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역경의 열매] 이재훈 <11> 오지 찾아 야외 수술로 ‘부시맨 닥터’ 별명

열려라 에바다 2017. 11. 22. 08:02

[역경의 열매] 이재훈 <11> 오지 찾아 야외 수술로 ‘부시맨 닥터’ 별명

힘들지만 한 달에 일주일은 이동진료 2000여 물품 준비… 2000㎞ 이동도

 

[역경의 열매]  이재훈 <11> 오지 찾아 야외 수술로 ‘부시맨 닥터’ 별명 기사의 사진
2015년 6월 오지로 이동하던 이재훈 선교사와 이동진료팀의 차량이 옆으로 뒤집힌 모습.

마다가스카르 이토시병원에서 일할 당시 내가 제시했던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한 달에 1주일은 병원에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름 아닌 이동진료를 위해서였다. 2006년 말부터 병원에 나가지 않은 1주일간 수도 안타나나리보 근교부터 이동진료를 시작했다. 풀밭,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술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날 부르곤 했다. ‘부시맨 닥터’였다.

사역 초창기 때는 오지에 가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구입한 차는 1993년산 중고 SUV였다. 차는 튼튼했지만 고장이 나면 나 혼자 고칠 길이 없었다. 오지에서 차가 고장 나면 전화가 터지는 마을까지 찾아가 수도에 있는 기술자를 부르고, 그 기술자가 수도에서 오지로 내려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2007년부터는 항로를 이용해 의료후송과 구제사역을 하는 MAF(Mission Aviation Fellowship)라는 단체의 협조로 오지에 가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지게 됐다. 2009년엔 처음으로 사륜구동 차량을 1대 사면서 자체적으로 오지까지 육로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동진료 지역 선정은 마다가스카르 정부기관의 협조를 받고 있다. 의료접근성이 낮고, 긴급진료 수요가 많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정한다. 이후 해당 지역 답사와 지역 기관장의 허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지역을 선정한다.

오지 이동진료 준비는 보통 2주가 걸린다. 장소가 정해지면 사역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만들고, 의약품을 구입하고 수술용품을 소독하는 등의 준비를 시작한다. 함께 참여할 봉사자가 있을 경우 미리 연락해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먼저 제공하고 교육한다. 한 번 이동진료를 갈 때 준비하는 물품이 2000가지가 넘으니 짐을 싸는 데만 1주일이 걸린다. 외과의사 2명, 마취과의사 1명, 일반의사 1∼2명, 간호사 4∼5명, 운전사 2∼3명 등 15∼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 팀을 이뤄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이동한다.

우리가 찾아가는 지역들은 보통 가깝게는 300㎞, 멀게는 2000㎞ 이상 이동해야 하는 곳이다. 새벽에 출발해도 그날 안에 도착하면 지근거리에 속할 정도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인 데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도 많다. 발전기가 고장 나 달리던 차가 멈추는 건 다반사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차가 진흙에 빠져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땅이 마르고 나서야 차를 겨우 꺼내기도 했고 도로에서 미끄러진 차가 논을 향해 날아가 처박히기도 했다. 거친 길 때문에 덜컹거리는 충격으로 연료통이 떨어져 버리기도 했고, 차 앞유리가 깨져서 테이프로 임시방편을 한 채 1000㎞도 더 넘게 달려 온 일도 있었다.

이렇게 차에 문제가 생기면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 노숙을 해야 한다. 야간에는 강도단의 위험 때문에 경찰 초소에 몇 시간을 붙잡혀 있다가, 이동하는 차량이 많아지면 떠나야 했다. 폭우로 도로가 유실돼 우회도로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리가 무너져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실제 사역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난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2008년, 나는 마다가스카르 사역 중 최대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