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채찍질하며 고문하는 방법은 고대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고문 도구는 점차 흉악범을 공개 처형하는 형틀로 채용되기 시작했고, 가나안 지역에서도 그 방식이 적용되었다.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페르샤에서도 반역자는 나무에 달아 처형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에 7:10)
이 처형목은 점차 십자가 형태로 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이 도입한 십자가 처형은 카르타고의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로마에도 들어갔다. 로마인들은 주로 속주 출신의 반역자, 도적들을 십자가에 달았다. BC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을 진압한 로마는 6000명의 노예를 십자가에 달아 아피아 가도에 세웠고, AD 6년 갈릴리의 세포리스에서도 그것이 재현되었다.
“십자가에 달린 처형자의 수는 2000명에 달했다.”(‘유대고대사’ 17-10-10)
세포리스 성 밖의 가도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들은 ‘갈릴리의 유다’ 반란에 가담한 열심당원들이었다. 그리고 AD 30년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렸다.
“예수라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빌라도 총독이 유대 유력 인사들의 요구에 따라 그를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했으나 그를 따르던 자들은 후에도 그를 버리지 않았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3-3)
그러나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빌라도 총독도 그것을 인정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 23:4)
그 예수를 로마군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요 19:17∼18)
그것은 오전 아홉시였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막 15:25)
그의 시선은 계속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군인들은 그에게서 벗겨낸 옷을 나누고 있었다.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제비뽑아 나누자 하니.”(요 19:23-24)
그렇게 해서 다윗의 절규는 예언이 된 것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 22:17∼18)
구경하고 있던 자들이 예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도 그를 조롱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마 27:42)
그와 함께 달린 행악자 중 하나도 역시 그를 비방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그러나 다른 하나는 비방하는 자를 꾸짖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0∼41)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예수를 향해 간구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인들이 멀리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막 15:40)
그리고 그 고난의 현장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요한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그리고 또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7)
아들이 못 박히는 장면을 차마 보게 할 수 없어서 요한은 그 모친을 모시고 나중에 도착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한 후 아버지의 음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하고 계셨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마 27:45)
제구시 즉 오후 세시에 갑자기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부르짖었던 다윗의 절규였다. 아들의 고통을 더 볼 수 없어 얼굴을 돌리신 아버지는 사람의 고통과 절망을 홀로 감당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낸 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주실 수도 없었다.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하심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아버지의 성실함과 진실함 때문에 아들은 절망으로 헐떡거렸다.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사람들이 신포도주에 적신 해면을 대주자 아들은 이제 끝이 온 것을 알았다.
“다 이루었다.”(요 19:30)
그리고 큰 소리로 다시 ‘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아들은 그 한마디까지도 다윗의 기도를 인용했다.(시 31:5) 끝까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만을 말하는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그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로마군의 백부장이 그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23)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다 이루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는 해골 모양의 언덕이다. 골고다는 사복음서 모두에 나오며 예수가 묻힌 묘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는 죄가 없다고 말한 법정은 현재 비아 돌로로사 제1지점이다. ‘십자가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예수가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신 길로 14지점까지 있다.
예수와 두 행악자의 십자가를 세웠던 장소에 세워진 성묘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교회다. 구 예루살렘 북서쪽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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