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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열려라 에바다 2011. 10. 18. 19:09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땅은 팔았지만

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판 값을 가지고 베드로 앞에 나왔다. 그 때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하면서 책망했다. 그러자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라고 하였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 값 얼마를 감추고 그것이 다인 것처럼 교회를 속이고 베드로를 속였던 것인가?
초대 교회는 오순절 이후 성령이 충만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방법과 물질을 의지하여 자기 능력으로 살았는데, 이제 그들의 삶 전체를 주님의 손에 맡기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장래나 내 자녀나 사업, 또 죄의 문제를 내가 쥐고 발버둥치는 것과 모두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는 전능한 자가 아니지만 주님은 전능한 분이시다. 그런 주님이 내 생애를 맡으시면 내 삶이 얼마나 복되고 안전하겠는가?’ 그러면서 제자들은 하나 둘 자기의 삶을 주님의 손에 맡겼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가 가진 물질이나 자신의 실력을 의지하고 살던 삶이 주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제자들은 하나 둘 땅을 팔아서 사도들의 앞에 가져왔고, 사도들은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형제 자매들이 교회 안에서 풍족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이다.

아나니아에게도 땅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땅을 팔긴 팔아야겠는데 아나니아에게는 제자들이 가진 믿음이 없었다. 제자들은 ‘나에게 땅이 없어도 주님이 내 생애를 이끌어 주신다면 내가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땅 없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됐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달랐다. 주님께 자기 생애를 맡길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주님보다 돈을 더 믿고 의지해 왔기 때문에 땅 판 값을 전부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너무나 불안했다. 주님께 드린다면 주님이 그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인데,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다. ‘이게 땅 판 값의 전부인데, 이걸 다 갖다 드리면 앞으로 아이들이 병이 들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러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만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주님은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는 분이신데, 아이들이 병들고 어려우면 주님이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 주시려고?’ 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땅 판 값 전부를 드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었겠는가? 아나니아는 다른 사람들이 땅을 판 것처럼 땅을 팔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 믿음을 갖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다 드리고 빈 손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이 너무 불안했다. ‘혹시 다급한 일이나 돈이 급히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디서 돈을 구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 땅 판 값 전부를 주님 앞에 드리지 못했다.
베드로는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하고 아나니아의 마음속에 사단이 집어넣어 준 땅 판 값을 숨기고자 하는 마음을 지적했다. 아나니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도 사단의 말을 따라서 땅 판 값을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면 ‘내가 돈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하면서 사단이 주는 그 마음을 금방 내어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니아에게는 그 믿음이 없어서 사단이 준 마음을 내어쫓지 못했다.

아나니아가 가진 믿음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뱀은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을 불신하게 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어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욕망을 넣어 줬을 때, 하와는 아무 생각 없이 마귀가 넣어준 그 생각을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였다. 그 후로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생각을 넣어 주고 있다. 가룟 유다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을 넣어준 것도 사단이었고, 사울의 마음에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넣어 준 것도 사단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마음속에 땅 판 값을 숨기고자 하는 마음을 넣어준 것도 사단이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땅 판 값을 가져왔을 때,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라고 했다. 사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그 장래를 하나님께 맡길 만한 믿음이 없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나니아처럼 자기 장래나 자기가 당하는 고통, 죄의 문제, 질병 등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자기가 쥐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 방법과 수단으로 자기를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야만 한다.
아나니아도 자기가 자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돈을 다 갖다 바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돈을 다 갖다 바쳤는데 자기는 장래를 위해 돈을 조금 남겨놓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는 땅 값 얼마를 감추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베드로 앞에 갖다두었던 것이다.
사단은 항상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파멸 속으로 끌어간다. 사단이 우리를 파멸로 끌어갈 때 먼저 우리 마음속에 어떤 일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것을 불신하게 한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갖는다. 사단이 그렇게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사단의 속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음이란 성경을 적당히 아는 데서 일어나지 않는다. 믿음은 우리가 특별히 하늘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누구보다도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쉽게 사람을 믿지 않고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을 정도로 의심이 많았다. 그렇게 의심이 많은데, 성경을 읽다보니까 하나님밖에는 믿을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밖에 없게 너무 완벽하고 분명하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내 모든 문제를 맡겼을 때만큼 안전한 것은 없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그 사업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 안전한 것이 없으며, 자녀들이나 장래에 일어날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 더 안전한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초대 교회 때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땅을 팔았고 그 값을 가져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은 물질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보다도 물질이 더 안전하게 보였고, 주님 앞에 자신을 맡기는 것보다 인간적인 방법이 훨씬 더 옳은 것처럼 보였다. 자기의 장래를 다른 무엇보다도 돈이 지켜 줄 때 가장 완벽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다른 제자들과 근본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따라서 땅을 팔고 그걸 갖다 드리려 했지만 그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생겨서 땅 값 얼마를 감추었던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만약 아나니아가 땅을 팔아서 쓸 데가 있어서 땅 판 값의 3분의 2를 남기고 베드로에게 ‘땅 판 값의 3분의 1만 가져왔습니다.’ 하든지 아니면 ‘절반은 내가 좀 써야겠습니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땅 판 값을 가지고 왔을 때,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없더냐?”라고 말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을 의식해야 했다. 그들의 마음은 믿음이 아닌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땅 값을 다 갖다 바치는데 자기는 땅 값 얼마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베드로 앞에 바친 돈이 땅 값의 전부인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땅 판 값이 이게 다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예, 그렇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믿음 없이 살아간다. 성경 말씀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확하게 깨달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그분은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어떤 문제도 그분의 손에 맡겼을 때 완벽하게 처리해 주신다. 내 장래나 노후 문제, 자녀 문제, 질병, 더더욱 내 영혼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무 아름답게 그 일들을 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경 신구약 66권 전체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전부 그런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막연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정확한 믿음이 필요하다

한번은 미국에서 집회를 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미국 국기에 대해서 물어봤다. 어떤 것이 미국 국기인지 아냐고 물어보니까 다 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미국 국기에 별이 몇 개냐고 물었다. 누가 50개라고 했다. 이어서 별이 무슨 색인지, 줄은 몇 개인지, 긴 줄이 몇 개이고 짧은 줄이 몇 개인지 물었다. 그러자 형제 자매들이 당황하였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몇 명을 제외하고는 미국 국기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국기는 파란색 바탕에 흰 별이 있고, 흰 줄과 붉은 줄이 있다. 붉은 줄 가운데 긴 줄이 네 개이고 짧은 줄이 세 개다. 그 사이에 흰 줄이 들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미국 국기에 대해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국기를 대충 볼 때 ‘아, 저거 미국 국기야. 맞아.’ 하지만, 그에게 미국 국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정확하게 그리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 신앙의 세계도 그렇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가 기도하면 들으신다’, ‘구하면 주실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알지만,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벗어나 참된 해방을 누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죄 문제를 주님의 손에 넘기지 못하고 자기가 쥐고 늘 죄 때문에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비단 죄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질병이나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면 주님이 들으시고 해결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왜 그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기도해도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는지,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인지, 병을 낫게 해 주실 것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기도해 놓고도 불안한 것이다. 하나님이 병을 고쳐 주실 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안 일어나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질병 문제뿐 아니라 장래나 자녀 문제, 죄 문제나 어떤 문제든지 간에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없어서, 주님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기도하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가 그 문제를 짊어지고 끙끙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셨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늘에 있는 성전을 보여 주셨다. 그러고는 모세에게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출 26:30)고 명령하셨다. 성막에는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기구는 제단, 물두멍, 떡상, 등대, 향단, 덮개 등 여섯 개다. 그런데 모세가 그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을 보는 데에 사십 일이 필요했다. 우리는 ‘상 하나 살펴보는 데 무슨 여러 날이 필요한 것인가? 한 시간만 봐도 되지. 제단 하나 보는 데 무슨 그런 많은 시간이 필요하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성막을 대충 보고 넘어가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모세로 하여금 성막과 성소, 지성소, 그리고 6가지 성전 기구를 40일 동안 보도록 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등대 하나, 살구꽃 하나, 가지 하나 정확하게 빠짐없이 보았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온 후 오홀리압과 브살렐이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 때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등대를 만들다가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요?’ 물으면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소의 모양을 정확하게 보지 않고 대충 보았다면, 오홀리압과 브살렐이 등대를 만들면서 ‘살구꽃은 활짝 핀 꽃입니까, 적당히 피었습니까? 봉오리입니까? 가지는 굵기가 가늘어집니까, 굵기가 같습니까? 가지가 바로 났습니까, 꺾여 났습니까?’ 질문할 때 모세는 자기 생각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성막을 정확하게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을 수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정확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43)

주님이 역사하시는 조건

나는 참 많은 사람과 신앙 상담을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성경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대충 아는 사람이 많다. 미국 국기를 보면 그것이 미국 국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미국 국기를 안다. 하지만 직접 미국 국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정확하게 그리는 사람은 정말 적다. 그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세계를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참 드문 것이다.
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안다면 그 말씀을 믿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그 마음에 정확한 믿음이 생길 수 없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는데, 그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맡기고 자기 생명을 맡기고 자기 장래를 맡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내 장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그것보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말씀을 알지만,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기지 못한다. 맡긴다고 기도하고 나서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내가 쥐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죄를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죄에 매여 고통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말씀을 전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알지 말고 정확하게 아십시오.’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어떤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인지 아닐지 성경을 펴놓고 정확하게 생각해 보란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고쳐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예 인간적인 방법으로 병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그 문제를 완전히 주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내가 내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이다.
죄 때문에 고통한다면 막연히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씻었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이 내 죄를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이 정확하게 내 죄를 씻었다면 이제 내 마음에는 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혈이 내 죄를 씻었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내가 죄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적당히 알고 있기 때문에 막상 믿으려고 할 때 ‘죄를 씻기 위해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데에 자신을 던지고 생애를 거기에 걸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두려워하는 상태 속에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못한다. 그는 자기 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속에 일하실 수 없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다른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하는 일을 믿음 없는 내가 흉내내야 할 필요는 없다. 믿음이 없으면 없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먼저 성경을 펴서 내 장래 문제나 질병, 내 삶에 닥치는 어려운 문제, 죄의 문제 등을 정말 주님이 정확하게 해결해 주실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처럼 말씀을 통해 주님을 정확히 알면 이제 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 속에 믿음이 있으며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국기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려보라고 하면 잘 그려내는 사람이 몇 안 되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건성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자신의 삶 전체를 드리지 못한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인간적인 방법을 더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 맡긴다면 어느 일이든지 하나님이 해결해 주지 않을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