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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재훈 <10> 지루한 의대 공부에 비해 신학은 놀이처럼 재미

열려라 에바다 2017. 11. 21. 08:08

[역경의 열매] 이재훈 <10> 지루한 의대 공부에 비해 신학은 놀이처럼 재미

마다가스카르 장기선교사 파송 준비… 함께 배운 문화인류학 사역에 큰 도움

 

[역경의 열매] 이재훈 <10> 지루한 의대 공부에 비해 신학은 놀이처럼 재미 기사의 사진
이재훈 선교사(둘째 줄 오른쪽 첫 번째)가 2006년 영국 아프리카오지선교회(AIM) 사무실 앞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오지선교회(AIM)를 통해 마다가스카르에 파송받기 위해 영국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어를 배우라고 해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본부에서 자꾸 물어왔다. 장기로 갈 건지, 단기로 갈 건지. 당연히 내 대답은 장기였다. 평생 있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본부에서 내게 단기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계속 요청했다. 알고 보니 나와 아내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AIM 규정상 장기 파견 선교사의 경우 신학을 전공하는 것이 필수였다. 장기 선교사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신학을 공부하는 건 매우 재미난 일이었다. 최대한 빨리 마다가스카르에 가기 위해 최단기로 과정을 마칠 수 있는 코스를 밟았지만 지루한 의대 공부에 비하면 신학 공부는 내게 놀이터처럼 느껴졌다. 도서관 불이 켜질 때 들어가 불이 꺼질 때 나오는 사람이 나였다. 방학엔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씩 성경을 읽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몇 번이나 통독한 나였지만 그 시기는 성경을 보다 깊고, 넓고,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신학과 함께 문화인류학을 배운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마다가스카르 사역을 하면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지역과 사람에게 복음이 녹아들어가게 하려면?’이란 질문이 생길 때마다 당시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린다. 현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어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기 위해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어머니, 우리가 아이를 깊이 잠들게 할 텐데 그러면 아이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수술이 끝난 후에 아이를 깨워 어머니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동의하겠습니까?”

내 설명을 들은 어머니가 별안간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그 지역에선 ‘죽음’의 개념이 ‘통증 없는 깊은 잠’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내 이야기가 ‘닥터 리가 지금부터 이 아이를 죽이고, 수술한 다음에 다시 살려서 너에게 줄 거다’라는 식으로 들렸을 거다. 아이를 죽인다는 말에 겁을 먹고 도망을 간 거다. 그 소동으로 인해 수술이 3시간이나 지연됐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었다. 지역마다 다른 모습이 엿보이는 장례식과 결혼식, 부족마다 내려오는 전통 등을 연구해 주민들 삶의 모태가 되는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에 맞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다. 우리는 마취라고 설명했지만 현지인은 죽음으로 알아들었듯, 현지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복음을 설명해야 그 본질이 전해질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현지인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마다가스카르의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문화연구센터도 설립했다. 지금은 사무실에 작은 방 하나뿐이지만, 우리의 사역이 지속되는 동안 문화연구센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마다가스카르에 온 선교사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에서 사역을 출발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거기서 나온 많은 연구 자료들이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선교사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꿈이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