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헤어지고 만남을 반복한 탓에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무척 힘들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세부터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아내와는 1987년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 교제 8개월 만에 결혼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액세서리 하나 걸치지 않는 소박함이 무엇보다 용기를 주었다. 가난한 남자에게 어쩌면 시집을 오고 잘 살아줄 것 같았다.
결혼 후 아내는 직장생활을 했다. 나는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렇다 할 직장을 갖지 못했다. 고은이와 동엽이가 2년 터울로 태어났다. 이때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나를 낳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좋은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라서 그런지 아버지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게 겨우 여자는 결혼 초에 꽉 잡아야 한다느니,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느니 하는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정말 많이 싸웠고 나는 부덕하고 우악스러웠다.
싸움이 잦으니 아내가 견디기 힘들었던지 어느 날은 내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이쿠. 이를 어쩌나. 졸지에 혼자되게 생겼네.’ 다행히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위로를 얻었고 어쩌면 그 힘으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어느 주일에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가족야유회가 있었는데 아내는 교회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만 딸려 보냈다. 그날 나는 무척 화가 났다. 집에 걸린 성구액자와 성경을 찢으며 난동을 부렸다. 그렇게 못된 남편이었는데도 아내는 한 번도 집을 나가지 않았고 밥을 해주지 않은 적도 없었다. 그런 아내에게 뭘 믿고 그리 함부로 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내는 “당신 덕분에 제대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편한 남편을 만났다면 이만큼 주님을 의지할 수 없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아내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누가 배우지 못한 아비 아니랄까봐 툭하면 매를 대고 훈계했다. 치마 입는 딸아이 종아리에 회초리를 댔고, 아들 엉덩이에 피가 흐를 때까지 매질을 해댔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그런 의미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나는 무엇보다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산다. 이 병은 나를 남편이나 아빠의 자리에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환자 몸에서 냄새나면 안 된다며 씻기고 입히고 닦아준다. 밤에도 몇 번이나 깨서 잠든 내 몸을 이쪽저쪽 바꿔준다.
아내는 지금 갑상샘암을 앓고 있다. 쉬어야 하는 몸인데…. 남편의 품위 유지를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8년간 정성껏 간호를 해주고 있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은 끙끙거리며 휠체어에 나를 앉힌 뒤 3층에서 1층으로 내리고 올려준다. 지금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아이들이 옮겨줄 때가 가장 안심이 된다. 이제 훌쩍 커버린 아이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정하 <16> 나와 잦은 다툼에 아내는 교회서 위로 받아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8개월 만에 결혼… 아내 함부로 대한 것 지금 생각하면 아찔
![[역경의 열매] 김정하 <16> 나와 잦은 다툼에 아내는 교회서 위로 받아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106/201711060000_23110923843090_1.jpg)
아들 제대 후에 찍은 가족사진. 하나님께선 부모가 면회 갈 형편이 안 되는 걸 아셨는지 아들을 휴전선 철책에서 근무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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