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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8> 어려웠던 이민 생활… 하나님은 다음 계획 예비하셔

열려라 에바다 2017. 9. 19. 07:57

[역경의 열매] 홍수환 <18> 어려웠던 이민 생활… 하나님은 다음 계획 예비하셔

멕시코 국경서 티셔츠 장사하다 귀국… “챔피언 내 아들이…” 어머니 눈물바람

 

[역경의 열매] 홍수환 <18> 어려웠던 이민 생활… 하나님은 다음 계획 예비하셔 기사의 사진
홍수환 장로(왼쪽)와 동생 홍수철 목사(구리 예빛교회).

하나님은 나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어릴 때 복싱 선수가 집 앞으로 이사 온 것, 그 선수의 시합을 아버지와 같이 본 일이 ‘복싱 선수 홍수환’의 시작이었다. 이어 그토록 사랑하던 아버지가 49세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한국 최초 세계 챔피언 김기수 선수의 카퍼레이드를 보게 됐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김기수 선수 같은 챔피언이 되겠다.’ 이 역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의외의 방법으로 나를 훈련시켰다. 돈 없던 일본 훈련 시절, ‘빠찡꼬’에서 구슬 닦기로 일했다. 큰 통에 구슬을 넣고 광약을 부은 다음 물레방아를 돌리듯 손잡이를 돌리는 일이었다. 그 일이 모든 선수가 탐내던 나의 라이트 어퍼컷을 만들었다. 그 어퍼컷으로 한국 챔피언, 동양 챔피언이 됐고 수코타이전의 8회 KO승을 이뤘다.

그러면서 기도하게 하셨다. 내가 성숙하지 못해 기도하지 못할 때 곳곳에서 기도해주시던 분들이 계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미국 선교사였다. 군에 입대해 14주간 훈련하고 12㎏를 감량한 후 지구 반대편 남아공 세계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와 시합하게 됐다. 김포공항을 떠날 때 김준호 선생님 집에 세 들어 살던 미국인 선교사 세 명이 배웅 나와 기도해줬다.

시합 초반에는 어려웠다. 11회전에선 귀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자 심판이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링 닥터는 시합을 계속하라고 했고 이후 적지에서 세계 밴텀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선교사들이 해준 기도가 내겐 큰 힘이 됐다.

KO왕이라고 불리던 자모라를 만나 두 번 모두 KO로 패했고 이후 모두 나의 복싱인생이 끝났다고 했지만 나는 재기에 성공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

주니어 페더급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시합할 때도 그랬다. 갑자기 시합 룰이 무제한 다운방식으로 바뀌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미국인 심판을 만났다. 내가 4번 다운당하고 로프에 몰려 공이 울리기 전까지 그토록 맞았는데 그 심판이 시합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심판이 그때 경기를 중단시켰다면 어땠을까. 나는 초대 챔피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과정도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나의 경기들은 극에서 극으로 치달았다. 설사에 시달려 배에 통증을 안고 적지 일본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지킨 일, 카르도나에게 손 한번 못 쓰고 타이틀을 뺏긴 일, 옥희와 만나 사생활이 시끄러워 챔피언 타이틀을 뺏겼다는 이유로 2년반 동안 시합하지 못한 일 등도 돌이켜보면 큰 틀에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1981년 미국으로 향했다. 그곳에 이민 가서 알래스카에서 5년간 고생했다. 로스앤젤레스(LA)로 87년에 와 멕시코 국경에서 티셔츠 장사를 했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겨우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나를 측은하게 여겼다. 가끔 어머니 식당에서 조용필의 ‘허공’을 불렀다. 어머니는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자랑스러운 아들 수환이가 이제는 한국에서 발을 못 붙이고 평택 미군부대 엄마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라며 슬피 울곤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후의 인생을 준비하고 계셨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