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 (학 2:6-9)

열려라 에바다 2026. 2. 4. 13:21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 (학 2:6-9)

新 婦추천 0조회 5826.02.01 19:45댓글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1)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시간에 “만국의 보배이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의 보물 1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셨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떠나지 않는 것, 혹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하는 것 그것이 보배입니다. 돌아보면 사람들이 진짜 보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물질적 풍요에만 눈이 먼 이 시대를 일컬어 '영적인 공백'의 시대라고 진단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의 비극은 도덕적, 영적 진보 없이 기술적, 물질적 진보만 이루어졌을 때 시작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만회할 진리를 본문에서 봅니다. 본문에 재건될 스룹바벨 성전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해 초라하여 그시대를 알던 노인들이 통곡할 정도였으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학2:9). 그 이유는 만국의 보배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곳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국이고 우리가 성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초라하지만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면 우리도 보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보배일까요?

 

1. 예수 안에 우리의 구원과 거룩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1:30에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만 중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모릅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잔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노력해도 거룩할 수 없고 영혼의 만족이 없지만 예수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의 의로움과 그 분의 평강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누구보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의 처절한 영적 한계를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그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지만, 자신의 지체 속에서 죄의 법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보며 몸부림쳤습니다. 지식과 가문은 화려했으나 그 내면은 죄의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며 절규합니다. 이 고통과 방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내 힘으로 도달할 수 없던 의로움과 평강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심, 이것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부이자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고백록(Confessions)'에서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결코 안식이 없나이다. 주여, 당신을 아는 것이 곧 생명이요, 당신을 섬기는 것이 곧 자유이며, 당신을 찬양하는 것이 곧 영혼의 기쁨이나이다." 고백했습니다.

 

찰스 스펄전도 “인간은 죄라는 진흙에 빠져 그 가치를 상실했지만 보배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닦아내시고 다시 하나님의 보석으로 빛나게 하셨습니다.” 했습니다. 죄인 막달라 마리아가 거룩함을 입고, 거라사인의 광인이 군대 귀신에서 해방된 것도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이 보배이신 것은?

 

2. 예수 안에 평강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개 2:7에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했습니다.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전된 우리들이 더욱 큰 영광으로 찬란할 것을 시사한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19세기 찬송가 작가 파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 만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후 수천 곡의 찬송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겼지만 그녀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날마다 찬송하는 그에게 주님이 평강과 행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공간은 세상의 그 어떤 보화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보배로만 채워집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학자가 된 것도 1654년 11월 23일 그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얼마나 위대한지, 빌4:7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감정도 다 이기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배이신 것은?

 

3. 예수 안에 형통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빌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고, 본문 8절의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 신령한 것만 있는 것 아닙니다. 금도 있고 은도 있고 육신의 형통함도 능력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골1:19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예수 안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고후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도 예수님이 임하시면 강해집니다.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느끼지 못합니다. 은혜 받으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셨고, 신28:7에는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꿈꾸십니까? 무엇을 향해 달려 가십니까? 

 

1849년 캘리포니아 새터 밀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골드러시'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십만 명을 서부로 불러모았습니다. 이들을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몰려들었다 해서 '포티나이너스'(49ers)라 부르는데, 험난한 산맥과 질병, 원주민과의 갈등이라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서부로 서부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를 거둔 이는 소수였고 대다수는 빈손 거렁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골드였지 고드, 즉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보배이신 예수님께 생명을 거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보배이신 주님이 대진동으로 임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걸 더 가치있게 여길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던 경제를 흔드시고 나라를 흔드시고 건강을 흔드심으로 다가오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마음의 떨림으로 예수님을 나의 보물 1호로 삼고 그 안에서 영육 간의 온갖 아름다운 것을 영원히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