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고린도교회 4파에 대한 바른 이해.

열려라 에바다 2026. 2. 7. 19:20

고린도교회 4파에 대한 바른 이해.

선한양치기추천 0조회 926.02.07 16:08댓글 0

 

고린도교회 4파에 대한 바른 이해.

 

오늘은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가 왜 네 파로 나뉘게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며, 그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분열의 시작은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열은 겉으로 보면 지도자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를 자랑하고자 하는 교만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에베소로 떠난 뒤,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 밝고, 말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논리적으로 증거하며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에게는 한 가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구원 이후의 삶, 성도의 성숙에 대한 가르침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부족함을 자신의 지식과 언변으로 채우려 했고, 외국인이 고린도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외국 방언으로 설교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울 같이 사람들에게 업신 여김을 받고, 멸시를 받는 것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많이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비천한 자리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성숙하지 못했기에 그런 자리에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후 11: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바울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비천한 자리에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알아주시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을 가져왔고, 그래서 방언으로 설교하고 방언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예배를 드려도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기도를 들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안에서 방언을 하려거든 통역자를 세우라고 한 것입니다.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사랑보다 자랑이 앞선 교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모습을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지적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가 있어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있을 때 교회는 무너지고 맙니다.

 

 

둘째로, 고린도교회의 네 파의 의미

 

이런 배경 속에서 고린도교회 안에는 네 개의 파가 생겼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나는 베드로에게 속하였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각각 자신이 들은 복음을 따르고, 자신이 따르는 사람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바울파는 바울에게 들은 복음을 자랑하였습니다. 베드로파는 베드로의 가르침을 내세웠습니다. 아볼로파는 학식과 언변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파 마저도 겸손함이 아닌 자기 의로움으로 “나는 그리스도에게만 속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한 “리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복음보다 사람을 높이고, 은혜보다 자랑을 앞세운 교만의 문제였습니다.

 

아볼로의 작은 자랑의 불씨가 교회 전체를 혼란의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결국 아볼로는 바울이 있는 에베소로 피신하게 되었고, 그가 떠난 뒤에도 아볼로를 따르던 사람들은 교회를 계속 흔들었습니다.

 

작은 악한 세력이 많은 선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습, 그것이 당시 고린도교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현대교회 속에서 이러한 모습을 많이 겪어 보았습니다.

 

 

세째로, 교회의 회복의 길은 무엇인가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바울의 눈물 어린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는 다시 복음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잘못은 곧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나의 생각”, “나의 경험”, “나의 공로”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오직 주님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일 때, 교회는 하나 되고 복음의 능력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바울에게도, 베드로에게도, 아볼로에게도 속한 자가 아닙니다.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그 고백 속에서, 복음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회복의 역사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최성인목사 성경신학 원문보기 글쓴이: 바울처럼 최성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