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살림살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배가 출항하고 귀항하는 부둣가에 나가지 않았다. 어장에 나가면 생선 몇 마리쯤 얻어 와서 상을 차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동정이 죽기보다 싫었다.
사람들은 나를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에 고귀한 그분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데, 어느 날 길에 큰 호박 하나가 덩그러니 나뒹구는 게 아닌가. 아마 꼭지가 썩었다고 누군가 버린 듯했다. 그 호박을 날름 주웠다. 아내에게 가져다주니 썩은 데를 베어내고 깨끗이 씻어 범벅을 쑤었다. 그리고 그날 심방을 온 손님의 상에 호박범벅이 올랐다.
비록 소박한 상이었으나 손님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한 권사님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때 그 범벅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그게 천상의 맛이었을 걸”이라고 웃으며 말하곤 한다.
어촌 마을에서 보낸 몇 달 가운데 웃음을 머금은 기억은 이처럼 모두 주님의 위로를 통해 주어진 것들이었다. 우리는 여름에 와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1998년 새봄을 맞았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은 온통 실패의 연속이었으리라.
500평 밭에 야생 참두릅을 옮겨 심으려고 아내, 어머니와 온 산을 뒤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두릅을 캐 밭에다 심었는데, 사람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그 두릅나무에 하도 찔려 성한 데가 없을 정도였다.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두릅농사는 실패를 맛봤다.
병아리도 분양받아 키웠다. 하지만 밤에 족제비들이 다 물어가 버렸다. 속이 상했다. 개를 사육하기도 했는데, 병으로 죽어가는 개들을 보면서 속이 상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광견병에 걸린 개를 살린답시고 개 입 속에다 손을 넣어 약을 먹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깰 만큼 아찔한 순간들이 하루 지나고 나면 또 하루가 이어졌다.
한 번은 군부대에서 가져온 짬밥으로 개밥을 끓여 먹였다. 한데 짬밥 국물을 만지다 손에 습진이 생겨 고생했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이 없어 짬밥에서 생선 덩어리를 꺼내 끓여 먹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올 무렵, 우리 가족은 산골짜기 외딴 곳으로 이사했다. 거기 내 이름으로 된 땅에 폐자재를 활용해 지은 창고가 있었다. 여기에 방 한 칸을 덧붙여 주거공간을 만들 셈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거처할 공간을 만드느라 땀 깨나 흘렸다. 거의 1년간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 네 식구를 위한 오두막이 완성됐다. 남들이 보기엔 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어느 왕과 왕후의 궁궐 못지않았다. 이제부터 이 오두막에서 하나님이 선생님 되시고, 우리 가족은 학생이 되어 놀라운 믿음의 학교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매일매일 우리 가족은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하루하루 기도의 추억을 쌓아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오두막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날 때면 그곳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여기는 너희를 위해 마련한 에덴동산 같은 곳이란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불편하고 위험했다. 밤에는 자동차에서 떼어낸 낡은 배터리를 충전해 5촉 꼬마전구로 방 안을 밝혔다.
어느 날 아이들을 남겨두고 저녁예배를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자랑했다. “글쎄 배터리가 다 닳아 불빛이 희미해지는 거야. 너무 무서워 기도했어. ‘하나님, 엄마아빠가 오실 때까지 저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더니 아직까지도 불빛이 안 꺼졌어. 신기하지?”
지금이야 ‘하나님께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구나’ 하고 감사할 일이지만 그 말을 들은 그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불빛 때문에 맹수들이 오두막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가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희들을 지키는 사람이야. 너희를 지키기 위해 아빠는 어떤 용기도 낼 수 있어”라는 말로 안심시켰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날이 밝자 나는 곧장 한전으로 달려가 전기와 전화를 가설할 수 있는 방법을 캐물었다. 하지만 우리 오두막이 위치한 지역은 큰돈이 든다는 한전 직원의 말만 들은 채 돌아와야 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손잡고 기도했다. 어쨌든 오두막에 전기가 들어오도록 말이다.
그런데 4개월 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설치에 400만원이 든다던 전화는 전화국에서 공짜로 놓아주었다. 또 1200만원 있어야 한다는 전기는 100만원의 가설비만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셔서 전화와 전기를 놓아주셨다고 간증한다. 아내와 나는 전화와 전기가 설치된 것보다 아이들에게 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을 더욱 감사하고 있다.
하루는 내가 야간신학을 하느라 강릉에 갔을 때다. 잠자리에 누운 큰아이 고은이가 다급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아내가 깨 보니 몸길이가 15㎝나 되는 지네가 고은이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오두막이 위치한 곳이 습했으므로 지네가 자주 발견됐으나 지네에 물리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네에 물리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고은이는 “엄마 나 이제 죽는 거야”라며 울부짖었다.
밤인데다 차도 없었다. 걸어서 읍내 병원까지 가면 독이 온몸으로 퍼질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보건소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캄캄한 밤에 오두막까지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고은이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는지 유언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잘못한 거 많지? 용서해주세요. 엄마, 그리고 나, 천국 가겠지? 우리 천국에서 또 만나는 거죠?”
순간 아내는 이 예쁜 아이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가 싶어 눈물이 범벅이 됐다. 그리고 “고은아, 엄마는 네가 엄마 딸이어서 너무 행복했어. 난 고은이의 엄마였던 게 자랑스러워”라고 했다. 다행히 보건소 소장님이 긴급히 달려와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어느 날 아이들을 남겨두고 저녁예배를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자랑했다. “글쎄 배터리가 다 닳아 불빛이 희미해지는 거야. 너무 무서워 기도했어. ‘하나님, 엄마아빠가 오실 때까지 저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더니 아직까지도 불빛이 안 꺼졌어. 신기하지?”
지금이야 ‘하나님께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구나’ 하고 감사할 일이지만 그 말을 들은 그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불빛 때문에 맹수들이 오두막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가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너희들을 지키는 사람이야. 너희를 지키기 위해 아빠는 어떤 용기도 낼 수 있어”라는 말로 안심시켰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날이 밝자 나는 곧장 한전으로 달려가 전기와 전화를 가설할 수 있는 방법을 캐물었다. 하지만 우리 오두막이 위치한 지역은 큰돈이 든다는 한전 직원의 말만 들은 채 돌아와야 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손잡고 기도했다. 어쨌든 오두막에 전기가 들어오도록 말이다.
그런데 4개월 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설치에 400만원이 든다던 전화는 전화국에서 공짜로 놓아주었다. 또 1200만원 있어야 한다는 전기는 100만원의 가설비만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셔서 전화와 전기를 놓아주셨다고 간증한다. 아내와 나는 전화와 전기가 설치된 것보다 아이들에게 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을 더욱 감사하고 있다.
하루는 내가 야간신학을 하느라 강릉에 갔을 때다. 잠자리에 누운 큰아이 고은이가 다급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아내가 깨 보니 몸길이가 15㎝나 되는 지네가 고은이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오두막이 위치한 곳이 습했으므로 지네가 자주 발견됐으나 지네에 물리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네에 물리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고은이는 “엄마 나 이제 죽는 거야”라며 울부짖었다.
밤인데다 차도 없었다. 걸어서 읍내 병원까지 가면 독이 온몸으로 퍼질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보건소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캄캄한 밤에 오두막까지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고은이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는지 유언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잘못한 거 많지? 용서해주세요. 엄마, 그리고 나, 천국 가겠지? 우리 천국에서 또 만나는 거죠?”
순간 아내는 이 예쁜 아이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가 싶어 눈물이 범벅이 됐다. 그리고 “고은아, 엄마는 네가 엄마 딸이어서 너무 행복했어. 난 고은이의 엄마였던 게 자랑스러워”라고 했다. 다행히 보건소 소장님이 긴급히 달려와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