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땅 라말라 르포] 증오로 들끓는 聖地… 2014년에는 화해의 바람 불까
새해에는 ‘성지(聖地)’에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이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평화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올 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방문해 화해와 평화를 기원할 예정이다.
성탄전날인 24일(현지시간)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3살 여아가 숨졌고,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이스라엘 국방부 직원을 저격해 베두인족 출신의 22세 청년이 숨지는 등 갈등은 여전하다.
기자가 라말라를 찾은 지난달 11일, 팔레스타인의 중심지인 이곳은 100여년 만의 폭설 속에서도 활기차 보였다. 다운타운인 알마나라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눈싸움을 벌이며 오랜만에 쌓인 눈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의 명물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아랍식 커피점에서는 성탄 캐럴이 흘러나왔다. 식당에도 손님이 북적였다. 머리를 천으로 두른 할머니는 “눈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나이만 하메리(25)씨는 “오늘 가져온 생선을 몽땅 다 팔았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좌판을 거두고 있었다.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평화협상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으니 표정이 굳어졌다. 하메리씨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한통속”이라며 “솔직히 압바스(팔레스타인 정부 수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2개의 국가로 분리하자는 방안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시큰둥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차지하고 있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모두 자신들의 영토로 여기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대가 물러나야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들어와 생활하는 정착촌의 실태는 심각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만이 아니라 서안 지구 깊숙이까지 곳곳에 정착촌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 NHK의 예루살렘 지국 쓰지 고헤이 특파원은 “이스라엘 정착민이 불법이라는 것은 국제사회도 잘 알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정부나 유엔도 이들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곳곳에 기지를 설치한 데다 소중한 수자원까지 정착촌과 군대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베들레헴에서 라말라를 오가는 길은 분명히 팔레스타인 영토지만 곳곳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총을 들고 검문을 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인 사머 코칼리(44)씨는 “정착촌과 주민의 집을 구분하려면 옥상에 물탱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된다”며 “주민들은 가뭄에 대비해 두세개씩 물탱크를 마련해 두지만 수자원을 확보한 정착촌은 물탱크가 필요 없고 주변에 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곳곳에는 유머러스하게 이를 표현한 벽화가 눈에 띄었다. 한 주유소의 세차장 벽에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손에 들고 던지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군인이 나란히 경비를 서고 있는 곳에는 어린 소녀가 군인을 검색하는 벽화가 행인들에게 웃음을 줬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잇는 검문소의 장벽에는 가위로 벽을 잘라내는 ‘절취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고, 라말라 외곽에는 소녀가 풍선을 들고 장벽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 작품들은 영국의 유명한 예술가 뱅크시가 2005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찾아와 남몰래 그린 것이다.
정치적 논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더 강조한 그의 작품은 순식간에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젊은이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찾아왔고, 베들레헴에는 ‘뱅크시 투어’와 그의 작품을 기념품으로 만든 ‘뱅크시 숍’까지 등장했다. 뱅크시 투어 전문 가이드인 야멘 엘라베드씨는 “뱅크시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슬림이냐 유대인이냐, 팔레스타인인이냐 이스라엘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며 “그의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함께 보게 되고,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장벽에는 이처럼 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그림과 글귀가 남겨져 있다. 그중에는 한국인들이 그린 듯 한글을 적은 작품도 있다. 대부분 이 땅이 역사적인 성지인 것을 염두에 두고 성경이나 복음성가의 한 구절을 따왔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벽화는 퇴색하고 지워져가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중재하는 평화협상의 팔레스타인 대표 사에브 에레카트씨는 지난달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까지 대략적인 원칙(framework)에 합의한다면 최종 평화협정 체결까지 1년 이상 더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중재자인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인물로, 지금까지 협상에 임했던 다른 미국인들과는 다르다”고 추켜세웠다. 중국과 유럽연합도 이번 평화협상이 반드시 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5월 이곳을 방문해 베들레헴에서 특별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라말라·베들레헴=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성탄전날인 24일(현지시간)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해 3살 여아가 숨졌고,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이스라엘 국방부 직원을 저격해 베두인족 출신의 22세 청년이 숨지는 등 갈등은 여전하다.
기자가 라말라를 찾은 지난달 11일, 팔레스타인의 중심지인 이곳은 100여년 만의 폭설 속에서도 활기차 보였다. 다운타운인 알마나라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눈싸움을 벌이며 오랜만에 쌓인 눈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의 명물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아랍식 커피점에서는 성탄 캐럴이 흘러나왔다. 식당에도 손님이 북적였다. 머리를 천으로 두른 할머니는 “눈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나이만 하메리(25)씨는 “오늘 가져온 생선을 몽땅 다 팔았다”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좌판을 거두고 있었다.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평화협상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으니 표정이 굳어졌다. 하메리씨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한통속”이라며 “솔직히 압바스(팔레스타인 정부 수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2개의 국가로 분리하자는 방안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시큰둥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차지하고 있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모두 자신들의 영토로 여기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대가 물러나야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들어와 생활하는 정착촌의 실태는 심각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만이 아니라 서안 지구 깊숙이까지 곳곳에 정착촌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 NHK의 예루살렘 지국 쓰지 고헤이 특파원은 “이스라엘 정착민이 불법이라는 것은 국제사회도 잘 알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정부나 유엔도 이들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곳곳에 기지를 설치한 데다 소중한 수자원까지 정착촌과 군대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베들레헴에서 라말라를 오가는 길은 분명히 팔레스타인 영토지만 곳곳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총을 들고 검문을 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인 사머 코칼리(44)씨는 “정착촌과 주민의 집을 구분하려면 옥상에 물탱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된다”며 “주민들은 가뭄에 대비해 두세개씩 물탱크를 마련해 두지만 수자원을 확보한 정착촌은 물탱크가 필요 없고 주변에 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곳곳에는 유머러스하게 이를 표현한 벽화가 눈에 띄었다. 한 주유소의 세차장 벽에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손에 들고 던지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군인이 나란히 경비를 서고 있는 곳에는 어린 소녀가 군인을 검색하는 벽화가 행인들에게 웃음을 줬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잇는 검문소의 장벽에는 가위로 벽을 잘라내는 ‘절취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고, 라말라 외곽에는 소녀가 풍선을 들고 장벽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 작품들은 영국의 유명한 예술가 뱅크시가 2005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찾아와 남몰래 그린 것이다.
정치적 논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더 강조한 그의 작품은 순식간에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젊은이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찾아왔고, 베들레헴에는 ‘뱅크시 투어’와 그의 작품을 기념품으로 만든 ‘뱅크시 숍’까지 등장했다. 뱅크시 투어 전문 가이드인 야멘 엘라베드씨는 “뱅크시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슬림이냐 유대인이냐, 팔레스타인인이냐 이스라엘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며 “그의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함께 보게 되고,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장벽에는 이처럼 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그림과 글귀가 남겨져 있다. 그중에는 한국인들이 그린 듯 한글을 적은 작품도 있다. 대부분 이 땅이 역사적인 성지인 것을 염두에 두고 성경이나 복음성가의 한 구절을 따왔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벽화는 퇴색하고 지워져가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중재하는 평화협상의 팔레스타인 대표 사에브 에레카트씨는 지난달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까지 대략적인 원칙(framework)에 합의한다면 최종 평화협정 체결까지 1년 이상 더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중재자인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인물로, 지금까지 협상에 임했던 다른 미국인들과는 다르다”고 추켜세웠다. 중국과 유럽연합도 이번 평화협상이 반드시 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5월 이곳을 방문해 베들레헴에서 특별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라말라·베들레헴=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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