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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영혼들 복음으로 구원한 것이 가장 큰 보람”

열려라 에바다 2013. 3. 12. 19:16

 

“죽어가던 영혼들 복음으로 구원한 것이 가장 큰 보람”

 

 

성역 50주년 김홍도 금란교회 동사목사에 듣는다

<대담=이승한 종교국장>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를 이끌고 있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지난 3일로 성역 50주년을 맞았다. ‘애국주의자’ ‘교회제일주의자’ ‘반공주의자’란 평가와 함께 ‘극단적 보수주의자’란 두 가지 이미지로 평가받고 있는 김 목사는 1963년 경기도 가평 상천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목회에 입문했고, 1971년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던 망우동의 금란교회에 4대 담임으로 부임해 이 교회를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 지난 50년간 목회일념으로 헌신해 온 그를 10일 금란교회 목양실에서 만나 반세기 동안의 목회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50년 동안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구원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교계의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답게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신학의 창궐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역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반세기 동안 목회에 전념하셨는데, 목회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1963년 군복무를 마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조신일 목사님께 담임 교회를 부탁했더니, 조 목사님께서 가평의 상천교회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교회는 전깃불도 없고 기름종이 덮은 지붕이 썩어서 비가 줄줄 새는 곳이었죠. 그전에는 성령이 무엇인지도, 기도가 왜 중요한지도 몰랐다가 그곳에서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기도훈련을 쌓았습니다. 또 그때 아내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어요. 수요일 밤 예배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엎드려서 철야기도한 것이 결혼식의 전부였습니다. 호롱불 아래서 웨딩마치도 면사포도 없이 서로 입던 옷 입고 나와 식을 올렸지요. 목회자 사모로서 희생과 헌신을 단단히 각오하게 만들려고 그랬습니다. 특히 다이아몬드 반지는 나중에 혹시 잘 사는 날이 와도 안 해주겠다고 했지요. 예물 대신 교회에 종을 사다 달았습니다. 1967년 우리 결혼식 주례를 섰던 조신일 목사님이 서울로 오라고 해서 광희문교회에서 부목사로 4년간 훈련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1971년 3월 금란교회로 오게 됐지요. 그동안 수많은 사탄의 공격과 시험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다 승리하게 하셔서 오늘날 세계 최대 감리 교회로 부흥 성장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의 각오로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부흥했다고 해서 느슨해져서 육신이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항상 경계해 왔어요.”

-부임 당시 망우동은 공동묘지와 야산뿐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곳에서 목회할 것을 결심하셨습니까?

“금란교회를 시작한 고(故) 김활란 박사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어느 곳이든 보내준다면 하나님 뜻으로 알고 열심히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왔습니다. 당시 망우리는 생활고에 시달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을 상대하다보니 설교도 쉽게 해야 했습니다. 원서나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교를 할까 고민했어요. 사실 조용기 원로목사님이나 고(故) 한경직 목사님처럼 교회를 부흥시킨 분들은 설교를 쉽게 하시지요. 나도 그것이 몸에 뱄습니다. 쉬운 설교는 교회 부흥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나치게 유식한 얘기, 현학적인 얘기만 하면 그 안에 생명력이 없어 부흥이 안 됩니다.”

-당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목회자로서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나요?

“신학교 졸업반 때 지나가던 엿장수가 영어 설교집을 갖고 있기에 엿가락 몇 개 주는 값으로 그 책을 샀는데, 그 영어설교 책에서 복음을 깨달았어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는 레위기 17장11절 말씀이었습니다. 피는 생명 죄는 사망,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아! 구원은 예수 십자가의 피 흘림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구나. 책을 읽다가 춤을 췄어요. 그때 구원의 확신을 갖고 거듭난 것이지요. 그래서 나의 목회 철학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축복과 상급은 행함으로, 능력과 은사는 기도를 뜨겁게 함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통성기도 소리가 아주 큽니다. 이 통성기도 때문에 그동안 숱한 시련이 와도 부흥이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영혼구원입니다. 죽어가던 영혼이 와서 거듭나는 것.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세상 듣기 좋은 말만 해서 사람들이 참새 떼처럼 모여드는 것은 진짜 부흥이 아니에요. 참새 떼가 달아나듯 언젠가는 달아나고 말지요.”

-목회자는 뼈를 깎는 자기 헌신과 겸손, 절제가 있어야 성공한다고 합니다. 지난 50년간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교인들에게 마귀가 역사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인데 그것도 참고 기도하면 다 물러갑니다. 어떤 어려움도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는 법이에요. 다만 희생과 헌신 없이 교회가 부흥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죽어지내는 만큼 교회가 살고, 내 욕심 챙기면 교회는 죽습니다.”

-목사님의 형 김선도 목사는 광림교회, 동생 김국도 목사는 임마누엘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형제분들이 다 대형교회를 이루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도 2명(김선도, 김홍도)이나 배출해 교회사적으로 유명한 집안인데 그 신앙의 뿌리가 궁금합니다.

“130년 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던 초기에 조부모님이 생명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핍박 속에서 기적적으로 예수 믿고 목회까지 하셨어요. 그렇게 제사장 가문이 됐고 130년 동안 믿음과 영성, 제사장 직분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세계적 교회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믿음을 지켰고, 공산당 치하에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잠시 해주로 피신했다가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목사님은 반공주의, 보수주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좌파 측으로부터 ‘보수 꼴통’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남한보다 북한에 교회가 더 많았고, 내 고향 평북 선천은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교회가 다 파괴됐고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공산주의 북한이 잘 살고 있습니까? 거지중의 상거지죠. 만약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면 6만 교회 1200만 성도가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이 나라 공산화를 막으려는 겁니다. 이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 꼴통’보다 더 심한 말이 있으면 난 그걸 택하겠어요.”

-목사님과 형제분들 모두 담임목사직 대물림(세습)을 했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교인들이 원한 것이라고 해도 사회의 비난을 받는 대물림을 꼭 해야만 했는지요.

“‘세습’이란 말은 한 집안의 재산, 신분, 직업 등을 그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받는 일인데, 어디 교회용어에 맞기나 합니까? 그리고 성경을 보면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이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됩니다. 아버지가 목회를 잘 했다면 그 믿음과 영성을 아들이 이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전혀 모르는 목회자가 후임자로 들어오면 영적으로 배탈이 나서 교회에 말썽이 많아집니다. 지난해 기감에서 만든 세습 금지법을 ‘시기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후임자 자격을 다 갖췄는데 담임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회가 택하는 범위에 넣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고 역차별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요새 담임목사의 아들을 후임자로 세우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억지로 대물림하려다 분란만 일으키고 실패한 교회가 수 없이 많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와 봉사입니다. 섬김과 봉사의 사역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매년 주민들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역을 펼칩니다. 몇 년전 주민들을 위해서 교회 건너편 주차장 건물 1개 층(약100대 주차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토록 중랑구에 내놨습니다. 또 이번 성역 50주년을 맞아서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쌀 1000포대를 구청에 기증했습니다. 또 내가 반공주의자라서 북한 돕는 일을 전혀 안 할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전 수해를 입은 신의주 어린이들에게 빵 30만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유교사상이 뿌리 깊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은 참 놀라운 변혁입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반공과 국가 안보를 우선시하며 대통합의 정치를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끝으로 감리교회와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오래 전 감리교단에서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한 신학교수 2명을 목숨 걸고 싸워서 출교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를 파괴하는 사탄의 도구에요. 공산주의, 좌파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을 막는 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최근 주일예배 설교에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십계명 중 제1·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살인 간음 도적질보다 100배 더 미워하는 게 다른 신에게 절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야 하는데, 엉터리 교회가 많아요. 이단과 자유주의 신학을 막아내고, 순수 복음주의로 나가야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습니다.”

정리=천지우 기자

◇김홍도 목사=평북 선천 출신으로 감신대와 아세아연합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대표회장, 아세아연합 신학대학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로 성장시킨 후 2008년 4월 담임목사직을 은퇴하고 현재는 동사목사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