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료사업은 외부 지원이 없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진료 대상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지역 주민들. 그들이 의약품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모든 것이 무료로 진행돼야 한다. 우리 역시 현지에서 사역하며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은행 잔고가 바닥나 약품 살 돈이 없던 때는 MAF(Mission Aviation Fellowship)가 많은 약품을 후원해줬다. 한국 의료전문 비정부기구(NGO) 웰인터내셔널은 수술도구와 장비들을 책임져줬다.
2011년엔 밀알복지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국내에서 20여년 장애인 복지사업에 주력해 온 재단은 당시 해외까지 사역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때 처음 해외사업을 시작한 곳이 바로 마다가스카르였다. 밀알복지재단의 지원은 또 다른 차원의 힘이 됐다. 지원이 확대되며 함께 일하는 직원도 늘었고 이동진료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이동진료사업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2만5000명 정도의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질병 통계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지역별 특징도 발견하게 됐다.
사실 이 통계자료는 부족한 것이 무척 많다. 기록되지 않은 것도 있고, 잘못된 진단도 많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를 인정하며 우리가 기록한 환자들이 어떤 증상과 질병으로 인해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알아보고 지역별로 어떤 질병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가장 흔한 질환을 중심으로 의료인 훈련 교재를 만들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하는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게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자료가 의학 논문이나 통계로 활용돼 대한민국의 코이카나 미국의 개발원조국(USAID),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의 대규모 지원을 끌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고군분투해도 현재 우리가 진행하는 이동진료사업 규모로는 모든 마다가스카르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엔 평생 제대로 된 의사 한 번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1200만명에 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적어도 1000여개의 새로운 병원을 짓고, 수만 명의 의료인을 병원에 배치해야 한다. 비용은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천문학적일 것이다. 오늘의 마다가스카르 경제상황과 의료인 배출 속도로 보자면 그 계획은 수백 년 지나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진료팀이 60개로 늘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마다가스카르 행정구역상 117개의 지역이 있다. 이 중 의료기관이 존재하는 곳은 절반에 그친다. 의료기관이 없는 나머지 지역에 이동진료팀을 배치해 운영한다면 모든 마다가스카르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올 수 있을 것이다. 각 지역에 병원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보다 빨리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다가스카르 환자 한 명 한 명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자료들이 결국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마다가스카르 전체 주민을 위한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커다란 과제의 해결로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재훈 <13> 의사 만나기가 별따기… 이동진료 확대가 해법
행정구역 절반이 의료기관 없어… 국내 단체에서 사역 지원해줘 큰 힘
![[역경의 열매] 이재훈 <13> 의사 만나기가 별따기… 이동진료 확대가 해법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124/201711240000_23110923854267_1.jpg)
이재훈 선교사(왼쪽)가 2011년 1월 서울 강남구직업재활센터에서 마다가스카르 이동진료 프로젝트 매니저 위촉식을 갖고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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