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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제작된 해도(海圖)를 보면, 옛 선원들은 아직 가보지 못한 광활한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고스란히 해도에 드러냈습니다. 선원들이 부대끼고 싸워야 하는 거친 해일이 이는 바다는 ‘악마의 집’으로, 따뜻한 기운이 사라진 차가운 바다는 ‘귀신의 소굴’로, 사고가 많아 생명을 빼앗기기 쉬운 바다는 ‘지옥의 문’으로 이름붙여놓는 것입니다. 탐험가들에게 바다는 언제나 수수께끼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계였습니다.
헨리5세 때 영국에 유명한 탐험가인 존 프랭클린 경이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해도를 새로 손에 넣을 때마다 어김없이 신앙의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 악마의 집, 귀신의 소굴, 지옥의 문 따위의 지명들을 지워버리고 거기다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본문에는 회당장 야이로가 등장합니다. 그에게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그는 슬픔에 잠겨 통곡하고 있습니다. 어린 딸이 그예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야이로는 까닭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서두르지 않으셨는지, 어째서 어린 딸이 죽도록 내버려두셨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뭘 믿으라는 건가,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 도대체 누굴 믿으라는 건가?’ 누군들 그 깊은 뜻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인간에게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예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가 확실해졌습니다.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길에서 하신 말씀대로 잠자던 소녀의 심장을 깨웠습니다.
고난이 눈앞에 있습니다. 딸이 죽어가는 아픔이 눈앞에 있습니다. 상황은 시간이 가도 그대로거나 시간이 갈수록 악화됩니다. 그러나, 두려운 바다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되고, 죽어가던 딸이 깨어나는 일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믿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눈을 택하십시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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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하나님! 더 이상 두려움이란 괴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믿음을 주시고, 평안함으로 에너지 넘치는 인생을 살도록 함께하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