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은 신앙인처럼도 살아봐요 = 누가복음9;49-50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6226.02.05 10:24댓글 0
PW : 믿음 BIW : 전도자가 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드러내지 않더라도 주님만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페트(PET)병이거든.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모였느냐?
어린 새끼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이 새들을 데려다가 병에 넣어 길렀는데, 이 새들이 자라서 병 아가리로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놔두면 새가 더 커져서 죽게 될 것이고, 병도 깰 수 없게 된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대답해 봐라.”
그러나 영구가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새들을 죽이든지 병을 깨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누가 그런 뻔한 소리를 듣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줄 아냐” 하며 역정을 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철이가 자신 있게 손을 들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새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상상의 세계로 날아갔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제 정신이 아니구먼.”
그러자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답이 있기나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선생님은,
“암 있지. 그럼. 있고 말구.”라고 의시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위로 자르면 된다. 페트(PET)병이거든.”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병이라고 말하면 의례히 유리병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병에는 유리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병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몰두하게 되면 다른 것들을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아주 쉬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서 끙끙거립니다.
생각을 약간만 바꾸면 이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생각의 테두리를 조금만 바꾸어 봐요.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해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조금만 이동하면 전혀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믿음으로 섬기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지구촌의 역사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 억 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촌의 역사는 창세기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사람 곧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주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 중에서 에덴동산을 세워주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사람에게 그 에덴동산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한 그 때부터 지구촌의 역사는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촌의 역사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 억 년이 아니라 6500여년 된다.
6500년 동안의 이야기를 역사, 히스토리(history)라고 부르는 것이다.
6500년 동안의 역사(歷史)에 이름이 기록되어 길이길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불과 몇 명 되지 않는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5000년 역사라고 말하는데, 단군 왕검이 BC 2333년10월3일에 조선을 건국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그래서 2333 + 2026 하면 4359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4359년이 된다는 의미이다.
4300 여 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우리 한민족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던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역사에 기록한 사람들은 그 시대 시대마다 아주 약간씩 기록되어서 그들의 행적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지구촌에 안 왔다 간 것이 아니다.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그들은 지구촌에, 한반도에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왔다 간 조상들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는 뭇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넘쳐 나는 후손들을 주시겠다고 연약하셨는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촌에 왔다 간 무리들은 그야말로 하늘의 뭇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왔다 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성경이나 역사서에 기록한 인물들은 불과 몇 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성경이나 역사서에 기록된 몇 천 명만 지구촌에 왔다 간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억지 주장일 뿐이다.
21세기 현재 지구촌 인구가 80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2026년 현재 세계 총인구수는 82억7천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구가 저출산으로 인해서 감소하고 있지만, 세계 총인구수는 꾸준하게 증거하고 있는 현실이다.
82억7천만 명 중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한 이들도 몇 십억 명은 될 것이다.
수없는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서 충성하고 헌신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던가?
교회 역사에 이름이 기록된 분은 불과 몇 백 명, 더 나아가 몇 천 명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고, 업적도 없이 사라져 간 것이다.
이름도 빛도 업적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하나님의 생명책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기록되어 있고, 영원한 천국에서 다 함께 영생하도록 살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들어주신 아담과 하와 이래로 지구촌으로 찾아왔던 모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아담과 하와도, 아벨도, 셋도, 에녹도, 노아도, 셈도, 데라도, 아브라함과 사라도, 욥도, 이삭과 리브가도, 야곱도, 레아도, 라헬도, 빌하와 실바도, 요셉과 아스낫도, 아므람과 요게벳도, 모세와 십보라도, 아론과 엘리세바도, 여호수아와 갈렙도, 한나와 사무엘도, 보아스와 룻도, 다윗과 밧세바도 엘리야, 엘리사, 여호사밧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인들이 모두가 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 함께 살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감격이지 않나.
구원의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차후에 천국에 가면 그 분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업 되지 않나.
저는 천국에서 이분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천국으로 가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천국으로 가고 싶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불러주셔야만 갈 수 있는 길이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묵묵히 그분들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다간 이들은 없었을까?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신앙생활하는 이들은 없을까?
D4.
49절에서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9:38에서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던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습을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지켜보게 된다.
제자들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했나 보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왠일인지 제자들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왜 제자들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니까, 요한은 그 사람에게 “앞으로 우리의 랍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경고했던 모양이다.
그러면 왜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금지시키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안 계신데도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들만 기득권을 가지고 행세하려고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들도 잘 못하는 일들을 이들이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껴서 그랬을까?
이들은 왜 금지시키면서 예수님께 가서 일러바치기까지 하는 것일까?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장본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그런 거, 앞으로 하지 말아요.”라고 하면서 금지시킨다면 우리들은 어떤 느낌일까?
각자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 명확하게 제자들이 그 사람에게 금지시켰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자들로부터 좋지 않은 반응을 받은 그 사람의 감정을 쉽게 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요한에게서 이런 말을 전해 들으신 예수님께서 50절에서 “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행위를 금지시키지 않고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50절에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9:39-40에서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고치고 여러 종류의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능력이 행해지고 전해진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7:21-23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능력도 행하였지만, 이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6:40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이란 바로 하늘 아버지께서 메시야로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보내신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이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란 바로 하늘 아버지께서 구원주로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노릇도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빙지하여 귀신들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각종 능력도 행하는 무리들이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단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단죄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어떤 일이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인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단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불법을 행하는 악인들이라고 단죄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단들이 그렇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척, 오직 예수님만 전하는 척하지만, 진작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는 다.
이단들의 교주를 믿고 교황과 마리아를 믿는다.
그들은 성경을 교묘하게 바꿔서 교리를 만들고 그 교리를 믿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던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일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일까?
요한이 전해주는 말씀을 들은 예수님께서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보면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은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모르셨을까?
아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도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 그들의 행위, 그들이 살아가는 행적을 모르지 않고 다 알고 계시는 것이다.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 허락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지 못했을 뿐이지, 예수님을 구주로, 구세주로,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주로, 구세주로 당당하게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악인들이라고 단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그 수많은 무리들 중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구세주로, 메시야로 믿는 이들이 상당하게 많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지 12명만 제자로 부르셨을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메시야로,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12명의 제자를 넘어서 70명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성경에 보면 맛디아라는 사람도, 바나바라는 사람도 본래 예수님의 12제자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후에 장례를 집례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곳곳에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마가복음9:39-40에서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2제자는 드러난 제자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은 암묵적인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암묵적인 제자들, 드러나지 않은 제자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이름은 더욱더 퍼져 나갔을 것이다.
암묵적인 제자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소문은 더욱더 널리 퍼져 나가고 주님의 능력이 행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열왕기상18장에 보면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통치속에서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넘쳐나는 순간에도 지극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오바댜와 같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바다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100명의 선지자를 50명씩 50명씩 동굴에 숨겨서 봉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19장에서는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7000명의 선지자를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치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바알 신에게 입 맞추지 않은 7000명의 선지자들과 같은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신앙인들은 어떨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어떨까?
이름도 빛도 흔적도 없이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는 이들은 없을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얼마든지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회는 바로 그런 분들이 마음껏 주님을 높이고 주님만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신앙생활하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부르심을 입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L4 & B4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메시야로, 구원자로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앙인이라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변에서 아무도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아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하늘 아버지께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상급으로 채워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교회는 한 영혼이라도 자신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온전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디.
인간의 몸은 신생아로 태어날 때 270개의 뼈를 가지고 태어났다가 점차 통폐합하면서 성인이 되면 206개의 뼈로 구성된다고 한다.
206개의 뼈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야 온전한 몸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흔적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온전한 교회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206개의 뼈들 중에 어느 뼈 하나라도 무시하거나 예외시킬 수 없듯이, 한 영혼이라도 무시하거나 예외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인정해 주거나 칭찬해 주지 않아도 묵묵히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예배의 자리로, 섬김의 자리로, 봉사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오직 주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① 그래도 교회의 한 지체임을 확신해야 한다.
오장육부, 206개의 뼈 마디마디, 세포 하나하나, 피부 하나하나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어야 온전한 몸이 되듯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온전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지체임을 확신해야 한다.
거룩이란 말은 본래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이 있고,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코가 있고,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귀가 있어야 거룩한 것이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심장이 있고, 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위가 있고, 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간이 있어야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위가 없고 다른 곳에 위가 있다면, 대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장이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이 피조물의 자리에 있지 않고 창조주의 자리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바로 루시퍼,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죄악이다.
마귀,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창조주 하나님, 엘로힘(ELOHIM)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기본적인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파괴하려고 하는 행위들, 우상숭배, 동성애, 수간, 마약, 인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조장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을 파괴하는 행위들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을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로, 높고 높으신 하늘 위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엘로힘(ELOHIM)의 하나님의 자리로 올려드리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몇 년 전에 코로나사태가 발생하면서 교회가 스스로 영상예배라는 것을 도입하면서 교회들 마다 앞 다투어서 교회중심으로 드려지는 예배개념이 깨뜨리고 말았다.
가나안 교인들이 수없이 많이 발생하면서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가나안 교인이라는 말은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린다고 자기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저는 코로나 시절에도 영상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올바른 예배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선포하면서 고집스럽게 교회예배를 드려왔다.
몇 명 모이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주일예배를 드렸었다.
결국 가나안 교인을 만들어낸 것은 교회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드려야 할 예배를 깨뜨렸기 때문에 발생한 불행한 사건이다.
지금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기 스스로 가나안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자칭 신앙인이라고 한다.
가나안 교인들은 예배는 드릴지 몰라도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과 감사와 섬김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주님의 제자들처럼 교회의 주요 신앙인들의 그룹에 속하지는 못하더라도 교회의 일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요 멤버요 지체임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쳐 주신 신앙인임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예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각자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으로 인하여 온전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있음으로 인하여 주님의 온전한 교회가 세워진다는 자긍심, 자부심,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②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어쩌면 사람이란 존재는 지렁이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지렁이가 있어야 좋은 땅, 옥토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농사를 잘할 수 있다.
지렁이가 없으면 밭이 옥토가 될 수 없고 농사할 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나 동료들 앞에서나 가족들 앞에서나 다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격려와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예외되는 순간, 살아갈 수 없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푹 잠겨서 그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신앙인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흔적도 없이 신앙생활하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푹 잠길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축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처럼 끊임없이 격려하고 칭찬하고 위로해 주면 그들도 교회의 주요 직분자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
교회의 주요 직분자 세계로 들어와서 교회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을 깊이 신뢰해 주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들을 신뢰하고 믿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교주를 신봉하는 이단이 아닌 이상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맞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다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역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왕국의 백성이요 상속자요 성도요 신앙인이요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모두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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