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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기쁨-Helper’s High]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번역가”

열려라 에바다 2014. 1. 29. 07:53

 

[돕는 기쁨-Helper’s High]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번역가”

 

월드비전 최고령 자원봉사자 심무희 할머니

심무희(77)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번역가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지만, 순수한 사랑과 감사가 가득 담긴 러브레터를 가장 먼저 엿보기 때문이다.

심 할머니는 월드비전의 국내 최고령 번역 자원봉사자다. 국내 후원자와 외국의 어린이 사이에 주고받는 편지를 영어와 우리말로 옮긴다. 젊은 시절 미8군에서 근무하면서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지난 16일 인천의 자택에서 만난 심 할머니는 나이가 무색하게 젊어보였다. 환한 표정에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은 고생이란 걸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심 할머니는 월드비전에서 번역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3년 동안 내내 집안에서 눈물만 흘리며 지냈다고 한다.

“2002년에 남편이 하늘나라로 갔어요. 1남3녀 자녀들은 다 출가했지. 남편 없는 집에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어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 그게 3년을 가대요.”

할아버지랑 그렇게 금실이 좋았던 것인지 물었더니, 아니란다.

“에구, 말도 말아요. 진짜 우리집 양반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다고.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 아마 이혼한다고 했을 거예요. 1년에 360일은 술을 마시고 집에 왔어. 평상시에는 좋은데 취하기만 하면 사람이 달라졌거든. 오죽하면 시어머님이 ‘아가야 너는 어떻게 저런 사람과 살았냐’고 하시더라고.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천국 가면 우리 며느리 위해서 제일 먼저 기도하마’ 그러셨어요. 그냥 체념하고 살았죠.”

미운 정이 들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인생이 덧없게 느껴졌던 것인지, 물어도 심 할머니는 즉답을 피했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 모르겠다.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허전했던 그때, 자원봉사를 권유한 사람은 4살 아래 동생 운자씨였다. 다른 NGO에서 번역봉사를 하고 있던 동생이 알려줘 월드비전의 번역 자원봉사자 모집에 지원했다.

“내가 독일어하고 영어는 100점을 맞았거든.”

심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를 잘했다고 자랑했다. 집안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대학은 꿈도 못 꾸고 졸업하자마자 미8군에 취직했다. 헌병사령관실에서 문서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밤이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영어소설도 읽으며 공부를 했다. 장병들이 손으로 휘갈겨 쓴 글씨를 타자로 옮겨 정리하던 것도 지금 자원봉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동생도 미군에 취직했다.

“우리 상사가 ‘미스 심의 동생이면 면접도 볼 필요 없다’며 합격을 시켜 줬어.”

이때 도움을 받은 동생이 훗날 남편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 있던 언니를 살려준 셈이다. 번역 봉사를 시작하면서 혼자만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밝아졌어요. 이 나이가 되어도 남을 이렇게 도울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거든. 뿌듯하고. 우리 손주들도 그래. 우리 할머니 멋지다고.”

번역 봉사를 시작한 지 꼬박 10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미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번역을 일찌감치 마치고 ‘언제 또 편지가 오나’ 기다릴 정도다.

“번역할 편지가 있으면 월드비전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데, 번역 끝내면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어떨 땐 또 보내달라고 내가 요청할 때도 있어요.”

편지를 확인하기 위해 클릭할 때는 늘 마음이 설레지만, 사실은 편지 내용이 늘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나 사진을 볼 때면 가끔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아픈 환자를 동네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4㎞를 걸어갔는데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음이 참 아팠어요. 벌써 10년을 번역했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부터는 후원자가 보내는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만 하겠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실은 번역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월드비전이 지난해 11월부터 새롭게 도입한 편지 번역 프로그램 때문에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아침 8시에 편지가 20통인가 왔는데 내가 다 번역하고 한 통 남겨뒀어요. 기자 오면 보여주려고.”

심 할머니는 안방으로 가더니 책상 위의 컴퓨터를 켜서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척척 로그인해 편지를 확인하고는 화면에서 바로 타이핑을 하며 번역했다.

“내가 컴퓨터를 배워서 잘 써먹고 있지. 그 전에는 메일을 받아 옮기는 게 번거로웠는데 이젠 내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편지가 딱 도착해 있거든. 한 화면에서 편지를 보며 바로 번역할 수 있으니까 참 편해졌어요. 이젠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봉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심 할머니는 블로그(blog.daum.net/smh0229)도 운영하고 있다. 틈이 날 때마다 좋은 글귀와 사진을 모아 멋진 작품을 만들어 올려놓는다.

편지를 보내는 후원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더니, 편지를 자주 보내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후원을 한 지 3년이 넘어서 처음 편지를 보내기도 하더라고. 생활이 바빠서 그랬다고 하는 내용이라 이해는 되지만, 자주는 못 보내더라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보내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후원자의 편지는 참 소중하거든요.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인천=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