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⑩헤롯과 예루살렘 4

열려라 에바다 2014. 8. 23. 12:56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⑩헤롯과 예루살렘 4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⑩헤롯과 예루살렘 4 기사의 사진헤롯, 솔로몬의 못∼예루살렘 지하 수로 뚫어 물 끌어와

겨울에만 비가 오는 이스라엘에서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자원을 확보해야 했다. 다행히도 성서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사철 물이 솟아나는 기혼샘이 있어 걱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헬라와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예루살렘 인구가 계속 늘어나 기혼샘의 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헤롯 시대에는 히스기야 시대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위 못과 아래 못을 보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성전에서 사용할 물은 베들레헴에 있는 솔로몬의 못(Solomon’s Pool)에서 끌어왔다.

성전을 위한 수자원

헤롯은 로마의 도시처럼 성 바깥의 샘에서 물을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사용했다. 현재 솔로몬의 못이라고 불리는 샘이 베들레헴에서 남서쪽으로 5㎞ 떨어져 있는 알카데르(al-Khader)라 불리는 마을에 있다. 수목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곳에 직사각형 형태의 저수지 3개가 연결되어 있다.

각 못은 길이가 100m, 폭이 65m에 이르고 깊이도 10m나 된다. 계단처럼 차례로 높이를 달리한 저수지들은 서로 6m씩 간격을 두고 있다. 이 저수지를 채우는 물은 엔-에탐을 비롯한 4개의 샘에서 끌어온 것으로 물이 가득할 때는 그 용량이 2억ℓ에 이른다.

이곳이 솔로몬의 못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전도서 2장 6절에 솔로몬이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라는 구절 때문이다. 그러나 못이 건설된 시기는 하스모니아 왕조(주전 2세기)와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저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이가 바로 헤롯이다. 헤롯은 솔로몬의 못에서 예루살렘까지 지하로 물길을 파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헤롯이 만든 수로의 흔적은 지금도 베들레헴 도로 주변에서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물길은 예루살렘 서쪽에 도착해 아치 형태의 다리를 지나 성전 안으로 이어졌다. 성전으로 이어지는 아치 형태의 다리 흔적 중에서 윌슨의 아치가 이 물길 위로 지나갔던 다리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성전으로 들어간 물은 다시 지하 물길을 따라 성전 안뜰과 미크베(Mikveh·정결목욕탕)를 채웠다.

미크베는 신약시대 유대인들이 살던 곳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정결 의식을 행하던 터다. 물에 사람이 잠겼다가 나오면서 정결케 되는 것으로 미크베 내부는 여러 번 두껍게 회칠해 방수가 되도록 했다. 계단과 몸을 담그는 욕조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레위기 15장에 유출병이 있는 자나 여인이 피를 유출하면 옷을 빨고 몸을 씻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들은 부정하며 그들과 함께 동침한 자들도 모두 부정했기에 몸을 씻어야만 했다. 또한 구약의 율법은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가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힐 것이고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민수기 19:13)고 강력히 말하고 있다. 시체를 만진 자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 부정을 씻어내야만 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군인들이 가져온 노획물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금속 같은 불에 견딜 만한 모든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하게 하며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하라고 말했다(민수기 31:23).

미크베는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 초기 형태로 보인다. 로마 시대까지 300개가 넘는 미크베가 발견됐다. 현재 성전산 위 알악사(Al-Aksa) 무슬림 사원 아래에서도 유대인들이 정결례를 행했던 미크베의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베데스다 연못

구약성서는 주전 8세기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에 위에서 언급한 물길의 끝에 세탁자의 밭이 있었다고 말한다(왕하 18:17; 사 7:3; 사 36:2). 예루살렘 북쪽에 못 흔적이 있는 곳을 그곳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주전 200년경 하스모니아 왕조가 다시 사용한 이 못은 주전 1세기까지 자연 동굴의 모습이었으나 벽돌을 쌓아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수지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곳의 이름이 베데스다다.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란 뜻이다. 요한복음 5:4에는 이 못에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나았다고 묘사했다. 수많은 병자들이 베데스다 주변에 모였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예루살렘 성을 확장하면서 베데스다 못도 성 안으로 들어와 양문 곁에 놓이게 되었다.

한동안 양문 근처에서 베데스다 못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는, 이곳에서 38년이나 병으로 고생한 이가 “자리를 들고 가라”는 예수님의 말 한마디로 병 고침을 받게 되었다는 요한복음 5장의 이야기를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19세기 초 예루살렘의 양문 안쪽 왼편에 위치한 성 안나 교회 마당에서 성경에 묘사된 것처럼 5개의 행각(기둥)이 있는 못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곳을 베데스다 못으로 확신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이곳에는 로마의 신전이 들어서기도 했고 비잔틴시대에는 교회가 세워지기도 했다.

실로암 못

구약시대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북쪽에 위 못이 있었다면 남쪽에는 아래 못이 있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산헤립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기혼샘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없애고 지하로 터널을 파 아래 못에 물을 모았다(사 22:9). 예루살렘 남쪽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 못은 신약 시대에는 실로암(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불렸다. 실로암 못은 요한복음 9:1-12에 의하면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눈 먼 이의 눈에 바른 뒤 가서 씻으라고 해 기적이 일어난 장소로 유명하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멸망당한 후 실로암 못도 버려져 땅 속으로 사라졌다. 주후 5세기 비잔틴 시대에 로마의 엘리아 유도키아 여제가 실로암 못을 기념하는 못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비잔틴 시대에 만든 이 못의 벽과 기둥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히스기야의 터널 끝자리에 위치해 있다. 비록 신약시대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이곳을 실로암 못으로 믿었다.

2004년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실로암’ 마을에서 하수구 공사가 벌어졌다. 하수관을 넣으려고 땅을 파던 일꾼들은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발견했다. 다윗성을 발굴하던 로니 라이히(Rony Reich)와 엘리 슈크론(Eli Shukron)은 이 계단이 예사 것이 아니라 생각해 이스라엘 유물청에 알렸지만 공사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듬해에야 하수관을 다시 들어내고 발굴이 이뤄졌다. 기혼 샘에서 시작해 히스기야 터널로 들어온 물을 모아 두었던 곳을 찾아냈다. 직사각형의 못은 크게 3개 층으로 이뤄져 있고, 각 층에는 5개의 작은 계단이 있었다. 발굴이 진척되면서 이 못이 앞선 시대에 사용된 못 위쪽에 건설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앞선 시대의 못에서는 주전 1세기∼주후 1세기 사이의 동전까지 발견됐다. 비잔틴 시대의 못이 신약시대의 실로암 못과는 약간 다른 위치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