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사람만 아는 아픔이 있다. 바로 ‘끼인 자’로서의 설움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둘째였기 때문에 항상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형과 내가 싸우면 “왜 어린 것이 형에게 덤비느냐”고 혼났고, 동생하고 싸우면 “왜 큰 놈이 어린애를 괴롭히느냐”고 혼이 났다. 그래서 어느 날은 동생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어 덤비게 하고 “왜 어린 것이 형에게 덤비느냐”며 흠씬 패 준 일도 있었다. 그때 나는 마치 정의를 실현한 것처럼 통쾌했었다.
동생과 엿을 나눠 먹을 때 한쪽은 두껍게 뭉뚱그려 놓고 다른 쪽은 얇고 길게 늘인 후 동생에게 고르라고 내미는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이기적이었고 조금의 손해도 안 보려 했다. 어렸던 나는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동생에게 나는 항상 못된 형이었고 피하고 싶은 형일 수밖에 없었다.
“형 같은 사람이 다니는 게 교회라면, 난 죽어도 교회 안 간다.”
동생의 한마디는 형으로서의 내 모습은 물론, 내 신앙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생각해보면 ‘신앙이 진실되고 믿음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도 불구하고 늘 내 마음속엔 욕심, 질투, 미움이 그득그득했다. 심지어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 시간에도 죄악된 생각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올라오곤 했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 벗어나고 싶어 수없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누구보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기도했고,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하지만 죄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한때는 내 안에 사탄이 똬리를 틀고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내 신앙은 가짜인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수련회 기도시간엔 방언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내 신앙이 가짜라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문득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떠올랐다. 예배 중 헌금시간에 헌금 바구니에 들어가 “돈은 없지만 하나님께 몸이라도 드리고 싶었다”고 했던 리빙스턴 선교사처럼 하나님께 내 자신을 다 드려버리면 나 스스로 풀 수 없는 죄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나님께 일종의 ‘딜’을 던지기로 했다.
“하나님, 제가 ‘진짜’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는 거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제가 아프리카 선교사가 된다면 저를 진짜로 여겨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진짜로 인정받으려면,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던 아프리카는 ‘식인종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죽음을 각오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내 머릿속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여전히 내 신앙이 가짜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 하나님께 약속을 하나 더 드리자. 하지만 이미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고민하다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 떠올랐다. 판사나 의사가 되는 것이다. 문득 아프리카에 가려면 판사보단 의사가 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아프리카 의료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저를 진짜로 여겨주세요.”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재훈 <3> 하나님 앞에 ‘진짜’ 되고자 나 자신을 드리기로
“내 신앙은 가짜인가” 오랜 고민 끝에 오지인 아프리카 의료 선교사 서원
![[역경의 열매] 이재훈 <3> 하나님 앞에 ‘진짜’ 되고자 나 자신을 드리기로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110/201711100002_23110923846348_1.jpg)
아홉 살 무렵 아버지와 함께 동네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필자(오른쪽 두 번째)와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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