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역경의 열매] 김정하 목사 <2> 전경 제대 무렵 영창 안에서 찬양 듣고 통곡

열려라 에바다 2017. 10. 17. 08:06

[역경의 열매] 김정하 목사 <2> 전경 제대 무렵 영창 안에서 찬양 듣고 통곡

처이모 전도 받고 교회 출석… IMF사태로 생활형편 ‘바닥’

 

[역경의 열매] 김정하 목사 <2> 전경 제대 무렵 영창 안에서 찬양 듣고 통곡 기사의 사진
총각 때 만난 주님을 잊고 살다가 간호사인 아내 최미희(오른쪽)와 결혼하면서 비로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주님은 끊임없이 나를 인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가엾게 여기셔서 친히 찾아와 만나주셨다. 나는 지치고 외롭고 아프고 가난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고되고 팍팍한 삶이었다. 주님을 찾아갈 여유조차 없었으니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미련해 오랜 세월 여러 차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셔야 비로소 그 뜻을 알아먹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혼자 살다가 군대에 가기 위해 전투경찰에 지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치되기를 바랐으나 나는 가능하면 군 생활만이라도 집에서 멀리 복무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치 받은 곳이 남쪽 바다가 보이는 삼천포였다. 삼천포에서 울산으로 다시 서울로 전출됐고 제대가 가까워졌다. 그 무렵 나는 군기가 해이해져서 복장과 두발상태를 가다듬지 않고 외출했다가 기율교육대에 넘겨져 1주일 동안 영창에 있어야 했다.

처음엔 나를 영창으로 보낸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런데 어느 교회의 찬양팀이 영창을 방문해 은혜로운 찬양을 불러주고 말씀을 전해주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눈물이 났고 어느새 통곡이 됐다.

영창에서 나가면 교회에 다녀야지 생각했다. 또 결혼하면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야지 다짐했다. 그러자 나를 영창에 보낸 그가 오히려 고마웠다.

그러나 다짐은 그때뿐, 영창을 나오는 순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아내 최미희를 만나면서 처이모의 전도를 받았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주일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지근한 신앙이었다. 주님의 흔적이 내겐 없었다. 교회에 가면 교인처럼, 교회 밖에 나오면 세상 사람처럼 살았다.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산 셈이었다.

그러다가 IMF가 터졌다. 생활형편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고향인 삼척에 내려가 7년 가까이 머물렀는데 주님은 나를 끊임없이 이끌어 가셨다. 그런 주님께 나는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보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렸다.

처음에는 소소한 질문에 답해주셨다. 조금씩 보여주시고, 그러다가 끝내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시듯 내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한마디만 해도 절묘한 시각에 꼭 맞게 응답하셨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놀랍게도 그 만남들이 내 안에 있던 온갖 분노의 시간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비로소 나는 주님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됐다. 그러다가 내 안에 일어나는 그 모든 시간이 사람으로서는 결코 만들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기적임을 보여주셨다. 성경의 기적들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님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믿음이 아니고선 지금의 루게릭병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난 주님으로부터 스카우트된 사람이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큰지, 돈으로도 환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걸린 루게릭병이 10원짜리 같다. 그 많은 것을 받고 겨우 10원을 잃었을 뿐이라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