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성도(사58:6-12)
권호만barnabak추천 1조회 15126.02.06 19:11댓글 6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성도
이사야 58:6-12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고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 그 분은 미소를 지으신다고 하면서
민수기 6장 25절을 ‘하나님이 너희를 향해 미소 짓기를 원하노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를 ‘미소 짓기를 원하노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짓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미소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미소를 지으시고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을 것 같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➀벳세다 광야에서 주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날이 저물고 장정만 오 천 명이 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가 들어있는 자기의 도시락을 주님에게 드립니다.
자기도 많이 배고팠을 것이고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배고픔을 참기도 더 어려웠을 것인데 아껴두었던 소중한 도시락을 먹지 않고 주님께 드리는 그 모습을 보시고 주님은, 하나님은 얼마나 흐뭇한 미소를 띠셨을까요?
➁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의 지혜를 달라는 솔로몬의 기도를 보시고 하나님은 또 얼마나 기뻐하시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을까요?
우리는 릭 워렌 목사의 말대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이 미소 짓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소 지을 때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모습보다는 하나님을 안타깝게 하고 화나게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상황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국가를 재건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바라던 복지국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느헤미야서에서 엿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세금도 내지 못하고 부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고 빚을 갚지 못하면 포도원과 집과 심지어 자녀들을 빼앗아갔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백성들은 삶의 회복을 위하여 지금까지 해 오던 금식을 계속하면서, 마음을 괴롭게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고 어려움이 계속되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1-5절)
그리고 올바른 삶을 가르치십니다.(6-7절)
잘못을 깨닫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내가 이런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8절-12절)
여러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려움은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1. 첫째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부터 시작된 금식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스가랴 7장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 바벨론 포로생활 속에서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애통하고 금식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온 이 현실을 회개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던 것이지요.
이 금식기도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금식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금식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또한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을 때’(요나 3:5) 여호와께서는 니느웨를 용서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였을 때’(대하 20:3) 하나님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연합군을 물리쳐주십니다.
에스라 8:23에서는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답하심을 입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약속 있는 금식기도를 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축복받고 응답받을 일입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들의 금식은 형식적인 기도에 불과하였습니다.
3절에서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킨다.’고 하셨고 4절에서는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으로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가롯 유다가 친근한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으로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건은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겉모양만의 경건이 되었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생활을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십니다. 이런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2. 둘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 형식적인 금식을 지적하신 주님은 6절 말씀에서 올바른 금식을 가르치십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을 바꿔 말하면 이런 일을 지금까지 하지 않고 오히려 금식한다고 하면서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결박하고 멍에를 무겁게 하였고 압제하면서 각종 멍에를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들은 금식하니까 경건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큰 착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가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벗어나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열심을 품어도 주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고 화나게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위대한 신앙인들도 이런 모습을 보였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했던 일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살려주는 일입니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같이 생각되었고 그러면 사울 왕에게 쫓기는 삶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손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 하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다윗은 온갖 유혹을 물리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얼마나 흐뭇하셨겠습니까? 얼마나 기쁜 미소를 지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의 용기에 또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러나 말씀을 어기고 은혜를 잊어버리고 간음하고 살인하는 다윗의 모습에 하나님은 얼마나 화가 나시고 분노하셨습니까?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열심을 내는 것도 좋고 충성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삶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3. 셋째는, 이웃을 미소 짓게 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10절에서는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말씀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과는 거꾸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올바른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웃을 미소 짓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시내버스를 탄 한 손님이 잔돈 10원 때문에 기사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한참 싸우던 손님이 화를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합니다. ‘평생 기사나 해 쳐 먹고 살아라,’
그러자 기사도 지지 않고 소리칩니다. ‘평생 버스나 타고 다녀라.’
기사와 손님은 서로의 얼굴에 화를 북돋았습니다. 분노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웃을 피눈물 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괴롭게 하지 말고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고 위로해주고 도움을 주어서 이웃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동일시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 내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반대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웃을 괴롭게 하고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한 것은 곧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즐겁게 하고 위로해주고 기쁨을 주고 안식을 준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위로해주고 행복을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미소 짓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있겠습니까?
4. 이렇게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가운데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➀. 첫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8절 말씀을 보면,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면 영과 육에 보호하심을 받고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자녀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➁. 둘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9절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기도하고 간구할 때 마다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되고 문제가 해결받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➂.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11절에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우리의 삶은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삶입니다.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➃. 네 번째는, 물댄 동산같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11절 하 반절에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요”
저는 이 말씀이 앞에서 말한 모든 축복의 결론같이 생각됩니다.
이 말이 물이 풍부한 우리에게는 현실감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물이 없고 부족한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물댄 동산의 축복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삶이 물댄 동산같이 되면 다윗이 말한바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물댄 동산같이 되면 늘 행복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가정이 물댄 동산이 되면 가정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교회가 물댄 동산같이 되면 교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물댄 동산같이 되면 이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물댄 동산의 축복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자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자서전에는 네 살 정도 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조지아 주의 시골에 살았던 어느 날 아빠와 함께 트럭을 타고 가족이 운영하는 땅콩 농장에 갔다고 합니다.
아빠가 창고에서 농기구를 꺼내서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열쇠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당황해 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아빠에게 아들 지미는 ‘아빠, 잠깐만요.’ 하더니 얼른 창고 구석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보았던 아빠의 환한 미소, 지미 카터는 그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지내고 노벨상까지 받은 사람에게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 일이 많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이 자기 때문에 아빠가 환하게 미소 짓던 그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인생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기쁨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나를 보시며 미소 짓게 하는 그 기쁨이 가장 행복하고 기쁜 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주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삶이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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