이는 복을 원하는데 주님은 정신적이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복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복보다는 보이는 복을 따라 살려다보니 이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한 그 결과가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팔복과 거리가 먼 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냐? 하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우리가 바라는 복은 오복이라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오복은 유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의 복. 곧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와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오래 살고 부를 누리고 평안하고 귀를 누리고 자손이 중다한 삶을 산다고 그 사람이 행복하냐?

여기에 예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잘 살고 부를 누리고 수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요즘은 90을 넘어야 살만큼 살았다는 말을 듣지 80대를 살아도 조금 아쉽다는 말을 합니다. 그만큼 오래 삽니다.

우리가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왕들이 이런 음식을 먹었을까? 오늘 우리는 예전의 왕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 증거로 자살이 많고 우울증이 많고 각종 정신병이 많습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행복지수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을 추구하고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누리며 살아가는데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복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진짜 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가짜 복을 진짜 복같이 생각하며 그것을 추구하면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제 솔직하게 세상적인 복을 버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가장 잘 살아가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복 있는 자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큰 불행이 무엇이겠습니까?

축복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았는데도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축복은 받았는데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건강축복을 받았는데도 얼굴에 웃음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도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축복을 받지 않았으면 원망이나 할텐데 받았으면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불행한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참된 복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거짓 복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복에 속으며 속은 인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서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살든 조금 못살든 건강하게 살든 조금 약한 자로 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참된 복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짜 복, 팔복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1. 먼저, 팔복의 삶에 더욱 힘쓰고 애쓰며 살아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주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내가 말하는 팔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행복을 누리기 위해 심령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애통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온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이 청결한 삶을 살아야 하고,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힘들 수 있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시를 받는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애쓰고 힘써서 이런 삶을 살아가십니까?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런 주님의 팔복을 외면하고 자꾸만 다른 세상적인 복에 관심을 갖고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보이는 복, 손에 잡히는 복을 추구하고 그것을 쌓아두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고 힘을 다하여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 되는 팔복의 삶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애써서 추구하지 않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팔복 중에 세 번째 복이 온유한 자의 복입니다만 온유한 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습니까?

온유한 자의 삶이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이기고 상대를 이기고 승리하기 위하여 어떻게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모습으로 살지 않습니까?

그렇게 상대를 넘어트려야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오히려 거짓을 쓰고 술수를 쓰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고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복된 삶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보이고 만져지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복, 물질적인 복을 통해서는 누릴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넘어트리고 이기고 물리쳐야 누릴 수 있는 복은 참된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 말씀을 따라 온유하고 정직하고 깨끗한 영적이고 정신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이 참된 행복이 됩니다.

이런 팔복의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믿으시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데 더욱 힘쓰고 애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팔복의 삶을 진정한 복으로 믿고 이 복을 추구할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팔복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팔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지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의 내용을 보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자세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와 여섯째 복에서는 직접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애통한다든지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고 화평한 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잘 지키고 어떤 외부의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런 삶의 자세가 쉽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런 성품과 이런 마음을 갖지 않고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는 마음을 갖고서는 팔복의 삶을 살아갈 수 없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라”(26:3)고 말씀하셨고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팔복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평강하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팔복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다든지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든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주눅 들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외부의 상황에 흔들릴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을 물리치고 어떤 형편에서도 내 마음을 견고히 지킬 때 팔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해서 누구 때문에 어떤 환경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상처 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우리는 상처받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면 그를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사람은 수면과 식욕, 혈압, 건강, 행복을 좌우할 모든 힘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분노심이란 독약은 자신이 마셔놓고 적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를 지켜야 합니다.

내 마음을 지켜야 하고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해서 주님의 성품으로 닮아가야 합니다.

행복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품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3. 팔복의 삶은 영원한 복으로 남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이 있고 마지막에 승리하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에서도 분명하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이 우선입니다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행복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 속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여덟 번째 복인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복이 있는데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복, 참된 행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이어지는 행복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서의 행복이 있을 때 참된 행복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상에서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행복한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자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저 세상의 행복을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이름 없는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 삶으로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 죽은 후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불행 속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의 고통 속에 빠져서 한 모금의 물을 구걸해야 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이 부자가 세상에서 부유하게 살았다고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겉으로 볼 때, 일반 사람들의 인식으로 볼 때는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개들을 친구삼아 살았기 때문에 불행했다고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천국의 행복 속에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행하게 보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우리가 팔복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더욱 힘쓰고 애써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런 삶에 정말 힘쓰고 애써야 할 이유가 영원한 나라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만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순간적 매력도 아니고, ‘상황적 필요도 아닙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부귀영화가 복이지만 주님의 복은 영원한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복된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상 받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상은 이 세상에서의 어떤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복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주신 팔복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이 세상에서도 참된 행복을 누리고 저 세상의 행복까지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