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가야 하는데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하나.’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늘었다. 예쁘고 명민한 여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프리카 선교사가 될 남자를 따라나설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책 한 권을 읽다가 선교사 아내로서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의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이었다. 감옥 생활 중에 인도하신 하나님의 일을 간증처럼 적은 책이다. 나는 책에 나온 범브란트 목사님의 사모님처럼 하나님을 위해 자기 남편을 사지로 보낼 수 있는 배우자를 꿈꿨다. 선교지에 함께 가는 것은 물론이요, 만약에 내가 먼저 죽더라도 선교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사람. 지금 생각해봐도 참 꿈같은 이상형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선교지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눈여겨본 몇몇 후배와 동기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사람은 아닌 듯했다.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자매라고 해도 막상 “아프리카 선교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어렵다”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을 사지로 보낼 수 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땐 내가 찾고 있는 이상형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의 아내와는 예과 1년 때부터 알고 지냈다. 아내는 인기가 많았다. 같은 과 선배가 아내에게 반해 6년여를 열렬히 쫓아다닌 이야기는 의과대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 선배가 거절당한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졸업 몇 개월을 남겨 둔 시점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아내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연결고리가 아내를 열렬히 쫓아다녔던 그 선배였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나와 아내를 지켜본 선배가 아내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는 자기가 인연을 포기하면서 나와 연결해준 거다.
아내는 내가 찾던 이상형과 완벽히 들어맞았다. 아내는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을 죽도록 사랑해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한다. 이별의 위기도 있었다. 만난 지 몇 달 되어갈 때쯤이었다. 아내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의 답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재훈씨. 저는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어야 해요. 지금은 결혼할 형편이 아닙니다.”
충격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이라 믿었으니까. 크게 상심한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하나님, 재연씨가 결혼은 아니라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 찾겠습니다.’
그날 저녁,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고백만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후배가 와서 누가 도서관 밖에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나가보니 아내가 통닭 한 마리를 들고 서 있었다. 통닭은 후배들에게 맡겨놓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만남을 이어주실 거라고 했다. “그래,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도하며 기다릴게.” 그리고 오랜 기도는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재훈 <5> “아프리카 선교사 사모 될 분을 찾습니다”
이상형 상대를 찾았으나 결혼에 난관… “하나님께서 우리 만남 이어주실 것”
![[역경의 열매] 이재훈 <5> “아프리카 선교사 사모 될 분을 찾습니다”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114/201711140001_23110923848140_1.jpg)
이재훈 박재연 선교사 부부가 아들과 함께 1995년 대둔산으로 가족여행을 떠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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