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역경의 열매] 김정하 <6> 산 덮친 화마에도 우리 오두막은 무사

열려라 에바다 2017. 10. 26. 08:01

[역경의 열매] 김정하 <6> 산 덮친 화마에도 우리 오두막은 무사

2000년 강원도 산불 일주일 간 이어져… 교회로 피신해 드린 기도 들어주셔

 
[역경의 열매] 김정하 <6> 산 덮친 화마에도 우리 오두막은 무사 기사의 사진
집 옆에 세워둔 나무는 재가 됐고 알루미늄 섀시는 완전히 녹았다. 그런데도 불과 180㎝ 옆의 오두막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때 녹은 섀시 덩어리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2000년 4월 삼척부터 고성까지 강원도의 산들이 1주일 넘게 화마에 시달렸다. 실로 재앙이었다. 거대한 산불이 오두막을 향해 빠른 기세로 번지던 그 시각, 아내와 버스카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멀리 불이 번져오고 있었다. 하지만 시내가 가로막고 있고 불이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시내가 있는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불은 그 시내를 뛰어넘었고 오두막을 태울 기세로 번져갔다. “큰일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두막은 산속 외딴 곳이지만 폐자재를 사용해 지었으므로 불을 만나면 기름처럼 탈 것이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개와 병아리까지 키우고 있었으니….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여보, 집에서 꼭 갖고 나와야 할 물건이 있어?”

“글쎄, 모레가 주일이니까 예배드릴 때 입을 옷 한 벌하고 성경가방이 필요하긴 한데….”

그러고 보니 집이 불타더라도 옷 한 벌과 성경가방 외엔 별로 떠오르는 물건이 없었다. 아까울 게 없는 인생이 오히려 그땐 감사했다. 나는 불길을 헤치고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가스통을 치우고 집안에서 성경가방과 옷 한 벌을 얼른 챙긴 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 아내와 아이들이 버스와 집을 지켜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버스와 집,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재산이었다. “주님. 우리 오두막이 불에 타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태우지 마십시오.”

아내는 그렇게 기도하면서 뜨겁고 거센 불길이 화장실만 태울 뿐 오두막은 태우지 못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심하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러나 불길이 산등성이를 핥으며 타올랐다. 우리 가족은 일단 교회로 몸을 피했다. 교회까지 불씨들이 날아왔다. 우리는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져 모든 것을 잃고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은 지금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드신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을 향한 원망 섞인 기도가 나왔다. 한편으론 나의 처량한 인생이 서글프기도 했다.

이튿날 오두막에 가보았다. 들어서는 길목부터 폐허가 따로 없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 사이로 우리 오두막이 보였다. 그런데 우리 앞에 나타난 모습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사이로 우리의 오두막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화장실과 창고는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타버렸는데 오두막은 그대로였다.

바로 집 옆 산자락에 섀시 문짝을 쌓아놓았는데 다 녹아 버렸고 집을 지키던 개들이 우리를 향해 ‘멍멍’ 짖었다. 어제 잠시 들렀을 때 불길 사이로 하도 급히 나오느라 목줄도 풀어주지 못해 많이 걱정이 됐던 터였다.

하지만 개들까지 털끝 하나 그을지 않았다. 닭도 그랬다. 닭이 품었던 계란이 숯으로 변했지만 계란을 두고 달아난 어미닭들과 병아리들은 한 마리도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말했다. “하나님이 지키셨다.” “맞아.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셨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