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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 2:14 - 2:23 ] |
(찬송220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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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과 보아스가 한 식탁에서 먹는 모습은 이방인와 유대인 사이의 벽을 허무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라’와 같던 나오미도 점차 은혜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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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이 경험한 은혜 14절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절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절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절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나오미가 알게 된 은혜 18절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절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절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절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절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절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도움말 17,23절) 보리 한 에바는 약 22리터로, 두 여자가 5~7일 먹을 양이다. 보리 추수에서 밀 추수를 마치려면 약 7주가 걸린다. 20절) 히브리어 구문에서 ‘그’는 여호와, 혹은 보아스를 가리키도록 애매하게(혹은 의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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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절 하나님의 은혜는 그침도, 다함도 없습니다. 이제 나오미가 은혜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물이 원래 흐르던 곳에 다시 흐르는 것처럼, 남편과 자식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고 생각한 은혜가 지금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쳤던 은혜가 다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했던 은혜를 새롭게 발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전한 은혜에 대한 새로운 발견, 동일한 말씀에 대한 낯선 깨달음이 내 삶에 이어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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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보아스는 룻에게 ‘받아 가서’ 먹으라고 하지 앉고 ‘이리로 와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이방 여인과 유대인들이 한 식탁에서 떡을 먹는 낯선 풍경이 연출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식탁, 은혜의 식탁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나 편한 대로 경계를 만들고 울타리를 쳐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함께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담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15,16절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약자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책망하지 말고 꾸짖지 말라’는 보아스의 자상한 배려 속에는 우월감이나 교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례한 사랑’이 있을 수 없듯, ‘무례한 기독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사랑의 방식에는 상대를 향한 예의와 존중이 있습니까?
17,18,23절 은혜는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룻이 경험한 은혜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은 곡식은 시어머니에게도 풍성했습니다. 어쩌다 한번 받은 은혜가 아니라,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은혜였습니다. 받은 은혜가 풍성하다면, 나누는 은혜도 풍성해야 합니다. 일순간의 감정에 끌려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20~23절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룻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그침 없는 은혜가 보아스를 통해서 베풀어집니다. 그것이 룻이 다른 밭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다른 은혜를 구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한복음 6장 68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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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사회의 약자들이 단지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이웃이게 하소서. 열방-일본은 심각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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