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버나움 ②

열려라 에바다 2014. 8. 23. 11:42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버나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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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09 17:23 수정 2013-05-09 17:28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버나움 ② 기사의 사진
예수님이 가르치던 회당으로 추정되는 건물 기초석 발견

베드로의 집 기념교회


가버나움 유적지는 현재 가톨릭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적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회색 건물이다. 이 건물은 지난 호에서 다뤘던 베드로의 집터 혹은 1세기 가옥형태의 교회(house church) 흔적을 덮고 있다. 1세기의 흔적은 이후 다시 한 번 확장됐다. 여전히 가옥의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교회 예배실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방보다 크게 만들어졌고 중앙에 아취를 만들어 천장을 지탱하도록 했다. 북쪽의 벽은 역청을 사용하여 더 두꺼우면서도 튼튼하게 보호했다. 바닥은 새로 포장됐고 벽들은 회칠이 다시 입혀졌다.

주후 5세기 이제 가옥 형태의 교회(house church)는 본격적으로 비잔틴 교회(Byzantine Church)로 사용됐다. 이전의 교회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채 허물어졌으며 그 위에 팔각형 형태의 비잔틴 교회 건물이 세워졌다.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카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건물은 기둥들을 세워 지붕을 지탱했고 내부 구역이 나누어졌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바실리카 건물이 두 줄로 기둥이 세워지는 것에 반해 이 건물은 팔각형 모양이었기에 각 코너에 기둥이 세워져 모두 8개의 기둥이 있는 건물이 됐다.

건물의 외곽이 팔각형인 것처럼 내부 중앙에 위치한 방 역시 팔각형의 형태이다. 중앙의 팔각형 방은 주후 1세기 베드로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방 바로 위에 지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학자들은 대부분 이 집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었다고 확신한다. 교회의 바닥을 모자이크로 덮어 고대의 집을 보호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교회의 동쪽에는 또 다른 방들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 이 통로는 세례를 주기 위한 구조물로 채워져 있어 이 건물의 용도가 교회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 바닥을 덮고 있는 모자이크는 보존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기형학적 무늬와 꽃이나 동물들 사이에서 작은 십자가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석회석으로 지은 회당

교회가 보수됐던 것처럼 주후 4세기 이전에 있던 집들 위에 다시 집들이 세워졌다. 주후 1세기의 집들이 잘 다듬지 않은 현무암으로 지어진 것에 반해 이제 질 좋은 역청과 잘 다듬은 벽돌을 사용한 집들로 건축됐다. 더 나은 집들이 지어졌다고 해서 이곳의 주민들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더불어 기독교인들도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물은 교회에서 나와 북서쪽 방향의 마을을 지나면 반대편에 있는 회당건물이다.

가버나움의 집들은 고대에는 벽에 회칠이 칠해져 흰색을 띠고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현무암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현재 검은색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회당은 석회석으로 지어져 누구나 멀리서도 선명한 흰색을 볼 수 있다. 갈릴리 호수 지역은 예루살렘과는 달리 석회석 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 회당이 먼 거리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가져온 재료로 건축됐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분명히 특별한 기능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회당 안과 밖 모두 여러 가지 다양한 조각들로 장식돼 있어 상당히 화려하다. 석회석으로 지어졌다는 것 외에 회당의 전체 구조는 지난 호에서 이야기된 고라신의 회당과 상당히 유사하다. 더불어 가버나움은 신약에서는 물론 요세푸스도 언급하고 있는 갈릴리 호수 해안가에 위치한 유대인의 마을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건물이 회당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회당 전체는 기도와 회합을 위한 가장 큰 방과 서쪽의 작은 난간, 남쪽의 큰 난간(우리의 베란다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고 북서쪽의 작은 방들이 있는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회합을 위한 가장 큰 방은 24.4m×18.6m 크기로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카 건물들처럼 두 줄로 기둥이 서 있어 방 전체가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기둥들의 꼭대기는 그리스 기둥머리 양식 중 가장 화려한 고린도 양식으로 장식돼 있었는데 포도넝쿨이라든가 무화과나무 잎, 독수리 등 정교한 모양들로 조각됐다. 고라신의 회당처럼 방의 서쪽과 동쪽 벽을 따라 돌로 된 벤치가 놓여 있어 회합이 있을 때 일반 유대인들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 건물의 조금 특이한 점은 입구가 예루살렘 방향인 남쪽으로 뚫려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기 때문에 이 경우 남쪽은 성경을 읽는 모세의 자리나 회당장이 설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해야만 한다. 아마도 가버나움의 도시 구조상 회당의 입구는 마을을 향해 있어야 했고 남쪽 대신 북쪽 벽에 회당장이 서는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등을 보일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회당으로 들어올 때 뒷걸음질쳐야만 했을 것이다.

회당 내부의 벽들은 한때 회칠을 해 벽화를 그려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둥이나 문설주 대들보 등은 아름답게 조각돼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이스라엘의 국기에 등장하는 다윗의 별과 유사한 별의 모습이라든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풍부한 포도와 종려나무 가지들의 모습이다. 더불어 수레 모습도 조각돼 있는데 언약궤를 이동했던 수레의 모습이 이것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회당이 발굴됐을 초기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깥쪽에 있어 마치 현대 회당처럼 여인들의 구역이 있었다고 보기도 했지만 이 가설은 후대의 발굴에서 증명되지 않았다.

백부장이 지은 회당

우리는 이미 신약 성서를 통해 가버나움에 예수 시대부터 회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가복음 1장 21절에는 예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에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요한복음 6장 59절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치시는 장면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가버나움의 회당은 로마의 백부장이 세운 것으로(눅 7:1∼5) 그의 믿음은 하인이 병들었을 때에 낳게 할 수 있었다(마 8:5∼13). 바로 이 회당의 회당장의 딸은 예수에 의해 죽음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았다(막 5:22; 눅 8:41).

1866년 처음 가버나움에 있었던 회당을 발견한 영국의 윌슨 장군은 예수 시대의 가버나움 회당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발굴을 통해 이 회당은 오히려 주후 381년 스페인의 성지 순례객 중 에게리아 여사에 의해 기록된 아름답고 정교하게 돌을 깎아 세운 회당이었음이 증명되었다. 회당의 기둥에서 떨어진 듯한 조각 하나에는 주후 4세기께 아람어로 회당의 후원자를 기록하고 있다. 후원자의 이름은 ‘할푸, 제비다의 아들’로 그리스어로는 ‘알패오, 세배데의 아들’과 상당히 유사하게 읽을 수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더 깊이 발굴되면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석회석으로 지어진 기초석 아래에서 이전에 지어졌던 건물의 기초석이 발견되었다. 후자는 현무암으로 후대 건물의 기초석이라고 하기에는 벽돌이 세워진 선이 어긋나 있어 분명 이전 시대 건물의 기초석으로 보인다. 아마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가버나움에서 활동했던 시대에는 고라신처럼 현무암으로 지어진 검은 회당이 있었을 것이다. 이 회당은 주후 70년께 로마에 의해 파괴됐다가 주후 250∼300년쯤 석회석으로 다시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주후 363년 이스라엘을 강타했던 지진 때문에 무너진 곳들은 보수공사를 했고 베드로의 집 기념교회와 함께 가버나움의 종교적 중심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두 종교 건물들은 주후 7세기 아랍 무슬림들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기에 파괴되고 말았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