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광복 68주년 일본 복음화 전진기지 대마도 르포] “한·일 국경의 섬 대마도… 교회가 평화 교두보

열려라 에바다 2013. 8. 14. 21:39

광복 68주년 일본 복음화 전진기지 대마도 르포] “한·일 국경의 섬 대마도… 교회가 평화 교두보 된다”

 

 

한·일 두 나라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한국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대마도의 분위기가 올 들어 달라졌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탓이다. 이런 가운데 몇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힘겹게 한·일 간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대마도 히타카쓰항 국제여객터미널. 1시간 전 부산항을 출발한 오션플라워호가 400명 가까운 한국인 승객을 싣고 도착했다. 남쪽으로 80㎞ 떨어진 이즈하라항에도 부산발 코비호가 200여명의 승객을 내려놓았다. 인구 3만3000여명의 작은 섬 대마도가 한국인 관광객들로 떠들썩해졌다.

엔저에 힘입어 대마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모토이시 겐이치로 대마시청 관광물산추진본부장은 “올해 한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15만명에서 30%가량 늘어나 2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마도 경제에서 관광 관련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이고 관광객의 95%는 한국인이다. 이즈하라와 히타카쓰 거리에는 한글안내판이 즐비하고 한국인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문구도 흔하다. 일본의 우경화로 동북아의 긴장과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데 대마도만 예외일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마도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대마도는 1988년부터 진행해 오던 ‘쓰시마 아리랑 마쓰리’의 이름을 올해부터 ‘쓰시마 이즈하라항 마쓰리’로 바꿔버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400여명 규모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행사도 중지했다.

대마도 국제교류자문 다치바나 아쓰시(66)씨는 “한국절도범이 지난해 10월 대마도 사찰에서 불상을 훔쳐 반출한 뒤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난해 일왕 관련 발언과 일본의 우경화도 반한감정을 부추겼다.

대마도는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교류가 공존하는 이중적 한·일관계의 압축판이다. 닛케이경제신문이 이례적으로 ‘국경과 역사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대마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기사를 지난달부터 내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오래전부터 대마도의 이 같은 특수성에 주목해 왔다. 일본 복음화와 한·일 평화의 교두보로서 대마도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1990년대 후반부터 1∼2년에 한 차례씩 대마도에 단기선교팀을 보내왔다. 하지만 선교사를 정식으로 파송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대마도 선교의 문이 열릴 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0년 7월 박영철(54) 목사는 대전에서 목회를 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진해 쉬던 중 생각지도 못한 대마도 선교를 제안 받았다. 그해 9월 대마도를 방문한 박 목사는 대마도의 복음화율이 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면적은 거제도의 2배지만 교회는 103년 역사의 일본성공회 성요한교회와 33년 전 설립된 그리스도복음교회 둘밖에 없었다. 성도 수는 두 교회를 합쳐도 12∼13명에 불과했다. 성공회 사제는 후쿠오카에서 격주로 파송돼 대마도에 상주하는 목회자는 그리스도복음교회 다테이시 히로시(58) 목사뿐이었다.

다테이시 목사는 박 목사가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민들을 위한 무료 한국어 강좌를 요청했다. 그는 “기독교는 외래 종교라며 거리를 두는 주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친분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한국어 강좌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했는데 마침 박 목사가 찾아왔다”고 회고했다.

박 목사는 여러 차례 대마도를 오가며 선교를 준비하다 2011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전노회로부터 전도목사로 대마도 선교를 허락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대전노회 설립 60주년 기념 선교사로 정식 파송됐다, 한국 선교 100년사에 대마도 선교사는 박 목사가 처음이다.

이즈하라 인근의 신흥주거지 게치에 대마도선교센터를 마련하고 지난해 9월부터 한국어 교실을 열었다. 후원조직도 주후원교회도 없이 재정적 어려움 속에 출발했지만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대마도선교센터와 그리스도복음교회, 학교와 직장 등에서 진행한 한국어 교실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마도는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산업 비중이 높은 만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 온천에서는 직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더니 반색을 했다. 한국인 관광객과 소통하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 등 한류가 좋아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어 교실 덕분에 침체돼 있던 그리스도복음교회도 활력을 되찾았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어 교실에 다니던 일본인 여성 한 명이 모처럼 세례를 받았다. 한국어 강좌 등 문화사역을 통한 일본인 선교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한 셈이다. 대마도선교센터는 더 다양한 문화사역을 통해 일본선교의 길을 닦고 한·일 평화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처럼 복음의 통신사로 역할하려 한다. 그래서 선교보고서 제목도 ‘대마복음통신사’로 정했다.

박 목사는 지난해 말 ‘재일대한기독교회 선교100주년사’에서 귀한 사진을 한 장 찾았다. ‘이즈하라조선기독교회 1주년 기념, 1935년 6월 6일’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에는 50여명의 대마도 기독한인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광복 후 대마도 한인들이 대부분 귀국하면서 이 교회도 폐쇄된 것 같다”면서 “현재 한국인 60여명이 살고 1년에 20만명이 방문하는 대마도에 한인교회를 세우는 일도 첫 대마도 선교사로서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 여기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holytime5925.blog.me).

대마도=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